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각성했다

[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by 프로불평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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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나는, 그저 맹했다.
시킨 일은 잘했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아이.
내가 종종 쓰는 표현으로 '나는 각성되지 않은 아이'였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잘 모른 채 주어진 역할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사회에 나왔고, 나는 아주 빠르게 현실과 부딪혔다.
사회는 내가 할 일을 재빠르게 캐치하고 그 일을 해내야 하는 곳이었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첫 회사에서 나는 헤맸지만, 술을 먹고 사무실에 깽판을 쳐버린 팀장의 행동을 시작으로 나는 각성하기 시작했다.

무뎌지기도 했고, 단단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던 어느 순간, ‘쎄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쎈 사람 vs 좋은 동료

나는 기본적으로 활달한 캐릭터는 아니다.

사람들을 보며 활짝 웃고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그냥 묵묵하게 내 일을 하고, 모임과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 그냥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얼굴로 기억한다.

어떤 이는 잔뜩 찌푸린 표정과 낮은 어조로 누군가에게 '다다다다' 쏴대는 모습을 기억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화 내는 모습은 한 번도 못봤어요. 화도 낼 줄 아세요?"하며 놀라기도 한다.

가끔은 그들이 놀라는 모습에 내가 놀라기도.

그렇게 나랑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으면서 어떻게 한 가지 모습으로만 나를 기억할 수 있지?

내가 잘해줄 때도 있지만, 누군가를 혼내는 모습을 보기라도 했을텐데 그 기억이 없단다.

'무엇 때문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나는 이유를 찾았다.



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대응을 했다

관계는 언제나 상호작용이었다.

내가 유독 화를 냈던 대상들은 '성실하지 않거나, 성의가 없거나'하는 동료들이었다.

또는 턱없이 부당한 지시를 press 하는 윗선에 '입 바른 소리'라는 이유로 '싫은 소리'를 했다.

스스로 알아보려는 의지 없이, 반복되는 실수로 팀을 흔들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일정까지 뒤틀릴 때가 이어지면 그때부터는 나도 말의 온도를 낮추게 된다.

처음엔 설명하고, 두 번은 도와주고,세 번째는 기다리지만 네 번째부터는 단호해진다.


반면에 '성실하고, 힘없는 후배'들은 최선을 다해 도우려 애썼다.

'성실함'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냐고?

그것은 주어진 일을 처리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성실하지 않은 그룹 VS 성실한 그룹

A라는 미션이 주어졌을 때 '성실하지 않은 그룹'은 일정을 지키지 않거나, 아니면 자기가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그 흔한 '네이버 검색'이란 것도 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데드라인이 임박한 상태에서 내가 중간 현황을 확인하면 그제서야 '모르겠어요'라고 말부터 했다.

'성실한 그룹'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일단 검색과 테스트, 시도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력을 총 동원해서 흐름을 파악하고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중간 결과 값을 가지고 와서 그 부분에 대한 조언을 구하곤 했다.

'성실하지 않은 그룹'도 처음부터 화내진 않았다. 그들에게도 인내를 가지고 차분한 설명과 가이드를 제공하지만 그들의 결과값은 다를바 없었으니 그것은 '성의'의 문제였다.

포커페이스가 못되는 나는 내게 돌아오는 결과값에 찡그리고 반색하고 할 뿐이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모질게 말하는 나와 한없이 따뜻한 선배인 나, 모두 나였다.

그게 좋은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무덤덤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가끔 나도 혼란스럽다.

하지만 팀원들이 부당한 상사의 요구에 휘둘리는 것을 막고 싶고, 요령을 피우고 성의없는 동료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상황을 두고 보지 못했다.



나, 중간관리자의 얼굴

내가 그랬다.

중간 관리자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부당한 윗선의 '요구'를 해내야 했고, 요령을 피우며 일을 적게 하는 동료의 일까지 떠맡아 야근하며 일해야 했다.

어떤 팀장은 회의실에서 상무님이 막연하게 지시하는 그 일을 나랑 같이 앉아 듣다가 고개만 내게 돌려 "하세요" 한마디만 했다. 지시된 업무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채 책임감없이 내게 흘러내렸다.

그럴거면 그는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그 모습들이 유난히 보기 싫었던 나는 가능한 한 정리하고 다듬어 그 혼란을 줄여주고 싶었다.

윗선의 지시가 후배에게 닿을 땐, 현실감 있게, 흐름 있게,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방식으로 내려보내려고 애썼다.

물론 늘 완벽할 수는 없지만, 중간관리자라는 위치에 있는 나는 그 다리의 역할을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나의 행동과 표현들이 '지킬앤하이드'와 같을지언정...



진심이 고단해질 때

윗선엔 택도 없는 지시가 매번 방향을 바꾸며 내려오고, 그 지시를 다듬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다.

결을 만들어 정리하고, 후배에게 설명하고, 일의 논리를 만들고, 다시 돌려받은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하고…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이, 반복될수록 나는 지쳐간다.

일에 진심이라는 건 때로는 가장 고단한 방식으로 회사를 다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바란다.
사람 사이의 온기, 그걸 끝끝내 놓지 않는 내가 결국 ‘좋은 동료’였기를.

쎄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그 둘이 공존하는 내가 어쩌면 더 사람다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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