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정말 떠나야 했나?
우리나라 속담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의 유래를 찾기 위해 위키백과를 뒤져보니, 부패한 절을 개혁하려다 실패한 스님이 체념하면서 뱉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구성원에게 “싫으면 네가 떠나라”며 윽박지르는 의미로 쓰인다. (필자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필자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드라마 한 장면에서 이 속담이 들렸다. 그때까지 텔레비전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 속담이 나온 장면에서 마치 「칵테일 파티 효과」처럼 이 속담이 귀에 꽂혔다.
칵테일 파티 효과 : 칵테일 파티같이 많은 사람의 목소리, 잡음이 많은 공간에서도 관심있거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는 현상 (필자 편집)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내뱉은 그 스님은 정말 절을 떠나고 싶었을까? 정말 절을 떠났을까? 떠날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설 1. 그 스님은 절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었다.
스님 입장에서는 부패한 절이 가망없다고 느꼈다면, 애초부터 개혁하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다른 절에 이력서를 넣거나, 아는 스님의 스님을 통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개혁하려고 한 것을 보면 그 스님은 절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스님은 그 절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진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심을 가지기 위해서도,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진심을 다하기 위해서도 진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속세를 떠날 결심을 하고 처음 그 절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도,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을 위해 맞았던 찬바람과 아침햇살도, 절을 찾은 불자들의 눈빛도, 주지스님의 불경 읽는 소리까지도 그 모든 장면과 그 모든 순간이 스님에게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은 진심을 스님은 부패로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설 2. 그 스님은 끝까지 절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패세력에게 밀려 쫓겨나게 된 순간까지도 스님은 절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손길과 입김이 남아있는 풀 한 포기, 돌 하나, 마루에 남아있는 낡은 흠집 하나까지도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두고서 떠난다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늦은 저녁 헤드헌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헤드헌터가 문득 최근 채용이 끝난 모기업 임원 포지션 지원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지원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국내 굴지 대기업 임원이며 연봉은 6억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연봉 6억원을 포기하고 연봉 1억원의 중견기업 임원 포지션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든 임원은 보장된 자리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연봉 6억을 포기하고 1억을 선택했을까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아마 본인만 알겠죠.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거나, 특별한 뜻이 있을 수도 있겠죠. 간혹 조직 내 권력싸움에서 밀려 나오는 분도 계신데, 그 이유일 수도 있어요. 그 분은 그냥 그 회사를 떠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스님은 애정어린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패세력 공격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었음에도 버텼을 것이다. 절에서의 마지막 밤, 스님은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시련을 주신 부처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절을 떠나면서 마당에 서 있는 나무줄기를 쓰다듬으며, 떨어진 돌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가 평소 쉽게 내뱉는 속담의 주인공인, 스님 입장을 생각해 봤다. 모든 관계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1분만 생각해보면 더 좋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인 것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강하게 느낀다.
그럼에도 아직도 내리지 못한 결론 하나. 나는 절을 떠나는 스님일까? 스님을 내쫓은 스님의 동료일까?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둘 다 될 수도 있고, 둘 다 경험해 봤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엉뚱한 생각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글 | 정천(靜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