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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Jun 12. 2020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

 2020년의 시작에서부터 함께했던 코로나19에 대해 사람들이 초기에 느꼈던 패닉만큼은 6개월여가 지난 지금쯤 다소간에 진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코로나로 인해 변화하는 새로운 사회의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정치인들, 전문가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다양한 예측과 논의들을 백가쟁명식으로 펼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담론들은 근본적으로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논하는 것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는 적어도 역사 속에서 이미 검증된 것으로 보인다. 타임머신을 타고 흑사병이 대유행하던 중세 말로 건너가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포스트 흑사병 시대에 대해 의견을 묻는다고 해보자. 문헌을 직접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어떤 미래 담론도 근대의 모습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세의 신학자들이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망치로 우상들을 깨부수고 다니던 니체의 등장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봉건제적 신분질서의 정점에 있던 귀족들이 적어도 겉으로라도 만인의 평등과 자유를 옹호해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농노로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포드나 BMW, 페이스북이나 구글, 아니면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것을 꿈꿀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헤겔이 『법철학 강요』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고 말한 것은 아주 타당한 지적이다. 헤겔은 철학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빗대면서 “세계에 관해 사유된 모든 것으로서 철학은, 현실이 그의 형성 과정을 완성하고 완료한 후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겉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는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모든 학문적 논의들에도 공통되는 것이다. 모든 학문들은 언제나 과거에 대한 회고적인 작업이지, 도래할 미래를 알아맞히는 작업이 아니다. 설령 어떤 학문이 미래를 예측하고 심지어는 종종 그 예측이 들어맞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기반한 예측이고 미래가 엄격한 의미에서 미래가 아닌 단지 과거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들어맞았을 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미래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한에서 모든 학문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쓸모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대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습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래에 대해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측이 과거에 기반한 것으로서 과거의 연장으로서 미래를 가정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미래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미래를 진정으로 미래답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이러한 말하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무엇일 것이다’라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부정신학적 방법,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무엇이 아닐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가 예측된 것일 수 없는 이상, 미래는 ‘과거가 아닐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무엇이 아닐 것인가? 그러니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떤 과거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동의하는 하나의 합의점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재현(re-presentation)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코로나 이전까지 다양한 존재들이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갔던 삶의 방식들은 더 이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과거의 재현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 중 하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반동적인 흐름은 흑사병을 겪던 중세 말에도 강력하게 존재하였으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미래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양한 존재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모두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여기서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이자 포스트 흑사병의 시대인 이른바 근대(modernity)의 삶의 방식들의 핵심적인 원리 중 하나인 ‘개인(individual)'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어떻게 바뀔지를 간략하게 스케치하고자 한다.     


 흔히 고대 또는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를 개인의 발명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고대와 중세에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반면에, 근대는 개인이 발명되었고, 그로부터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두 기둥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근대적 사유의 문을 열어젖혔다고 평가받는 것도 개인이라는 개념을 철학의 제일원리로 확립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이 도식적인 구분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도식적인 구분이 전제하고 있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로 개인으로 번역되는 영어단어는 individual이다. individual의 어원은 라틴어의 individuus인데, 이는 in과 dividuus로 나뉜다. 여기서 in은 not, 즉 부정을 뜻하는 어근이고, dividuus는 ‘나눌 수 있는’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individuus 또는 indivudual은 정확히 말해 in-dividuus 또는 in-dividual이며, ‘어떤 것이 individuus하다 또는 individual이다’라고 할 때 이는 그것이 나뉠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요컨대 개인이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가장 작은 존재로서 모든 구성물의 근본적인 원리이자 최소단위이다. 그리고 근대는 바로 이 개인을 발명해낸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전근대로부터의 결정적인 진보로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개인은 in-dividuus한가? 아니다. 개인은 더 나뉠 수 있다. 어떤 한 개인을 생각해보자. 그(녀)는 사지와 오장육부를 비롯해 각종 장기와 기관들로 나뉠 수 있다. 또 장기와 기관들은 다시 세포 단위로, 분자들로, 나아가 원자들로 나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물질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입자로 알려진 쿼크로 나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in-dividual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쿼크뿐일지도 모른다.     


