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전 앵콜전시
역사를 담은 사진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러나 몇몇 사진들은 사진에 대한 한 가지 물음을 남긴다. 사진 속 인간이 추락하고 굶주리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에, 오로지 사진을 찍고 있는 그(녀)만이 손을 건넬 수 있었던 순간들에 셔터를 누른 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사진 속 인간은 아무런 실존의 잔향도 남아있지 않은, 그저 텅 비어있는 육체적 기표에 불과하다. 실존을 실재(reality)에 대한 감각이라고 한다면, 그 사진들만큼 실재에 대한 감각이 철저히 배제된 사진은 없다. 그 사진 속 인간은 어떤 실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아마도 사진을 찍는 그 사람이 담고 싶어하는 어떤 것 말이다. 그러한 사진들을 찍은 사진가들이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음에도,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듣거나 죄책감과 고뇌에 시달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소박한 도덕주의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그 이면에서 근본적으로 그러한 논리로 표출되는 일종의 정동(affect)은 한 인간의 실존성이 너무나 쉽게 지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다. 한 인간적 실존이 가지는 실재의 감각들은 사진 속에서 다른 무언가를 지시하는 수단이 된다. 그 감각이 죽음에 대한 감각이라도 예외는 없다. 그런 사진을 보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성에 대해서도 위협을 느낀다. 자신의 실재, 그리고 그에 대한 감각이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그 사진들 속에서 인간이 보는 것은 이를테면 도축되는 동족이다.
따라서 그 사진들은 극단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극단적인 비리얼리즘 내지 반리얼리즘이다. 그 사진들은 찍히지 않음으로써만, 즉 존재하지 않음으로써만 실재를 온전히 드러낸다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자신이 존재하게 되는 순간 그 존재 목적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사진들은 데리다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진 속에서 한 실존이 아닌 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무엇을 보게 된다. 그렇게 실존성이 제거되고 비어있는 기표에 우리는 나와 그 사진 속 인간을 한데 묶을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 무언가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도, 민족의 이름으로도, 인권의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다. “내가 ㅇㅇㅇ다”라는 구호는 그렇게 구성된다. 이것을 우리는 연대라고 부른다. 사진가들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로봇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사진을 찍음으로써 인간적인 무엇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 사진들이 제공하는 스펙터클은 리얼리즘을 배제하고, 즉 구체적 실존성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관념들이 들어와 경합하고 적대하는 새로운 공간을 열어젖힌다. 이 공간은 물론 진지한 변화를 위한 새로운 사유와 실천으로 채워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값싼 동정과 연민의 공간이 될 수도 있으며, 기부산업과 자선산업의 자본주의적 논리에 포섭될 수도 있다. 애초에 그런 사진들을 찍기 위한 경쟁이 언론산업의 무한경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고려한다면, 처음부터 지극히 자본주의적 욕망에 사로잡혀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그 사진들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전복적이지만, 반드시 혁명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까지 진보의 논리가 부딪혔던 하나의 딜레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진보 속에서 실존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 또는 개별적 실존에 탐닉한 나머지 방향성마저 상실해버리는 것. 또는 사랑과 혁명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것. 진보의 논리는 사랑과 혁명 사이를 진자운동해왔다. 물론 68은 혁명 없는 사랑도, 사랑 없는 혁명도 아닌 사랑 ‘그리고’ 혁명 모두를 원했다. 68은 사랑과 혁명이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과 혁명,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연결되어야 하는 두 개의(!) 무엇이었다. 연결된 것은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고, 진보의 논리가 딜레마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자본은 그 빈 공간을 포획하는 데 있어 너무나 유능하다. 68 이후의 많은 신좌파가 대학의 울타리 안으로 쪼그라들거나 자본주의적 소비의 늪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은 그 역사적 증거다. 혁명도 사랑도 모두 이윤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진정으로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사랑이냐 혁명이냐의 잘못된 문제가 아니라 ‘그리고’라는 이 연결어다. ‘나는 살인자였습니다’라는, 이라크전 이후 PTSD를 겪는 한 미군 병사의 사진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사진 속에서 그의 실존은 온전히 살아남아있다. 그의 경험과 기억, 상처와 질병은 오로지 그의 것으로 남아있다. 의자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지극히 평범한 이 사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실존을 지우길 강력히 거부한다. 사진을 보고 있는 당신도, 우리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살인자였음을 고통스럽게 고백한다. 사진가 역시 굳이 그 병사의 실존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살인자의 실존만을 사진 가득 채운다. 그러나 그 사진은 단순한 개인의 초상화가 아니다. 여기서 이라크전과 관련된 미국의 제국주의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추악한 면면들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은 실재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그것과 ‘함께’ 넘어서는 것들 역시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거기엔 자본의 논리가 끼어들 틈새가 없다. 나는 살인자라는 실존의 고통스러운 자기고백을 진정시킬 수 있는 모르핀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의학적 치료의 대상도 아니다. 사랑도, 혁명도, 심지어 사랑과 혁명 둘 모두도 아닌, 사랑혁명만이 그에게 필요한 것이리라. 이것이 개인과 사회, 주관과 객관의 고루한 이분법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