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그 자리를 지키며 견디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왜 자꾸 도망치게 될까?"
직장생활을 꽤 오래 했었다.
그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잠시 쉬게 되었고, 그 쉼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몸보다 마음이 더 많이 고장 나 있었고, 회복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다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견뎌야 했던 '고통'이라는 감정이, 직장이라는 환경의 ‘압박’이나 ‘스트레스’와 만나면 다시 나를 덮칠 것만 같았다.
이번엔 정말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특히 내 경력이라면, 이젠 ‘관리자’라는 이름을 달고 어느 부서의 한 축을 맡아야 하는 위치일 텐데.
그 자리는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빠르게 파악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때론 말도 안 되는 윗사람의 지시를 아래에 ‘적절하게’ 조율해 전달해야 하고,
공손함과 침묵으로 조직을 보존해야 하는 자리.
그걸 다시 감당할 수 있을까.
연초에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프리랜서’로 일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한 발 떨어져 있는 일이라면, 조금은 덜 부담스럽고,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마침 운이 좋게도 연이 닿은 곳이 있었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에서 팀장은 내게 물었다.
“왜 프리랜서를 하시려는 거예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고, 일을 다시 해보고는 싶지만 아직 정규직으로 들어갔을 때 따라오는 무게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요.”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렇게 출근을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어차피 외부 인력이고, 큰 책임이 주어지진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출근 2일차, 나는 '다음날' 회사의 서비스를 역으로 리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기획서 하나를 통째로 넘겨받았다.
이미 디자인으로 넘어가던 단계였고, 이후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내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설명을 듣기도 전에 당연하다는 듯 역할이 정해졌고, 나는 머뭇거릴 틈도 없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서비스 리뷰는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기획서가 문제였다.
내가 보기엔 무리수로 보이는 흐름이었고, 실제로도 이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로직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이미 완성된 기획서이고 일정은 정해져있었기에 프로세스 자체를 다시 재정비할 시간은 안되었고 계속 부분부분만 논의해서 수정해갔다.
회의가 반복됐고, 정책은 바뀌어 갔으며 점점 더 산으로 갔다.개발자는 촉박해지는 일정에 날이 서갔다.
나는 그 중간에서 무언가를 조율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조정이 아닌 ‘그냥 전달’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곳은 팀 분위기 자체가 경직되어 있었다.
자유로운 대화, 웃음, 쉬는 시간,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느낌.
심지어 업무 시간 중 커피 한 잔 사오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고, 팀장은 끊임없이 일을 ‘추가’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네네”만 반복하며 무언가에 억눌려 있는 듯했다.
회의는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지시받은 일에 대해 얼마나 했는지 ‘보고’하고 ‘추궁’당하는 자리처럼 느껴졌다.
팀장의 말은 늘 이랬다.
“지금 하세요.”
“내일까지 중간보고 주세요.”
“회의 전까지 꼭 정리해오세요.”
나는 원래 업무를 받으면 조사하고, 방향을 정리하고, 이해한 다음 내 언어로 구성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나도 이해가 안되고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보고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이해도보다 속도, 정리보다 데드라인, 고민보다 공유.
그 안에서 나는 ‘늦은 사람’, ‘답답한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경력자라면 애초에 적응이라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어야 한다는 듯이,
시간은 단 하루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곧바로 투입, 바로 결과.
그 시간들이 너무 숨막혔다.
결국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안도와 자책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 자리를 나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문제일까.
회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는 이제 더는 이런 구조를 참아낼 수 없는 사람이 된 걸까.
그곳에 남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나는 도망치게 된걸까?
예전의 나였다면 ‘조금만 참자’, ‘지금은 내가 부족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전에 나도 울며 버티던 나날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제는 잘 버텨내지 못하는걸까...
그냥 '힘듦'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 내가 작년 한해 버티고 감당해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이 떠올라 미칠것만 같다.
나는 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아직은 세상에 맞설 힘이 없는 걸까...?
나는 이 삶이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