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나는 회사생활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가끔 친구들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나는 달랐다.
내게 회사는 늘 고단했고, 관계는 조심스러웠으며, 누군가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존재로 곁에 있었다.
사회 초반, 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정신없이 부딪히다 보면 하루가 지나 있었고, 술 먹고 회사에서 깽판을 치던 팀장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끝없는 야근, 끝없는 압박.
그 시절의 나는 늘 긴장했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경험이 쌓이며 내게 주어진 일들은 더 복잡해졌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업무.
그 와중에 부당한 미션은 나에게만 떨어진다고 느꼈고, 일을 피하거나 무책임한 동료들 때문에 내가 온몸으로 그 빈틈을 막아야 했다.
입바른 소리 한 번 했다가 상사의 눈 밖에 난 적도 있었다.
어떤 회사에서는 매일같이 졸고, 자신의 업무를 까먹는 신입 때문에 나 혼자 스케줄을 챙기고 자료를 만들며 늘 촉을 곤두세워야 했고…
또 다른 회사에서는 나보다 나이많은 내 팀원이 Feel로만 일하려 들었다.
계획도 없고, 근거도 없이 "그냥 하면 돼요. 이거 완전 대박이예요."라는 말로 모든 걸 퉁치려던 사람. 그리고 감당하지 못하고 사고를 쳐대는 사람...
논리 없는 그 방식에, 끝없는 논쟁에 내 속이 먼저 문드러졌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거지?’
회사마다, 프로젝트마다, 꼭 한 명씩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게 나에게만 주어진 고통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던 날 그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 회사에서도 나는 오래 버텼고, 결국 쉼을 선택하며 퇴사하기로 했다.
직속 상사는 내가 좋아하던 분이었다.
늘 유쾌했고, 판단도 빠르고,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나름 이유와 논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흔쾌하게 업무 수정 지시를 해주는 좋은 상사였다.
그런 그가 내가 퇴사하기 2~3개월 전부터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말수가 줄고, 점심도 함께하지 않았고, 부서원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바쁨이 아니란 걸.
그날,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그와 카페에 갔다.
그분은 평소 하지 않던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나를 ‘대나무숲’이라 여긴 듯.
상사는 유쾌하되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기에 언젠가부터 대표에게 눈 밖에 났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회사 내 ‘정치질’의 소문이 돌았고, 우리는 그 정치질을 하는 존재를 다 알고있었지만 대표는 모르는듯했다.
오히려 대표는 나의 상사가 부서원과 점심을 함께 먹으며 '세를 불리는' 정치질을 한다 의심했다 했다.
대표는 그냥 자기가 믿고 싶은 방식으로만 의심하고 믿었던 것.
대표의 스타일을 아는 나는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억울함을 말없이 감내한 채 상사는 우리와 밥을 끊고, 말을 줄였다.
눈치가 아닌, 오해를 피하려는 침묵이었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아,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
능력 있는 그도, 유쾌하던 그도, 조용히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퇴사 후 1년쯤 지나, 그 상사도 결국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능력이 있으니 다시 다른 회사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지만 그도 그 시절을 오롯이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직장인들의 글은 거의 예외 없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불합리, 부당함, 인간관계, 번아웃…
그러니 예전 게임회사들에서 '퇴사'는 엄두도 못낸 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었겠지.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무게를 안고 회사란 세계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보였다.
회사생활은 원래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것.
다만, 우리는 그 힘듦을 말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