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으로 3주가량 연수를 받으러 내려오게 된 김에 연수원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수원 구경을 하리라 생각했다. 항상 야구는 잠실에서만 봤기 때문에, 수원야구장엘 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번 주말엔 kt 위즈의 홈경기가 없었다.
발길을 돌려 수원화성으로 향했다. 사실 수원화성을 처음 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생 때 답사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엄마가 등록을 해서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나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그것을 경험하던 순간의 분위기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위주로 기억하는 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목포에 여행 갔을 때 나는 낙지탕탕이를 먹었었다. 물론 낙지탕탕이는 매우 맛있었다. 하지만맛있었다는 기억은 굳이 목포에서 낙지탕탕이를 먹는 것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상황에서도 가질 수 있는 기억이다. 그보다 나에게 목포에서의 낙지탕탕이가 남긴 고유한 기억은, 늦은 시간에 테이블의 2/3 정도를 차지한 회식 손님들과 나머지 1/3을 차지한 가족 손님들사이에서 유일하게 혼자서 먹던 때 갑자기 솟구친 외로움과 고독함이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음 속에서 혼자 묵묵히 탕탕이에만 집중하다가 문득 엄습하는 위화감이란. 어쨌든 나의 기억은 이런 식이다.
수원화성에 대한 기억도 비슷하다. 나의 기억 속에서 수원화성은 평지와 언덕이 초록빛 잔디로 물들어있고 끝없이 이어지는 성벽들, 조금은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 속으로 걸어가면서 언제쯤 끝나나 하며 투덜대던 기억. 그러니까 평화롭고 조용하며 단조로운 분위기와 그에 맞춰 지루하고 따분하고 졸린 감상들.
그런데 웬걸. 수원화성을 잘못 찾아간 건지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산을 따라 성벽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이었다. 가벼운 산책 정도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지만 어느새 무더운 날씨와 함께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기억과 현실의 불일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서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기억하던 경치가 나오는 것 같았지만, 그곳은 전혀 조용하지도, 단조롭지도 않았다. 시끌벅적하고 복잡했다. 때로는 단지 감성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화성 세트장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이쯤 되자 나는 나의 기억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불완전하고 왜곡되어 있다. 물론 그 기억에 일말의 진실조차 담겨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나는 이전에 화성을 걸었고 낙지탕탕이를 먹었다. 그리고 그때 그런 경험 속에서 나는 내 기억에 담긴 감정이나 생각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약간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리라. 나의 기억 속 화성은 10년도 전의 내가 가진 인식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풍화되고 왜곡되어왔기 때문이다. 막상 10년이 넘게 지나 내가 직접 다시 겪은 화성은 기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과 현실이 불일치한다는 것, 나아가 그런 불일치가 나의 기억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은 현실을 기억 속의 환상으로 개조하기 위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까 기억의 폭력. 자신의 아이가 어렸을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사춘기에 들어서 공부를 안 한다고 왜 어렸을 때처럼 하지 못하냐고 체벌하는 것은 기억의 폭력이 물리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기억의 폭력은 반드시 물리적인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억을 절대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여기고 "나 때는 말이야~", "내가 해 봐서 아는데~"와 같은 말을 하는 이른바 꼰대들 역시 이런 기억의 폭력의 가해자다.개인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기억의 폭력은 개인적인 피해에 머무른다 쳐도, 기억의 폭력이 사회적이고 국가적으로 전개될 때, 이는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의 극우가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하는 노력을 보라. 독일의 네오나치와 미국의 트럼프를 보라. 그들의 주장의 기저에 흐르는 것은 왜곡되고 미화된 기억의 절대화, 그리고 그에 맞춰 현실을 개조하려는 기억의 폭력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을인정한다고 해서그것이 곧바로 나의 기억을 폐기해 버리고 그때그때의 현실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체성을 포기한 채 거대한 역사적, 사회적 물결의 흐름에 몸을 내맡겨 버리게 된다. 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허무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이는 기억의 폭력과 대비되는 현실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랜시스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 운운한 것은 이런 현실의 폭력을 오만한 형태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실의 폭력은 "대안은 없다"라고 단언하며, 우리의 기억을 부정하게 하고 우리에게 오로지 주어진 현실에 대한 완벽한 적응만을 요구한다.
기억은 분명 불완전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이 담겨 있다. 아니, 인간이 이상에 따라 기억을 조작하기 때문에 기억이 불완전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기억이 불완전하다고 하여 모든 기억을 폐기하는 것은 목욕물 버리다가 아이마저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의 폭력과 현실의 폭력 모두를 단호히 거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실을 통해 기억에서 환상을 제거하는 동시에, 환상이라는 군살이 빠진 기억 속 이상(理想)을 통해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 기억과 현실의 대립 속에서 새로운 기억과 현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수원화성이 내게 준 작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