이거 머리 묶는 끈인가요?

나의 사관생도 시절 _ Chapter 2. 가입교 훈련 1일 차

by 짠맛토커

#Chapter 2. 가입교 훈련 1일 차


3일 전 합격 통지를 받은 나는 부랴부랴 떠날 채비를 했다.


'19년 동안 살아온 부산 땅을 드디어 떠나는구나. 야호!'


새로운 모험의 시작에 나는 한 껏 들떠 있었다.

공군사관학교가 위치한 곳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쌍수리.

가입교식 하루 전 엄마, 아빠와 청주로 향했다. 차로 4시간가량 걸리는 먼 거리였다.

낮에 출발한 우리는 어둑어둑한 저녁에야 청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가까운 모텔에서 1박을 했다.


당시 나는 내 앞에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냥 집을 떠나오니 설레었고 들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은 걱정스러워하는 엄마 아빠의 눈빛을 난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열아홉. 부모의 마음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게 보였다.

부산에서 북쪽으로 4시간만 올라와도 이렇게 눈이 내리다니. 태어나고 자라면서 거의 눈을 보지 못했던 나는 하얀 눈이 계속 내리는 하늘만 쳐다봐도 신기했다. 그야말로 나는 촌스러운 부산 여고생이었다.


예비 여생도에게 요구되는 가입교 조건은 짧은 커트 머리 또는 단발머리를 하고 오라는 두발 규정이었다. 나는 고3 때부터 쭉 짧은 커트 머리를 유지해 왔던 터라, 딱히 더 자를 필요는 없었다. 이제 사관생도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한 껏 부풀었던 나는 사복마저도 얼룩덜룩한 밀리터리 룩을 입고 있었다.


학교 정문을 들어가니 쭉 뻗은 도로 양 옆으로 예복을 입은 선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엄마 아빠는 뒤에 서서 내가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수경례를 오른손으로 하는 것도 몰랐던 나는 당당하게 왼손으로 손을 올리며 필 승! 하고 웃었다.


56기 예비생도 라는 이름으로 모인 172명의 학생들 중에 내가 제일 기분이 업 돼 있었을 것이다. 밀리터리 룩을 입고 등장한 것도 나뿐이었다. 16명을 제외한 166명의 남학생들 대부분은 빡빡머리를 하고 있었다. 연병장은 축구장 여러 개를 합친 것처럼 넓었고 흰 눈이 소복이 쌓여 더 예뻤다. 이땐 내가 그 눈을 다 치워야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걸 몰랐다.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드디어 엄마 아빠와 완전히 헤어지고, 나는 남색 제복을 입고 등장한 선배들의 인솔 하에 가입교 대대라는 곳에 도착했다. 내가 지내게 될 방은 4명이 함께 쓰는 4인실이었는데, 2층 침대가 양 옆으로 있었고 그 옆으로는 책상과 옷장이 붙어 있었다.


연필, 지우개부터 시작해 각종 비품들이 일렬로 정돈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오는 신기하게 생긴 초록색 끈이 있었으니, 꽈배기 모양으로 꼬아졌는데 끝에는 조그만 금색 고리가 양 쪽으로 달려 있었다.


"이게 뭐예요? 머리 묶는 끈인가요?”


나의 질문에 선배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피했다.


그것은 군대 나온 사람이면 다 아는 '고무링'이라는 것이었는데, 전투복 바지를 단단히 안으로 고정할 때 사용하는 끈이다. 고무링을 처음 본 나는 머리 묶는 고무줄인 줄 알고 물어봤던 것.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에서 구입한 나의 밀리터리 점퍼는 박스에 고이 접어 넣고, 드디어 진짜 전투복을 입게 됐다. 사이즈에 맞게 골라 입고 전투화도 신어봤다. 전투화 역시 남자용과 여자용이 따로 있는데, 나는 발이 너무 커서 맞는 게 없었다. 운동화는 260 정도를 신어야 발이 편안한데, 제일 큰 사이즈가 250밖에 없었다. 군수 보급관 생도라고 불리는 한 남자 선배가 내 발에 맞는 전투화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구두 가게에 가면 남자 직원분들이 신발을 신겨주는 것처럼 그 선배는 전투화가 내 발에 맞는지 직접 신겨주었다.

"좀 작은데......"

선배는 급기야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260짜리 전투화 하나를 공수해왔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머, 딱 맞아요!"

드디어 내 발에 맞는 전투화를 찾았다.


생소한 것들이 가득한 이 작은 방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느라 바빴다. 나와 방을 같이 쓰게 된 여학생들이 두 명 더 있었다. 둘 다 키도 크고 착해 보였다. 제복을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선배들도 존댓말을 해주는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쌍수리에 발을 디딘 첫날은 이렇게 조금은 편안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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