 이는 단순히 농담이나 말장난이 아니다. 개인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명석하고 판명한 개념이 아니다. 개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흔히 생물학적인 여러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한 유기체, 즉 한 인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그러한 유기체인 인간은 결코 in-dividuus한 것이 아니다. 나아가 인간이 나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은 사실 고대에서부터 심지어 현재까지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한 비유 속에서 암묵적으로 전제된다. 그것은 국가 또는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 또는 유기체의 말과 행동에 비유하는 것이다. 국가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이러한 비유의 가장 명백한 사례이다. 그런데 어떤 두 대상이 비유를 통해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두 대상 사이에 어떤 공통점 내지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두 대상이 서로 비유를 통해 연결되기 위한 어떠한 공통점 내지 유사점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원대한 프로젝트는 국가와 인간 사이의 비유가 성립되지 않으면, 다시 말해 국가와 인간 사이의 어떤 공통점 또는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시작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국가, 사회, 인간 또는 유기체는 그보다 더 작은 부분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나뉠 수 없는 가장 작은 존재라면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나뉠 일도, 영혼이 세 부분으로 나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주장하려는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나뉠 수 있기에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할당할 수 있지만, 인간은 나뉠 수 없기에 인간 안의 각자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암시하는 바는 in-dividual, 즉 개인이라는 개념은 그 내용이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in-dividuus하지 않은데도 어떤 이유로 인해 in-dividual로 불린다. 그렇다면 이제 근대와 전근대에 관한 도식적인 구분에서 개인의 발명이 의미하는 바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전근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인이라는 개념이 근대에 들어서 갑자기 발명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individual이 라틴어 individuus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만 보아도 전근대에 역시 개인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근대가 전근대와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는 개인이라는 개념을 한 유기체로서 인간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믿음을 철저히 고수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근대적 사유의 문을 연 데카르트조차 개인은 영혼과 신체로 나뉜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가장 작은 존재가 아니라 국가 또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더 작은 부분들의 집합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개인이어야 할 필연적이라거나 자연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인은 비결정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개인은 매우 정치적인 개념임이 드러나게 된다. 나아가 이는 근대에 있어서 개인의 발명은 전근대로부터의 진보가 아니라 근대가 전근대와의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개인은 그저 정치적 투쟁에 따라 그 내용이 채워지는 것일 뿐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해 잠시 판단중지(epoche)하고 개인이라는 개념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하나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개인이 in-dividuus한 것이라는 원래의 정의를 떠나 개인을 in-combinable한 것으로, 다시 말해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가장 큰 존재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어떤 어원학적인 근거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와 전근대의 관계를 보다 풍부하게 살펴보고, 개인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투쟁이 가지는 성격을 조망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in-combinable한 것으로, 즉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가장 큰 존재라고 정의할 경우, 우리는 전근대에 있어서 개인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전근대에서 개인은 유기체로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폴리스(polis)들이 그러했고, 중세의 봉건영주들이 그러했으며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회가 그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은 폴리스에 합쳐질 수 있고 합쳐져야만 하는 존재이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분석한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인간은 폴리스의 공적 활동에 종사할 경우에만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의 팔이 나라는 인간의 활동에 종사할 경우에만 비로소 팔로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최대의 단위는 팔이 아니라 인간이다.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에서 합쳐질 수 없는 최대의 단위는 인간이 아니라 폴리스였다. 요컨대 고대와 중세는 미개하거나 전체주의적이었기 때문에 개인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전근대에 있어서 개인, 즉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가장 큰 존재는 인간이 아닌 폴리스, 봉건영주 또는 교회였을 뿐이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근대에 있어서 개인, 즉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가장 큰 존재는 앞서 논의된 대로 인간이었다.     


 그러나 개인이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가장 큰 존재라는 말이 개인은 필연적으로 혼자 독고다이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전근대나 근대나 마찬가지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에서 1500곳 이상의 폴리스들이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세의 봉건영주들 또한 무수히 많이 존재했다. 그러한 개인들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랑하고, 합치고, 질투하고, 갈라서고, 다투고, 죽는다. 다만 근대는 전근대와 달리 어려운 문제를 하나 더 떠맡게 된다. 전근대에서 개인은 공동체 그 자체였던 반면에 근대의 개인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근대는 그러한 인간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는가에 대한 대답까지 하도록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을 in-dividual한 것이 아닌 in-combinable한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우리는 개인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 투쟁에서 전근대가 개인을 무엇으로 정의했는지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치적 투쟁이 단순히 어떤 말의 정의를 놓고 벌이는 현학적인 논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라는 개념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적 투쟁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존재에 ‘필연성’을 부여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투쟁이다. 이 필연성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존재에 필연성이 부여될 때, 그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의 기술적(記述的), 규범적 척도이자 절대적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중세의 봉건제와 근대의 자본주의 사이의 치열한 투쟁은 봉건영주와 인간 사이에 어떤 존재에 필연성을 부여할 것인지에 관한 치열한 투쟁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사이의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차이 역시 이러한 필연성을 둘러싼 투쟁에서 비롯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식은 외부의 사물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나, 칸트에게 인식은 인간이 선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범주들을 외부에 부과하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간은 언제나 폴리스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지만 칸트에게 인간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그로부터 국가와 세계시민사회가 구성되는 기초이다.     


