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바꾸려 애쓰기 전에, 엄마인 '나'의 하루를 먼저 사랑하기로 했다
"옷 정리했니?", "물통, 수저통도 설거지통에 넣어놔", "손도 씻어야지"
아이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며 쏟아내는 이 말들은 과연 사랑일까요, 아니면 통제일까요?
유치원 현장에서,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 있습니다. '잔소리'는 아이의 행동을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아이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행동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습관은 억지로 입혀야 할 '규율'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가장 다정한 사랑의 언어'여야 합니다.
새벽의 불청객에서, 아침을 여는 파트너로
사실 처음부터 제가 우아한 엄마였던 것은 아닙니다. 둘째를 낳고 무너진 저를 일으키기 위해 '새벽 기상'과 '나를 위한 루틴'을 시작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아이'였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싶은데, 새벽 시간 조용히 거실로 나오면 귀신같이 아이가 "엄마! 나 일어났어요!"하고 나왔으니까요.
그때의 저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깨는 순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왈칵 짜증이 솟구쳤지요. "아직 더 자야하는시간이야. 더 자고 나와! 엄마 시간 방해하지 말구!"
나를 채우겠다고 시작한 새벽 시간이, 오히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전쟁 같은 시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작 정돈되지 않은 것은 아이가 아니라 쫓기듯 불안했던 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일기를 쓰고, 긍정 확언을 매일 읊조리며 제 내면에 긍정 에너지가 차오르자, 새벽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부스스한 눈으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를 보는데 짜증 대신 반가움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우리 강아지, 엄마랑 같이 하루를 시작하려고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제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흘려보내며 웃으며 맞아주자 아이의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아이는 더이상 '방해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든 행복한 에너지를 가장 먼저 나누어 가질 '새벽의 파트너' 였지요.
"엄마, 나도 같이 할래"
제가 변하자 아이도 달라졌습니다. "엄마 방해하지마"라고 소리칠 때는 칭얼거리며 매달리고 도리어 저에게 짜증을 퍼붓던 아이가, 제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제 할 일을 계속하자 스스로 책을 가져와 조용히 마주 앉았습니다.
아이를 억지로 앉혀 무언가를 시킨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무언가에 집중하며 행복해하는 에너지, 그 따뜻한 공기 안으로 아이가 스스로 들어온 것입니다. 습관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곁에서 '물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잔소리'를 '관심'으로 바꾸는 지혜입니다.
“방 좀 치워!”라고 다그치는 대신, “우와, 오늘 근사한 성을 만들었구나! 이 블록 병사들은 이제 어디서 쉬게 해줄까”라고 물으며 정리를 놀이의 마무리로 만들어 주는 것.
“빨리자!”라고 재촉하는 대신,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놀았네! 내일 더 신나게 놀려면 배터리 충전하러 갈까?”하며 이불을 펴주는 것.
이 미묘한 한 끗 차이가 아이에게는 ‘엄마가 나를 통제하려 한다‘는 거부감 대신, ‘엄마가 나를 정말 아끼고 존중하는구나’라는 믿음을 심어줍니다.
가장 좋은 습관은 ‘엄마와 함께한 따뜻한 기억’
습관을 만드는 과정이 늘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아이도, 엄마도 지쳐서 루틴을 지키지 못하는 날도 있지요. 예전의 저라면 “왜 그러는거야!”라며 다그쳤겠지만, 이제는 압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수행이 아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궤도를 만들어주는 것을요.
“오늘은 좀 힘들었구나. 그래도 내일 아침에 다시 엄마랑 같이 해보자.”
이렇게 다독이며 다시 시작하는 힘, 즉 회복탄력성이라는 마음의 습관이야말로 우리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습관은 차가운 훈련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눈을 맞추고, 밤에는 하루를 감사하며 잠드는 그 따뜻한 리듬 자체가 아이에게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저는 잔소리 대신, 제가 먼저 책을 펴고 운동화를 신습니다. 엄마의 이 다정한 뒷모습이 아이가 걸어갈 길의 따뜻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