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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ana Feb 18. 2019

유별난 결혼식이 뭐 어때서?

나답게 사는 이야기

나의 결혼식 이야기 1.

[76억 인구 중 단 한 명. 내가 나 답게 사는 건 축제 같은 일이야!]


'참, 네 형부가 그러더라 처제답게 결혼식 유별나게 했다고.'


작년 5월 내 결혼식을 마치고 얼마 안가 다시 만난 친언니가 형부가 지나가듯 하던 말이라면서 그랬다.

점잖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형부가 그랬다니. 절대 나쁜 의미로써의 "유별나게"가 아니었겠지만, 그 얘기를 친언니로부터 전해 들은 나는 나의 그 '유별남'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왜 우리 모두 유별나게 나답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이어갔다.




애초에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웨딩홀(혹은 호텔)에서의 '후다닥. 정말 축하해. 밥 잘 먹을게. 여기 축의금' (이하 후다닥 결혼식으로 생략) 형식의 예식은 꿈도 꿔본 적이 없는 터라 그렇게 할 바에는 그냥 둘이 바로 살림 차리는 게 낫지 라고 누누이 말해왔었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백이면 백 '결혼식 날은 정작 기억이 잘 안나. 너무 정신없이 지나갔거든'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드레스 샵 실장님이 유난히 호들갑을 떨던 그 드레스를 입고, 신부 대기실에서 입가에 경련이 나게 미소 짓다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신랑 신부 입장과 퇴장을 마치고, 물 한잔 마시면 좋겠는데 2부 드레스로 갈아입고 인사를 드리러 다니고, 하객들이 대부분 일어나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다 체하고, 다음날 가는 신행 캐리어를 재정비하러 가야 하는 그 하루.


그 하루, 그 몇 시간을  위해 드는 돈은 또 얼마인가?


두 주인공의 기억에 남지 않는 하루라면 그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강조해서 얘기하지만 후다닥 결혼식이 절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현대인의 삶과 환경, 그리고 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변했고 그에 맞게 결혼식 풍습도 자연스레 변해온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는 선택권이 있으면 좀 더 나와 그의 기억에 남을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몇 년간 외항사 승무원을 하면서 초대되거나 우연히 목격했던 해외에서의 결혼식들 덕에 예식에 있어서 정해진 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일찍이 스스로에게 던진 결과라고 할까.


약 3년 전에 외항사를 같이 다녔던 승무원 동기 언니가 프랑스인 남자 친구랑 결혼을 하게 돼서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신부 친구 대표로 결혼식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지금의 내 남편이 된 당시의 남자 친구도 하객으로 함께 동행했다.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방의 서쪽 해안가에 Brest라는 작은 항만 도시가 있는데 그 동기의 신랑이 이 동네 출신이라 덕분에 평생 구경 못할 뻔했던 곳을 가게 됐다. 중세시대에 지어진 작은 성당 안에서 신랑 신부의 직계 가족과 몇 명의 친구들 앞에서 성스럽고 엄숙한 혼인 서약이 이루어졌다. 이후 마을 근교에 있는, 현재는 호텔로 개조된 고성(故城)으로 이동하여 하객 모두가 밤새 웃고 춤추고 노래했던 그 특별한 기억이 내가 나다운 결혼식을 꿈꾸게 하는데 'inspiration'이 된 것이 분명하다.


각자가 개성 있는 결혼식을 해도 될만한 시대가 왔고 이는 튄다고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니라 축하받을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애초에 스몰 웨딩을 원했다. 연예인 이효리가, 이나영과 원빈이 그렇게 해서가 아니라 그게 맞는 것 같았다. 허례허식, 뿌린 돈 거두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가치들이 부각되는 예식이면 했다.


주인공인 내가 모르는 얼굴들이 와서 형식적인 축하를 해주고 식사하고 자리를 뜨는 결혼식이 아닌 진심으로 나의 행복을 바라는, 오늘의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많은 역할들을 한 사람들만 참여한 결혼식을 원했다.


