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야근의 기억, 그리고 부서진 책상

[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by 프로불평러

“그 시절, 우린 6개월을 밤에 버텼고, 1개월은 낮처럼 일했다.”



오래된 야근의 계절

첫 회사였다.
입시 콘텐츠로 오랜 시간 입지를 다졌던, 전통적인 오프라인 기반의 교육 기업.
트렌드에 발맞춰 온라인 팀을 신설하겠다는 계획 아래, 나는 신입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팀은 막 구성된 상태였고, 분위기는 낯설었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신입 셋, 외주 인력, 그리고 팀장과 오프라인 교육 출신 대리 한 명.
그렇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서,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팀에는 온라인에 대한 이해도 갖춘 기획자,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있었지만, 정작 프로젝트의 선임 리더 역할은 ‘학원 콘텐츠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오프라인 출신의 대리에게 주어졌다.
리더십은 그렇게 방향을 잃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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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무의미한 밤의 반복

프로젝트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컨텐츠를 온라인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고, 신입들은 어리둥절했고, 팀장과 대리 역시 온라인 문법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야근이 시작되었다.
아니, 야근이라는 단어조차 어색할 정도로, 우리는 퇴근이라는 개념 자체를 잃어갔다.
일이 없어도 퇴근은 허락되지 않았고, 정시가 지나면 모두 함께 밥을 먹은 뒤, 다시 회사로 돌아와 밤 11시, 자정이 넘어도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주말과 연휴에도 출근이 당연했고, 휴일임에도 출근이 늦으면 팀장은 그 직원이 도착하기 전부터 우리를 불러 앉혀 놓고 비난을 시작했다.
마치 팀 전체가 잘못한 것처럼,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곤 했다.


팀장은 불안해했고, 그 불안을 심야 야근 시간에 우리를 불러모아 긴 연설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새벽이 다 되어가는 시간, 우리는 불 꺼진 회의실에서 감정도 없이 그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정확히 6개월.
우리는 매일 야근했고, 밤샘했고, 주말 출근도 했으며, 가끔은 찜질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6개월의 산물

서비스는 마침내 런칭되었고, 그 순간부터 보름 가까이 우리는 다시 야근 체제로 전환되었고, 고객센터 업무까지 함께 맡으며, 마치 콜센터 직원처럼 전화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미 얼굴엔 피로가 깊게 내려앉았고, 집중력은 바닥이었지만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정말 힘든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다 같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생각 하나로 겨우 견뎌냈다.
그게 첫 직장의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던 시절이었다.


1개월, 낮의 온도로 다시 만든 서비스

다음 해, 그렇게 만들어낸 서비스는 여러 가지 문제로 다시 개편을 맞게 되었고, 그 사이 학원 출신 대리는 회사를 떠났다.

이번에는 개발자였던 선배가 기획자로서의 역할까지 맡으며 프로젝트를 리드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단 1개월.
1개월 동안만 우리는 일정 조율을 하며 밤 9시까지의 야근을 유지했고, 주말과 휴일에는 단 한 번도 출근하지 않았다.

대리는 팀장님의 과도한 개입을 조율했고,불필요한 잔류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업무에 필요한 것만 명확히 정리해 전달했다.

그리고 런칭 당일 오후 6시, 모니터링을 마친 후 그는 우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잘 돌아가네요. 오늘은 퇴근합시다. 다들 한 달 동안 정말 수고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조금 얼떨떨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렇게도 일이 되는구나, 그렇게도 서비스가 만들어지는구나. 재미있다...


그날 밤, 그리고 부서진 사무실

그날 밤, 술 약속이 있다고 5시쯤 먼저 퇴근한 팀장님은 아마 늦은 시간, 술을 마시고 회사로 돌아왔던 모양이다.
텅 빈 사무실을 보고, 분노가 터졌던 거겠지.

다음 날 아침, 가장 먼저 사무실에 들어선 나는 믿기 힘든 장면을 마주했다.
모니터와 키보드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케이블은 끊겨 있었으며, 책상 위에는 누군가 올라섰던 듯한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팀장님의 책상 밑에는 맥주병이 굴러다녔고, 그 중 가장 심하게 부서진 자리는 기획자 역할을 맡았던 개발자 선배의 책상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몇몇 자리는 멀쩡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과장과 베테랑 개발자의 책상은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새로 입사한 과장은 출근 전에 팀장에게 “마우스랑 키보드 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전날 밤의 사건을 이해한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멍했고, 울었고, 무너졌다.
신입인 내가 그런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무게였고, 너무 불합리한 세계였다.

내가 술 먹은 팀장에게 내동댕이 쳐진 기분이었다.


사과는 녹차 한잔으로 대체되었다

그날 오후가 되어 출근한 팀장님은 아무 말 없이 종이컵에 녹차를 타 팀원들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우리는 그 녹차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와 동기 한 명이 퇴사를 결심했고, 퇴사 면담 자리에서 팀장님께 나는 말했다.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러자 팀장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과했잖아. 녹차 한잔씩 타줬잖아.”

그 말을 들은 순간,
더는 무엇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눈빛과 말투 속에서, 내가 그 자리에 더 머물 이유는 사라졌다.


그 후의 시간들

그 사건 이후, 팀에 남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버텼던 이들도 결국 1년 안에 하나둘 떠나갔고, 그 시간 동안도 팀장은 뒤에서 팀원을 비난하고,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일삼았다고 들었다.

그 일은, 내 직장 생활 10년 넘는 시간 동안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야근’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먼저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가끔은 문득 생각한다.
그 팀장님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 내 나이가 그때 그 사람의 나이보다 많아졌지만 그때의 일은 아직도 나를 움찔하게 만든다.

그는 불안했을 것이다.
그 불안을 야근으로, 지시로, 술로, 분노로 포장하고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건 어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그 사람의 소식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래서, 나는 야근을 멈췄다

그 이후로 나는 야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 하는 밤일도 있지만, 불안과 무책임이 만들어내는 구조인 경우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6개월과 1개월.

두 개의 서비스와 두 개의 리더십.
리더가 달랐고, 효율화의 방식이 달랐다.
그 경험이 내 일의 기준이 되었고, 지금도 나는 그 기준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어쩌면 그건, 그때 제대로 울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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