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슬픈 전주에 이어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머물어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20대의 마지막 날, 순수하기만 했던 청춘을 떠나보내는 슬픈 마음을 담은 서정적인 가사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가사에 공감하지 못했다. 대학입시, 입대, 취업으로 힘들었던 20대를 떠나보내는 슬픔보다는, 진짜 어른이 되는 30대에 대한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연말이 되면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표정을 보인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많은 10대는, 20대가 되는 즐거움을 보인다. 30대가 되면 마치 젊음이 사라질 것같이 느끼는 20대는, 노래 가사처럼 청춘을 보내야만 하는 아쉬움을 보인다. 40대가 되면 아직 이룬 것도 없는데 벌써 중년에 접어드는 30대는, 고민을 보인다.
국내 최초 그림 DJ로 유명한 한젬마는 그녀의 책 ‘그림 읽어주는 여자’에서 나이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대학교 시절 신입생 앞에서 인생에 대한 철학과 방향을 들려주는 선배들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선배들조차 아직 경험이 모자란, 겨우 22, 23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런 선배들의 말이 진리처럼 들렸을까? 아마 우리의 세계관이 캠퍼스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관을 넓힌다면 '나이 듦'은 '노화'가 아닌 '성숙'이 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매너가 녹아 있고 지식과 지혜가 깊어지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늙었다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섹시함의 아이콘이었던 가수 이효리는 보통 셀럽들처럼 돈 많은 사업가나 재벌2세와 결혼해서 귀부인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평범한 음악가와 결혼해서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고 유기견을 돌보는 인생을 선택했다. 당찬 행보와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를 보며 우리는 40대 중반의 그녀에게 절대 늙었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멋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남들의 시선이 아닌 그녀 자신이 세계관을 만들어 온 것이다.
반면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세계적인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지금도 기행을 일삼고 자기관리에 실패하면서 늙은 옛날가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그 숫자를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결정해버린다. 예를 들어 40대가 되면 스키니진을 입으면 안 될 것 같다. 40대가 되면 차는 무조건 벤츠를 타야 할 것 같다. 40대가 되면 대학로는 걸어 다니면 안 될 것 같다. 40대가 되면 생맥주보다는 와인이나 위스키만 마셔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보다 넓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인생을 60세까지로 보는 사람이라면 40대는 종착지에 얼마 남지 않는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이 듦에 대한 조바심을 느낄 수 있다. 반면 100세 또는 그 이상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40대는 아직 인생을 더 배워야 하는 청년이기 때문에 아직도 더 채우고 정진해야 한다는 동기부여에 감응할 수 있다.
2023년 6월부터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통용되던 한국식 나이를 만나이로 통일한다고 한다. 많은 우여곡절이 예상되지만 40대인 필자 역시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려질 수 있어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는 차라리 숫자의 줄어듦에 즐기기 보다는 세계관 확장에 더 신경을 쓰려고 한다. 포스트 코로나로 가능해진 세계여행을 통해 다른 민족과 다른 문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볼 계획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철학적 조언을 얻을 계획이다. 그렇게 더 깊이 있는 글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날 예정이다.
글 | 정천(靜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