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나는 그저, 성실하려고 했을 뿐이었는데요.”
9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 대한 기억.
그 시간 동안 나는 늘 바빴고, 많은 일을 해냈다.
때때로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나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저, 끝까지 해내려고 애썼던 사람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놓지 못하고, 물고 늘어지던 집요함.
그게 성실함처럼 보였고,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칭찬이 된 거겠지.
팀에 같은 포지션의 동료가 있었지만, 새로운 일은 늘 나에게 왔다.
그 친구는 사회성이 좋아서 사람들과 잘 어울렸고, 나는 묵묵히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았다.
어느 날, 주간 업무 보고서를 작성하다 말고 문득 팀장님께 물었다.
“근데요… 왜 이번 주에도 이 모든 일을 제가 다 맡아야 하죠?”
팀장님은 아무 말 없이 잠깐 민망하게 웃을 뿐이었다.
야근은 내 일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야근이 싫었다. 정말 싫었다.
그래서 야근 중에도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수다를 떨다 보면 훌쩍 사라지는 한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씻고 쉬고 싶었다.
그 시절, 야근 식대를 청구하는 시스템도 내겐 불편한 잔일 같았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에, 그런 것까지 챙기기엔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팀에 차출되었다.
회의는 아침 9시에 시작되어 저녁 6시에 끝났지만,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마케팅 부서와 콘텐츠 부서의 입장은 평행선을 그었고, 서로의 언어가 달라 결국은 컨설팅 업체까지 투입되며 프로젝트는 더 커졌다.
회의는 길어졌고, 결정은 더뎠다.
회사는 프로젝트 투입 인원에게 기존 업무에서 ‘롤아웃’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팀의 기획파트 선임이었고, 후배들의 기획서를 검토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하루 종일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 팀의 후배들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친 내 얼굴을 보고 그들은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해줬는데 그들의 표정에서 오히려 나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느껴졌다. 자기들이 컨펌받아야 할 업무를 내미는 당연한 그 일을 미안하다는 듯 내미는 그들의 마음이 더 안쓰러워 나는 그들의 일을 먼저 봐주었다.
그렇게 피드백, 컨펌을 끝내면 내 업무는 저녁 8시에 다시 시작되곤 했다.
그 시간이 몇 달간 반복되자 나는 점점, 안으로부터 무너져내렸다.
나중에... 퇴사 후, 오랜만에 만난 한 후배가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저... 사실… 그때 차장님이 일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은 묘하게 신선한 충격이 되어 오래 남았다.
어쩌면… 그 말 한 줄이 나를 완전히 각성하게 했다.
나는 다짐했다.
다음 회사부터는 '야근'을 지양하는 곳으로 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