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새벽, 광역버스에 앉아 있던 사람

by 프로불평러

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오직 ‘살아내는’ 데 집중하느라, 내가 얼마나 버텼는지조차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직장인이었을까.’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감내하고, 무엇을 사랑했을까.’

기억은 늘 풍경부터 따라온다.
책상도 아니고, 회의실도 아니었다.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직장의 기억은, 매일 아침 나를 실어 나르던 그 광역버스 안이었다.


출근길에서 얼어붙던 나날들

2022년,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방영되었다.
조용하고 서늘한 분위기의 드라마였지만, 묘하게 따뜻한 위로가 있었다.
그 초반, 유독 공감되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경기도민의 출근길.

드라마 속 삼남매는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산 넘고 물 건너 서울로 향했다.
밝을 때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어둑한 밤.
하루 두 번, 왕복 네 시간의 이동이 삶을 잠식해 가는 이야기.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아, 나도 저 경기도민이었다.’

어찌 나만 힘들었겠냐만은… 그래도 나는 참 힘들었다.


처음에는 그리 고되지 않았다.

팔팔한 젊음이 있었고, 버스 안에서 푹 자고 일어나면 회사에 도착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어쩌면 그 시기엔 당연했다.

회사도 좋았다.
또래 동료들과 좋아하는 선배들이 있었고, 힘든 날보다 즐거운 날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출퇴근이라는 ‘길’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겨울,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역삼역 근처였다.
다행히도 집 앞에서 강남까지 가는 광역버스가 있었고, 집이 거의 출발점에 가까워 항상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초반에는 그게 큰 복지처럼 느껴졌다.
텅 빈 버스에 올라 나만의 애착 좌석에 앉고, 창밖을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한숨 푹 자고 나면 개운하게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무너진 건, 겨울이었다.
출발지에서 타는 나는 밤새 차고지에 얼어 있던 버스를 매일 그대로 마주해야 했다.

히터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았고, 온기가 돌기까지는 족히 1시간은 걸렸다.
그동안 나는 꽁꽁 언 좌석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만 했다.

추울 때는 움직이면 그나마 낫다고 하지만 그 버스 안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가만히 있는 몸은 더 쉽게 얼었고, 추위에 긴장한 근육은 금세 통증을 만들어냈다.


버스에서 내리면, 나는 역삼역까지 약 15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빌딩숲 사이로 몰아치는 찬바람을 맞으며한겨울의 강풍 속을 걸어가는 일은 그저 ‘추운 날씨’라기보다는 하루의 첫 번째 시련에 가까웠다.

어느 해,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3주 넘게 지속되던 시절.
나는 출근길 도중 너무 추워 중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때, 나는 매일 조금씩 얼어붙고 있었다.


밀폐된 공간, 하루 4시간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간이었다.
하루 두 번, 왕복 네 시간.
그렇게 출퇴근을 한지 6년이 되어가는 시점, 광역버스 안에서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점점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탈 때 텅텅 비어있던 버스는 정류장을 거칠 때마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올라타 금세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
나야 앉아 있었지만, 숨 쉬기 힘든 공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버스에 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고, 때로는 **‘이 안에서 숨이 멎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공황에 가까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눈이 오는 날이면 더했다.
길어지는 버스 시간, 더 갑갑한 실내, 지연되는 출근길.

나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일보다, 사람보다, 그 길이.
회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전에 나는 그저 출근길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품곤 했다.


숨통을 트게 한 전환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이사를 갔다.
여전히 강남권이었지만 버스를 중간 지점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야 하는 구조였다.

그 사소한 변화가 나에게는 ‘숨 쉴 구멍’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그 버스 안에서 하루 두 시간을 모두 견디지 않아도 됐고, 이동 중에 ‘전환’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
10년 넘게 말만 무성하던 우리 동네에 드디어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출근길에는 선택지가 생겼다.
버스-지하철 루트, 또는 지하철-지하철 루트.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교통수단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에서 탈출한 것도 아닌데, 삶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사람들도 말했다.
“요즘 표정이 좋아졌네.”
“전보다 훨씬 밝아 보여.”

맞다.
단지 출근길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나는 살 것만 같았다.

물론 또 한번의 이사로 퇴사를 결정하게 되긴 했지만...


그래서 나는, 거리를 본다

그 후로 나는 회사를 선택할 때 항상 먼저 교통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조직이라도, 아무리 멋진 프로젝트가 있어도 매일 나를 삼켜버리는 출퇴근 길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회사는 내가 다녔던 회사들 중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자차로 30분.

그 ‘나만의 공간에서의 30분의 시간'이 내 삶을 가볍게 만들었고, 출근이 더 이상 생존이 아니라 ‘하루를 여는 리듬’으로 바뀌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을 향해 이동 중인 수많은 직장인들이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을지 몰라도 그 길 위에 깃든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두에게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인다.
경기도민으로, 한때 그 길을 살아낸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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