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괜찮아: 실패를 디딤돌로 만드는 회복탄력성

눈물 젖은 팽이가 가르쳐준 것: 실패는 성장의 디딤돌

by 정은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가 좌절하는 순간을 수시로 목격합니다. 뚜껑을 닫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될 때, 공들여 쌓은 블록이 무너졌을 때, 그리고 마음처럼 색종이가 접히지 않을 때 아이들의 세상은 잠시 무너져 내리지요.


하지만 이 '무너짐'의 순간이야말로 아이의 '마음 근육'이 자라는 반짝이는 순간입니다. 넘어져 본 아이만이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실패해 본 아이만이 그 실패를 딛고 더 높이 뛰어오르는 법을 알게 되니까요. 우리는 이것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릅니다.


눈물 젖은 팽이가 가르쳐준 것

저희 아이가 처음 '페이퍼블레이드' 접기에 도전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물꼬물 접어보지만, 마음처럼 각이 딱딱 맞지 않았습니다. 팽이가 잘 접어지지 않자 아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지요. 종이를 구겨 던져 버리기도 하고, "엄마가 대신 접어줘!"라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어요.


당장이라도 대신 접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종이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여기가 잘 안 맞춰져서 속상하구나. 천천히 다시 해보자. 엄마가 같이 도와줄게."


처음엔 엉성했던 팽이가 수없는 실패 끝에 기어이 돌아가는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그 작은 성공 경험이 쌓여가자 아이는 달라졌습니다. 손에 익숙해지니 자신감이 붙었고, 이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팽이 접기에 스스로 도전합니다. "엄마 이거봐! 내가 만든거야!" 아이가 배운건 단순히 종이접는법이 아니었습니다. '잘 안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유능감, 바로 회복탄력성의 기초였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릅니다. 실패를 '끝'이나 '망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과정'이나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하루는 아이가 만들기를 하다가 실수로 종이를 잘못 오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 탄식을 쏟아내며 속상해하더군요. 하지만 잠시 후, 그 잘못 오려진 조각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까르르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이거 봐봐! 원래 내가 연꽃 모양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꼭 우주선 날개 같지 않아?"


아이는 실패한 조각을 버리는 대신, 그것을 활용해 원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멋진 우주선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연한 실패가 오히려 사고의 유연성을 길러주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우와! 정말 그러네! 실수가 멋진 우주선을 선물해줬구나!"

아이는 이때 깨달았을것입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실패가 반드시 '오답'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그 실수가 생각지 못한 멋진 길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부모의 역할: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마음의 베이스캠프'


우리 아이가 회복탄력성이라는 단단한 마음 근육을 가지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첫째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 저는 아이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넘어질세라 잡아주는 '인간 에어백'이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처리해 주는 '해결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제가 앞장서서 모든 장애물을 치워주면 아이는 넘어지는 법도, 스스로 일어나는 법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을요.


아이가 실패하고 좌절할 때, 부모는 아이가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마음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야 합니다.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 베이스캠프는 생명과도 같은 곳입니다. 거친 비바람을 만나거나 체력이 바닥났을 때, 그들은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몸을 녹입니다. 그곳에는 따뜻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괜찮아, 다시 할 수 있어"라고 믿어주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집과 부모의 품은 바로 이 베이스캠프여야 합니다.

코리 도어펠드 작가의 <가만히 들어주었어> 그림책에서 주인공이 열심히 쌓아올린 블록을 지나가던 새가 다 무너뜨리고 가버립니다. 주인공은 무지 화가나고 속상했지요. 여러 동물친구들이 와서 각자의 방법대로 아이를 위로해줍니다. 조언도 해줘요. 하지만 모두 다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토끼가 와서 가만히 아이의 옆에 있어줍니다. 그 온기를 느끼며 아이는 회복을 하게 되고, 기꺼이 다시 블록을 쌓는 힘을 내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가 종이접기를 하다 망쳐서 울 때, 친구와 달리기 시합에서 져서 씩씩거리며 들어올 때,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아이의 실패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거나,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등을 쓰다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요.


"속상했구나. 이리 와, 엄마한테 와."

아이의 거친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히 안아주는 그 체온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내가 밖에서 무슨 실수를 해도, 엄마는 나를 비난하지 않아. 내 편이야.'라는 심리적 안전감이 확인될 때, 아이는 비로소 툭툭 털고 일어날 용기를 얻습니다.

베이스캠프에서 충분히 쉬고 난 산악인이 다시 배낭을 메고 정상을 향해 출발하듯, 부모의 따뜻한 지지를 먹고 자란 아이는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갑니다.


"엄마, 나 좀 쉬었더니 힘이 나. 다시 한번 해볼래!"

우리는 아이 대신 산을 올라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힘들 때마다 돌아와서 마음껏 울고, 다시 에너지를 채워 나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쉼터는 되어줄 수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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