 따라서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다는 말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필연적으로 합쳐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개인을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하면서도, 개인들이 합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때 합침은 개인을 정의할 때의 합침과는 다른 의미이다. 폴리스들 사이에서는 동맹을 맺거나 정복하는 식으로 합쳐질 수도 있었지만, 인간과 폴리스의 경우와 같이 그러한 합침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중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인간은 봉건영주 또는 교회와 합쳐져야 하지만 그 양자는 반드시 합쳐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봉건영주와 교회는 더 이상 필연적으로 합쳐질 수 없는 최대의 단위인 것이다. 근대에 있어서도 개인들은 결혼을 하고 사회와 국가를 만들 수 있지만 그러한 합침은 필연적인 합침이 아니다. 개인은 이혼을 할 수 있고, 사회와 국가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필연성’은 개인의 본래 뜻, 다시 말해 in-dividual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한 개인은 더 이상 필연적으로 나뉠 수 없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부분들로 나뉘어져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국가가 인간을 추방하는 것, 교회가 인간을 파문하는 것, 인간이 자신의 팔을 자르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나뉘어져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덧붙여서, 우리는 이로부터 개인을 in-dividual로 정의하는 것과 in-combinable로 정의하는 것은 사실 동일한 사태를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존재가 필연적으로 합쳐질 수 없는 존재들을 합친 것이라면, 그 존재는 필연적으로 나뉠 수 있는 존재이다. 반면에 어떤 존재가 필연적으로 나뉠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존재는 필연적으로 합쳐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요컨대 어떤 존재가 개인이라면 그 존재는 나뉠 수도, 합쳐질 수도 없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개인에 대해 보다 선명한 그림을 얻게 되었다. 개인이라는 개념은 명석하고 판명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개념의 내용은 항상 치열한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내용을 둘러싼 투쟁은 무질서하게 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에게 필연성의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투쟁이다. 고대와 중세에는 폴리스와 봉건영주 그리고 교회가 그러한 필연성을 소유한 반면, 근대에는 한 유기체로서 인간이 그러한 필연성을 가진 것이다.     


 이제 다시 시선을 현재로 돌려보자. 포스트 흑사병 시대의 결과로 우리는 개인은 인간이라는 것을 당연한 상식처럼 여기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의 논의에서 개인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개인, 즉 한 유기체로서 인간을 뜻하면서 사용할 것이다.     


 개인의 발명과 근대의 승리는 분명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을 물려주었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의 두 이념은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전근대로 회귀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일찍이 근대의 초기부터 지적되어온 것처럼 개인의 발명은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개인이 인간으로 정의됨에 따라 공동체는 필연성을 상실한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태어난 공동체는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하는 주어진 공동체가 아니다. 또한 공동체가 필연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 간의 유대의식과 연대 또한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한 공동체 속에서 너와 내가 같이 살아가는 것이 필연적이 아니라면, 나는 너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저 홀로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고 언제든지 다른 공동체로 넘어가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에 대한 감각과 타자에 대한 연대는 동정과 연민이라는, 언제든지 끊어져버릴 수 있는 아주 가느다란 끈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찬양은 바로 이 필연성을 상실한 공동체 속의 원자화된 개인들이라는 근대에 대한 불만의 결과이다. 물론 근대인들은 고대 그리스로 회귀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았고, 근대적 개인의 개인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개인들 간의 단단한 결속과 연대 위에 세워진 공동체를 구상하고자 했다. 사회계약론자들로부터 헤겔과 마르크스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비중의 차이와 구체적인 방법론에서의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적인 개인들과 그러한 개인들의 단단하고 유기적인 연대와 결속에 기반한 공동체는 근대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등장은 이러한 개인의 종말을 선포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것은 개인이 사라진 시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개인정보를 통해 동선을 추적하며,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에는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개인을 복종시킨다. 그러나 개인은 단지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적극적으로 국가의 방역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에 대한 침해라고 격렬히 반발한다.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한국의 방역 정책을 두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한국은 감시와 고발에 있어서 세계에서 둘째가는 나라라고 비판한 것은 바로 전형적인 근대적 의미의 개인의 개념에 기초한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이 타당한지의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이 사라진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세계를 막론하고 동일한 것 같다.


 그러나 이때 사라지는 개인이란 근대적 의미의 개인일 뿐이다. 전근대에서의 개인이 다른 의미를 지녔음을 고려하면 포스트 흑사병 시대 또한 개인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때 사라진 개인은 전근대적 의미의 개인이고 지금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근대적 의미의 개인일 뿐이다.     