일생에 한 번 있을 축제를 정말 우리 답게 하고 싶었고 그리하여 양가 직계가족들과 친한 친구들 각각 다섯과 그들의 파트너(배우자 혹은 연인 사이)가 참석하여 40명이 조금 안 되는 인원이 모였다.


친구들과 친형제들이 돌아가며 축사를 했고 축가를 불렀다. 이 날의 슈퍼스타는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을 부르신 친정 엄마였다. 많이 울고 웃었던 결혼식이었다.


'네가 스몰 웨딩을 제주도에서 한다고 했을 때 사실 많이 걱정했는데 내 생에 이렇게 멋진 결혼식을 보게 되다니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덕분에 제주도 여행까지 덤으로 하니 좋았어.'


'다시 할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 결혼하고 싶다.'


물론 말만 스몰웨딩이지 웨딩 예산은 그만큼 스몰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의혹에 정면 반박할 수 없지만, 애초에 내가 말하는 '스몰'은 참석 인원이 적은 웨딩을 뜻했던 거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원도 한도 없이 내 맘에 쏙 드는 결혼식을 했지만 그렇다고 서울에서 웬만한 웨딩홀이나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보다 많이 지출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맘에 드는 스몰 웨딩은 과한 지출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 코피 나게 치열한 계획과 준비는 필수이다(실제로 신랑은 엑셀로 웨딩 예산서를 정리하다 코피가 났다...).


웨딩 플래너를 고용하지 않고 우리 둘이 직접 결혼식을 준비한 탓에 업체들 선정에 앞서 몇 달에 걸친 검색을 했으며 수십 통의 이메일과 통화를 주고받았고 직접 제주도로 사전 답사까지 갔다. 그렇게 발품을 팔고 업체들을 정하고 결혼식의 Theme Color를 정했다. 하객으로 온 친한 언니의 도움으로 참석자 모두의 이름을 캘리그래피로 쓰고 지정석을 꾸몄으니 '유별나다' 할 수밖에...


그래서 우리 형부가 말했던 '처제답게 유별나게'라는 결혼식이란 아마도,

1. 굳이 제주 출신이 아님에도 가족, 친구들을 제주도로 불러서 결혼한 것.

2. 청첩장과 주례 생략, 신랑 신부 동시 입장 등등 여러 면에서 보편적인 대한민국 결혼식의 틀을 벗어난 것.

3.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 장장 여섯 시간에 걸쳐 본식과 피로연을 마친 것.


애초에 우리가 원했던 결혼식이란,

1. 그 날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가장 즐길 수 있는 예식.

2. 우리 두 사람에게 정말 의미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모인 예식.

3.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두 주인공과 하객들에게 두고두고 추억이 되는 예식.



그래서 그 결과는?

하와이 아니고 제주도 맞다. 야외 결혼식에서의 날씨는 정말 너무 중요하다. 이 날은 날씨가 다 했다고 본다.
고심 끝에 고른 신랑 신부 입장의 BGM 은 Ed sheeran의 'Perfect'. 그리고 노래의 제목 같았던 하루.



축하해주신 그대들의 눈동자에 건배. 치얼스. +_+
이름표가 꽂힌 쪼꼬렛은 덤.


그때 분위기로 보면 별도 달도 따줄 듯하다.
사랑과 애정이  넘쳤던 하루. Love really was in the air-


우리는 결혼식 중간중간 잊지 않고 서로에게 행복하냐고 지금 충분히 즐기고 있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그리고 눈빛으로 표정으로 속삭임으로 수 없이 대답했다. 행복하다고.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고.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 당신과 나의,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하루.

본식 때 써서 읽어줬던 편지에 말했듯 앞으로도 우리 삶의 주인공으로, 또 주체로서 남들 눈치 너무 보지 말고 여행하듯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금껏 그래 왔듯이 나답게 유별나게 살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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