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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靜天) 에세이 32] 뒤늦은 후회

by 한정구

J에게 #1


2025_20220927104536502.JPG (사진출처 : 퍼블리)


J는 전국 고등학생 퀴즈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다. 그의 진학목표는 S대학교. 그러나 수능 며칠 전 갑자기 찾아온 몸살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 다행히 Y대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1학기가 끝나자 J는 다시 수능을 준비했다. 그러나 두 번째 수능은 역대 최악의 난이도 실패로 문제가 되었던 시험이었다. J는 다시 Y대로 돌아왔다. 달라진 것은 있었다. 이번에는 공과대학 신입생이 아니라 사회대학 신입생이었다.


필자는 그때 J군과 처음 캠퍼스에서 만났다.


J는 대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다. 대부분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은 나르시시즘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J는 달랐다. 분명 우리들보다 똑똑한데 가끔 바보같다고 느낄 만큼 착하고 순박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J가 말했다.


“나 마지막으로 수능시험 한 번만 더 도전해 보려고 해.”


다음 해 봄날, J는 Y대 캠퍼스로 다시 돌아왔다. 필자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가장 속상한 사람은 J 본인일 테니까…


시간이 흘러 친구들이 한 명씩 입대하기 시작했다. J에게도 입영통지서가 도착했다. 훈련소 위치는 강원도. 그곳에서 훈련을 받으면 강원도 최전방으로 배치된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J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후방부대 행정병으로 배치된다고 했다. 똑똑한 J에게 어려운 자격증이 아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J는 자격증을 취득하고서도 이듬해 강원도 그 훈련소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몇 년 후 예비역이 된 우리들은 캠퍼스에서 다시 만났다.


어느 날 J가 필자에게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회계는 공부해두면 좋을 것 같았다. J는 열심히 공부했다. 반면 필자는 수업시간 내내 딴생각만 하다가 1주일 후 학원비를 환불받았다.


1년 후 필자는 취업을 했고 J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시 1년 후 다시 만났을 때 J는 사법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한다고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너무 긴 도전이 두려웠을 것이다. 취업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후 J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5년 후 J는 그 동안 모은 돈으로 미국으로 MBA 유학을 떠났다. J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닌 멋진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2년 후 J는 미국 명문대 MBA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대기업 월급쟁이가 되어 지금 열심히 살고 있다.



J에게 #2


2025_20220927104636633.JPG (사진출처 : 동아일보, 서울국제마라톤대회)



필자는 그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J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J는 세상과 싸울 용기가 없어 보였다. 언제까지 꿈만 쫓을 것인지 걱정되기도 했다. J의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안줏거리가 되기도 했다. S대학교 도전, 후방부대 배치 도전, 회계사 도전, 변호사 도전, MBA 도전 등 도전으로 온통 얼룩진 그의 인생을 장난처럼 이야기 하곤 했다.


그래도 J는 절대 화를 내거나 싸움을 거는 일이 없었다. 분명 속이 상했을 텐데도 친구들과 함께 떠들고 웃었다.


어느덧 40대가 된 우리는 여전히 J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더 이상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J는 생각없이 도전만 했던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인생을 멀리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한 진정한 협객이었다. 오히려 중간고사, 기말고사, 레포트, 학점 등 눈 앞에 인생만 고민하던 우리가 부끄러운 존재들이었다.


왜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J 만큼만 똑똑했어도 그 길을 함께 걸었을 텐데. 그럼 지금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J에게 #3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심리학과 닐 로스 교수에 따르면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Action)」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Inaction)」로 구분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그 행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만약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결과를 놓친 것이 아까워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J는 진정한 위너(Winner)였던 것이다.


글 | 정천(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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