 또한 엄밀히 말해서 개인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미 개인은 사라지고 있었다.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으로 대표되는 거대 IT기업들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개인 자신조차 모르는 개인의 취향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수많은 CCTV 속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통화내역과 카드사용내역은 정확하게 우리의 일상을 복원할 수 있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20세기 후반 이후 개인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고, 개인의 자유와 개인정보는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았다. 코로나19는 바로 이런 사태를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무엇이 아닐 것인지에 대해 적어도 하나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삶의 방식이 유지될 수 없는 시대, 즉 한 유기체로서 인간이 더 이상 개인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될 수 없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반드시 감시사회를 통한 전체주의의 등장이나 전근대로의 낭만주의적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중국의 모델에서 보여지듯이 전체주의적 모델의 부상가능성 또한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반드시 중국 모델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근대를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는 이상 전근대로 돌아간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전근대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없다는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유사하지만, 전근대의 개인으로서 공동체는 부자유와 불평등으로 가득했다.    

 

 따라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개인을 새롭게 정의하려고 시도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구체적인 모습이 어떨지에 대해 전부 해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여기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에 대한 한 가지 정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바로 평등한 공동체이다. 평등한 공동체는 전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가졌던 부자유와 불평등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가졌던 유기체로서 인간이라는 정의 역시 거부한다. 평등한 공동체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개인으로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최소의 존재이자 더 이상 합쳐질 수 없는 최대의 존재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에 대한 세밀한 이론적인 묘사를 더 해나간다는 것은 아직 그러한 개인이 구체화된 일종의 모델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다만 여기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가 어떤 모습일지 추측해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바로 한국에서의 방역모델 이른바 K방역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역량을 시험받게 된 오늘날 한국의 K방역은 단순히 동아시아를 넘어 선진국이라고 불리던 미국과 유럽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하나의 중요한 모델로 떠오르게 되었다. K방역의 성공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히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와 시민 사이의 유기적인 연계이다. 국가는 빠르고 적극적이고 정확하게 방역대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시민들은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 방역에 참여하는 동시에 국가가 놓치는 부분들에 대해 피드백하고, 국가는 다시 이를 수용해 수정·보완하는 일련의 흐름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가 작동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누구도 나뉘지 않고 통합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임과 동시에 합쳐질 수 있는 가장 큰 존재로서 국가의 모든 부분들이 합쳐서 움직인다. 마치 근대에 개인이라 불렸던 유기체로서 인간이 그랬듯이 말이다. 동시에 그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존재함에 따라 평등하게 움직인다. 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감염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은 전근대의 개인과 달리 평등한 공동체이다. (이러한 평등한 공동체의 등장이 왜 하필 한국에서 일어난 한국적 특성이었나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지만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다른 기회에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K방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를 온전하게 구현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K방역에서 평등한 공동체는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의 평등이라는 아주 특수한 평등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가 보여주듯이 다른 상황에서 비롯된 죽음의 평등에 대한 민감성은 코로나19에 비해 부족하며, 신천지 신도들과 성소수자들에게 쏟아졌던 차별의 언어들이 보여주듯이 죽음의 평등이 아닌 다른 평등은 여전히 고려의 대상조차 되고 있지 않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는 단순히 한 민족국가의 경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지만, 아직까지 K방역의 상상력은 국민국가적 공동체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K방역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은 바로 그 일례이다. (반대로 마다가스카르나 에티오피아 같이 코로나19에 취약한 국가들에 상당한 지원을 한 것은 K방역이 가지는 지구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이다.)     


 요컨대 K방역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개인이냐 국가냐의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개인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단순한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진정한 모델로서 K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급박한 문제로 초점을 맞추면, 방역 대책을 둘러싼 프라이버시 논쟁에서 한국은 개인의 자유와 개인정보의 신성함을 옹호하는 것도, 국가의 무차별적인 통제와 감시를 주장하는 것도 아닌 새로운 해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 벤담이 주장하고 푸코가 중요하게 분석했던 판옵티콘의 비유가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이때 판옵티콘이냐 아니냐 또는 판옵티콘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서 판옵티콘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자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앞서 논의된 것처럼 코로나19 이전에도 사실상 이미 프라이버시나 개인정보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것이 되었음에도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라는 개념에 의해 강력하게 지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정치적, 정책적 상상력이 꽃피워야 한다. 미국의 대선후보였던 앤드류 양이 거대 IT기업들의 개인정보의 사용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그 돈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것은 이런 개인 없는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준 하나의 사례이다.      


 그람시는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바로 이 위기, 바로 이 공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발명이 만들어낸-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지만-포스트 흑사병 시대, 즉 근대를 지배했던 이른바 서구의 헤게모니는 이제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여전히 다양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의 K방역이 얼핏 보여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개인으로서 평등한 공동체의 발명이 바로 그 새로운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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