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1)
경제학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그래서 자신의 선택에서 고려하는 모든 대상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계산하여 가장 가치가 큰 대상을 선택하는 인간을 가정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완벽한 선택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심리학에서는 실제적인 인간을 연구한다. 때로는 무엇이 좋은지도 명확하지 않고, 가끔은 일관되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 계산도 그리 정확하지 않고, 게다가 한번에 많은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기존 경제학은 학문의 특성상 실제 인간의 행동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행동에 대해 몇가지 가정을 하고, 그 가정이 옳다는 전제하에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다. 실제 인간의 행동을 고려하지 않는 기존 경제학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과 판단에 대한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접목해 더욱 현실적인 경제학으로 재탄생한 분야가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연구자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과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다. 둘 다 경제학자가 아니면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한 심리학자이다. 이 책은 행동 경제학의 모태가 된 이들의 프로스펙트 이론, 휴리스틱, 바이어스에 대해 설명하는 행동경제학 입문서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선택, 그리고 선택과 관련된 사회현상을 실제적인 인간의 심리에 근거하여 이해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 행동경제학이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그 결과로 어떠한 사회현상이 발생하는지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즉 인간 행동의 실제와 그 원인, 그것이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의 행동을 조절하기 위한 정책에 관해서 심층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경제학이다.
-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아는가? 경제적 인간이라는 말은 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치 신과 같은 이러한 인물이 주류 경제학에서 전제로 하는 경제인의 모습이다. 주류 경제학은 경제활동을 하는 우리 모두를 이와 같은 인물이라는 가정하에서 구축된 경제이론이다.
- 경제적 인간에게는 합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첨가된다. 타인에 대해서는 일절 돌보지 않고 자신의 물질적 이익만을 최대화하려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점이다. 즉 경제적 인간은 윤리나 도덕이라는 개념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 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축적된 이론에 인지심리학의 성과를 도입하여 개량한 것이 행동경제학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주류 경제학을 전면적으로 포기하거나 해체하여 새로운 경제학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 현실세계의 인간이 경제적 인간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다고 해서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사람은 완전히 합리적이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합리적이라는 의미로 '제한된 합리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게 가장 적절하다.
휴리스틱과 바이어스_'직감'의 기능
- 휴리스틱(heuristic)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불확실한 사항에 대해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지만 명확한 실마리가 없을 경우에 사용하는 편의적, 발견적인 방법이다. 우리말로는 쉬운 방법, 간편법, 발견법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 일련의 연구를 통해 인간이 확률이나 빈도를 판단할 때 몇 가지 휴리스틱을 이용하지만, 그에 따라 얻어지는 판단은 객관적이며 올바른 평가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의미로 종종 '바이어스'가 동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휴리스틱의 가장 큰 특징은 '이용 가능성' 이다. 이용 가능성이란 어떤 이벤트가 출현하는 빈도나 확률을 판단할 때, 그 이벤트가 발생했다고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생각해 내고 그것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기억, 특히 장기 기억이며, 기억한 내용이 다양한 원인의 영향을 받아 변하거나, 일부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그 대상의 빈도나 확률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할 경우 바이어스가 생기게 된다.
이용 가능성을 발생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서 어떤 사태나 사건이 실제로 쉽게 이미지화되어 떠오를 때이다. 흡연이나 음주 등의 습관을 끊기 어려운 것은 행위시점과 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는 시점이 시간적으로 큰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행위를 하는 시점에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원인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따라서 흡연이 암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는 수치보다는 암에 걸린 비참한 사례를 어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운전면허증을 재발급 받을 때 사고현장의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사후 판단 바이어스(Hindsight Bias)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이 일으키는 바이어스 가운데 하나가 '사후 판단 바이어스'이다. 우리는 일이 벌어진 뒤데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렇게 될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이렇게 결과를 알고 나서 마치 사전에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바이어스를 '사후 판단 바이어스'라고 한다.
사후 판단 바이어스는 이용 가능성 휴리스틱에 의해 발생하는데,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그 일이 사실처럼 인상에 남게 되고, 거기서 사전에 예측한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좋아보이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실제로는 조잡한 상품이었을 때, '싼 게 비지떡이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후 판단 편향의 예이다.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
- 어떤 집합에 속하는 사건이 그 집합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뜻에서 '대표한다'고 간주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어떤 사건이 그것이 속한 집합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그 집합이 지닌 특성과 실제 사건이 지닌 특성의 관련성이 많지 않을 때에는 다양한 바이어스가 발생하게 된다.
기준점과 조정(Anchoring and Adjustment)
- 불확실한 사건이나 이벤트에 대해 예측할 때 처음에 어떤 가치(기준점)를 설정하고, 그 다음 단계로 조정을 통해 최종적인 예측치를 확정하는 것이 '기준점과 조정'이라는 휴리스틱이다. 그러나 조정 단계에서 최종적인 예측치가 맨 처음 설정한 가치에 휘말려 충분한 조정을 할 수 없게 됨으로써 바이어스가 발생할 수 있다.
- 기준점 효과에서는 확증 바이어스가 발생한다. 확증 바이어스란 일단 자신의 의사나 태도를 결정하면 그것을 뒷받침할 정보만을 모아 반대 정보를 무시하거나, 이 정보를 자신의 의견이나 태도를 보강하는 정보로 해석하는 바이어스를 말한다.
- 물건을 구매할 때 상품가치를 기초로 한 적정한 가격을 알 수는 없다. 대부분은 정가나 정찰가격 표시를 보고 타당한 가격을 판단한다. 상점에서 희망 소매가격 2000원, 판매가격 1800원이라는 표시를 볼 수 있다. 이때 희망 소매가격이 기준점이기 때문에 판매 가격은 싸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