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나를 지켜준 것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실업급여였다.
이미 지쳐 있었고, 내 마음은 오래 전부터 회사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두려움이 컸다.
그러다 사무실이 도심 외곽으로 이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편도 두 시간 반 거리라는 숫자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 정도면 실업급여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조언에 희미한 희망이 생겼지만, 동시에 걱정도 따라왔다.
원래부터 내 출퇴근은 길었다.
‘기존에도 멀었는데, 조금 더 멀어진 거면 그냥 다니셔야죠’라는 말을 듣게 되면 어쩌지?
괜히 퇴사하고, 조건이 안 된다고 하면 되돌릴 수도 없잖아.
고용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지만, 답은 단 하나였다.
“거리 기준은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직접 증빙하셔야 합니다.”
그 이후, 퇴사를 결정했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용센터를 찾아갔다.
네이버 지도로 경로를 찍어 캡처하고, 예상 소요 시간도 함께 정리해 제출했다.
담당자가 “네, 조건 충족되시네요”라고 말해준 그 순간, 그 말 하나에 얼마나 큰 안도감이 밀려왔는지 모른다.
그제야 진짜 쉴 수 있겠다는 실감이 났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교육을 받았고, 이후로는 매달 구직활동 증빙을 제출해야 했다.
중간에는 고용센터에 다시 방문해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집 근처를 걸었고, 집안 정리를 싹 하며 마음도 함께 정돈했다.
‘쉴 수 있다’는 것이 무기력으로 빠지지 않도록, 나만의 리듬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들이 내게는 그 어떤 회복보다 깊은 숨이 되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4개월쯤 되었을 무렵, '이 시간이 곧 끝난다'는 예감이 서서히 불안을 불러왔다.
이후의 삶은 어떻게 이어질까?
내가 정말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 무렵부터 슬슬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물론, 실업급여 받기 위해 증빙을 해야했기에 구직 활동을 하긴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더 불안했다.
결국 나는 7개월 만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취업이 결정되자 실업급여 조기 취업 수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은 금액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살짝 생겼지만, 나는 8개월 중 7개월이나 이미 받았기에 '조기취업'의 대상은 아니라고.
어쨌거나 나는 다시 일하기 시작했고, 다시 '무엇인가를 해내야하는 일상'에 적응했다.
실업급여는 단순히 금전적 지원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돌볼 수 있게 해준 제도였고,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고도 쉬어도 된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 8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를 나와서 처음 마주한 ‘쉼’이라는 단어.
그 단어는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