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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靜天) 에세이 19] 오피스 사이코패스

나는 혹시 열정을 강요하며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사이코패스는 아닌가?

by 한정구
1.jpg (사진 출처 : 영화사 홈페이지)


2021년 3월 드디어 잭 스나이더 감독판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가 돌아왔다. 필자는 이 영화를 4시간 동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봤다. 엄청난 액션이 끝나고 영화가 끝나갈 때쯤 등장한 한 인물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바로 사이코패스의 아이콘 <조커>다.



2.jpg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2019년 개봉한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조커(Joker)>는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이름없는 코미디언 조커가 서서히 빌런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기와 집착의 아이콘 조커...그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코믹스와 영화 팬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조커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 특히 조직 내에 얼마나 많은 사이코패스들이 있는지 한 번 다뤄보고자 한다.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


트롤리 딜레마는 2014년 발행된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를 통하여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첫 번째 상황>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 기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다. 저 멀리 레일 위에는 5명의 사람이 일하고 있다. 트롤리 기차가 그대로 달린다면 5명은 반드시 죽게 된다. 만약 레버를 돌려 레일 방향을 바꾼다면 5명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레일 위에서 일하는 1명은 죽게 된다. 레버를 돌려야 할까?


영국 윤리 철학자 <필리파 푸트(Philippa R. Foot)>가 제안한 이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89%가 레버를 당겨야 한다고 대답했다.



3.jpg (사진 출처 :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이동귀 저))


<두 번째 상황>

이번에는 육교 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고장 난 트롤리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 트롤리 기차는 레일 위에서 일하고 있는 5명의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만약 육교 위에서 무거운 것을 트롤리 기차 앞에 떨어뜨린다면 트롤리 기차를 멈춰 세울 수 있다. 마침 육교 위에는 아주 뚱뚱한 사람이 한 명 있다. 이 뚱뚱한 사람을 밀어 떨어뜨린다면 트롤리 기차를 세우고 5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이 뚱뚱한 사람을 육교 아래로 밀어야 할까?


미국 도덕 철학자 <주디스 톰슨(Judith J. Thomson)>이 제안한 이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78%가 뚱뚱한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4.jpg (사진 출처 :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이동귀 저))


두 문제 모두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응답자들은 첫 번째 문제에서는 레버를 당겨 1명을 희생해야 한다고 하면서, 두 번째 문제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수단>이 무엇이었느냐에 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문제에서 수단은 <레버>였다. 반면 두 번째 문제에서 수단은 뚱뚱한 <사람>이었다. 바로 <사물(레버)>이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에 죄책감이 작용했고, 그래서 절대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된다고 답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이성과 양심은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심리학 용어사전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 자기 중심성, 기만 등과 같은 특성을 포함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겉으로는 상당히 정상이며, 지능도 보통 이상이지만,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며 타인을 목적 달성의 도구로 이용하고, 무책임하면서 냉담하고 쉽게 거짓말을 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사이코패스라면, 트롤리 딜레마 두 번째 상황에서 ‘망설임 없이’ 뚱뚱한 사람을 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 주변에는 조커 수준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가 생각보다 많다.



안티 사이코패스 리더십(Anti- Psychopath Leadership)


필자는 이전 글 <[정천(靜天) 에세이 18] 당신은 잊혀질 것이다>에서 2020년 엠브레인이 실시한 리더십 선호도 조사결과를 소개한 바 있다.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삼국지 등장인물은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려 하며, 신중하고, 겸손하며, 야망을 크게 펼치기 보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잘 지키는, 신중하며 안정감 있는’ 손권이었다.


밀레니얼 세대에 이어 Z세대가 조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MZ(Millennials + Z)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사회적 정의, 환경 이슈에 관심이 높다. 엠브레인이 실시한 리더십 선호는 이러한 MZ세대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MZ세대에게 사이코패스 같은, 다시 말해 목표를 위해 사람을 ‘도구’로 보는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서나 통했던, 부하직원들을 닦달하면 성과가 나온다고 믿는 상사, 자기 과오를 덮기 위해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기고 해결되지 않으면 책임을 전가하는 상사,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말하고 나 몰라라 하는 상사는 당장은 인사권, 결정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하직원들이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손에 쥔 권력이 끝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된다. 부하직원들에게 그러한 상사는 극단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수단으로만 보는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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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Leader)든 팔로워(Follower)든 생각해 볼 시간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열정을 강요하며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오피스 사이코패스는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다.



글 | 정천(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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