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이 아이를 키운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한글에 관심이 없네요. 이제 곧 초등학교도 가야하는데 언제 시켜야 하죠?"
"아이가 놀기만 하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건 꿈에도 꿀 수가 없어요. 학습 습관이 안잡혀서 어쩌죠?"
10여년 동안 유치원에서 수많은 학부모님들과 상담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걱정 중 하나입니다.
부모님들의 눈에는 아이의 '놀이'가 그저 심심하니까 시간 보내는 것, 휴식 시간 정도로 보이기 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놀이에 빠져있으면 불안해하며 슬그머니 학습지를 들이밀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단언컨데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이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게 배우는 중입니다."
놀이는 세상에서 가장 고도화된 학습
유치원 교실 한 구석, 아이들이 블록으로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해 봅니다.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쌓고 무너뜨리는 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배움의 과정이 숨 쉬고 있습니다.
-사회성과 협상의 기술(갈등해결, 규칙준수, 타협)
"내가 엄마 할테니까 네가 아기해"
"싫어 나도 엄마하고 싶어. 그럼 우리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언어능력(스토리텔링, 어휘력 확장)
"여기는 악당이 못 들어오는 비밀 요새야. 이걸 누르면 투명 방패가 되거든."
-자연탐구능력, 수과학(무게중심과 균형감각, 도형 인지)
"이 블록은 너무 작아서 밑에 놓으면 무너져"
이 모든 과정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 스스로의 주도로 이루어집니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세상을 탐구하는 실험실이자, 인간관계를 배우는 사회의 축소판이지요. 책상에 앉아 글자로 배우는 지식보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이 지식이야말로 진짜 아이의 것이 됩니다.
진짜 놀이 VS 가짜놀이
최근에는 '놀이식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교구와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꼭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입니다.
자유놀이가 한창 이루어지는 유치원 교실 속에서도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가 있습니다.
"선생님! 다했어요! 이제 놀아도 되죠?"
교사가 제안한 미술놀이를 다 마친 아이가 외쳤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제안해준 놀이를 했지만, 정작 진짜 마음 속에는 다른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아이에게 그 시간은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놀이'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해 해치워야 할 '과업'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놀이의 핵심은 '자발성'과 '주도성' 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원해서 시작하고, 규칙을 만들고,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해 몰입하는 것만이 진짜 놀이입니다. 어른이 의도를 가지고 개입하여 "이건 뭐야? 영어로 해봐."라고 묻는 순간, 그 시간은 놀이가 아닌 '노동'이 되어버립니다.
아이와의 놀이가 어려운 부모는 이 영상을 참고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qH_c_J71B94?si=Jl0WCMk80_uMPG3i
몰입의 힘, 뇌를 춤추게 하는 즐거움
진짜 놀이에 빠진 아이들은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몰입'이라고 부릅니다.
누가 시킨 놀이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은 30분이 지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더 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남이 정해준 놀이를 할 때는 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썰물 빠지듯 자리를 비웁니다.
이 몰입의 경험은 아이의 사고 능력과 창의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가 해결사가 되어 놀이를 주도하는 대신, 아이가 가는 대로 따라가 주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북돋아 줄 때 아이는 가장 행복하게 배웁니다.
부모의 역할: '놀이의 주도자'가 아닌, 아이의 몰입을 가꾸는 '가드너'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놀이판에서 끌어내 책상 앞에 앉히는 '주도자'가 아니라, 아이가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정성껏 가꾸는 '가드너(정원사)'가 되어야 합니다. 정원사가 꽃을 억지로 잡아당겨 피우지 않듯, 우리도 아이의 놀이에 섣불리 개입하거나 정답을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면, 땀 흘리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면 안심하세요. 아이는 지금, 누구보다 훌륭하게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