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나를 갉아먹는 야근에서 벗어나기까지

[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by 프로불평러
쟤는 야근 안 하는 애야

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나를 불렀던 사람, 내가 알던 사람

퇴사 후 잠시 쉬고 있을 무렵, 예전 상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로 와요. 같이 일하자.”

나는 그 사람과 성향이 잘 맞지 않는다고 여겨왔지만, 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과 내가 아는 나 사이에는 어쩌면 간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회사는 규모가 꽤 컸고, 안정적인 조직으로 보였기에 나는 그곳으로 이직하기로 결심했다.



첫날의 충격

입사 첫날. 그 사람은 나를 팀원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일 잘하는 친구야. 야근도 엄청 잘해. 밤샘도 거뜬하게 하던 친구라니까?


말끝을 흐리며 웃었지만, 그 말은 내 마음 어딘가를 깊게 찔렀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았다.

야근을 무기 삼아 버티던 지난날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무의미한 밤

그날,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밤 11시가 되어야 회의가 끝났다.
마지막 택시를 타고, 지친 몸을 겨우 집으로 옮겼고 택시비는 5만원 가까이 나왔다.

회의가 유의미했다면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저 질질 늘어지는 논의였고, 효율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 직장에서였다면 후배가 가져온 프로모션 안건을 1시간 이내에 검토하고, 실행 가능한 방향으로 다듬었을 것이다.

그런 비교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나는 다시, 무너졌다.

다음 날, 옆자리 팀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여긴… 야근이 진짜 많은 회사예요.”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에 철컥, 하고 닫히는 소리를 남겼다.


그 이후, 마음속에 남은 다짐 하나

나는 그곳을 오래 다니지 못했다.

다음 회사에서는 “쟤는 야근 안 하는 애야”라는 인식으로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가 생기면 그 이미지에 맞게 일을 주고, 맡긴다.

정시 퇴근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퇴근 이후 시간은 침범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이 되었다.

대신 9시부터 6시까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자.
문서는 더 빠르고 간결하게, 회의는 더 짧고 집중해서. 일을 더 잘하고 더 빨리 끝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새로운 감각

그 이후 입사한 회사에서는 정시 퇴근이 가능했다.
사람들도 그런 나의 리듬을 존중해줬다.
나는 수영을 다닐 수 있었고, 수영이 없는 날에는 가족과 저녁을 함께할 수 있었다.

하루가 나에게 돌아온 느낌이었다.
일이 아닌 ‘나의 삶’이 조금씩 회복되는 감각.

그게 나를 살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다음 이직한 회사에서는 처음 1년간은 괜찮았지만, 이후에는 하루 14시간 근무가 반복되었다.

일이 너무 많았고, 그건 내 경력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엔 그 버거움에 눈물을 훔치며 문서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내가 나를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년이 지나고 그렇게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야근은 사람을 소모시킨다

주 52시간 제도에 대해 말이 많다.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있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제도가 시작되면서 적어도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다고 믿는다.

그전엔 젊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자기 삶이 부서지는 것도 모른 채 일에 파묻혔다.

때로는 그 끝이 너무나 슬프고 잔인하게 마무리되기도 했다.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제야 선택이라는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야근을 잘한다는 말. 그건 더 이상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나는 제시간에 일하고, 퇴근 후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이제는 더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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