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다시 한번 기대했지만, 역시 그만두기로 했다

[시리즈01] 그 시절, 나라는 직장인

by 프로불평러

그 회사가 나빴던 걸까, 내가 그럴 줄 알았던 걸까


ChatGPT Image 2025년 7월 31일 오후 03_54_39.png


다시 시작하려 했던 어느 날

출근형 프리랜서로 짧게 일했던 경험 후에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다시, 회사라는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 있을까.
시간이 좀 흘렀으니 예전보다 여유롭게, 덜 아프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 하니 제일 먼저 마주한 건 생각보다 무겁고 큰 ‘공백’의 그림자였다.


그 회사는 아니라고...

그 무렵, 아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이라는 회사, 아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거긴 가지 마.”


작년에 한 번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30분이 되자 ‘다음 면접자가 기다린다’며 일방적으로 종료했고, 질문은 쏟아내되, 나에게는 회사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궁금한 것은 없는지 묻지도 않았다.

옆의 다른 면접자의 질문도 무시했다.

그 면접은 전체적으로 정중하지 않았고, 무례했다.
결과 통보는 지연됐고, 결국 연락이 다시 왔을 땐 “2차 면접 없이 바로 출근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나는 정중히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회사에 그 후배가 입사했다며 나를 추천했다고 했고, 그 회사 부사장도 마침 전에 면접봤던 사람중에 다시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고 했다.
“야근도 없고, 사람들이 괜찮고, 선배가 조금만 구조 잡아주면 다들 좋아할 분위기예요.”

고민이 길었다.
하지만 후배가 있다는 안정감, 집과의 거리, 그리고 혹시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는 아주 희미한 기대감에
나는 결국, 가보기로 했다.



막상 가보니, 더 혼란스러웠다

첫 출근 날.
AI를 활용한 신규 서비스가 1차 런칭에 이어 2차 리뉴얼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중심에 작년에 나를 면접 봤던 바로 그 부사장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

겉으로는 에너지 넘치고 유쾌한 스타일이었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매일 말이 바뀌었다.
기획서가 마감돼도 다음날이면 다시 수정됐고, 기획자들이 구조적 문제를 설명해도 “내 말이 맞다”는 말로 일축됐다.중간에 내가 '현 시점에서는 더 추가되지 않아야 할 것 같다'고 제안을 했지만 흔쾌히 OK 해두곤 자리로 돌아가 다시 기획자들을 불러 정책을 변경해대기 시작했다.
기획자들은 입을 닫기 시작했고, 긴급히 수정 업데이트가 진행되었고, 기획서 곳곳에 구멍이 생겼으며 개발자는 해당 업데이트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 사이 기획서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입사 첫 주 수요일 오후에 외주 업체 리뷰가 있었고, 업체는 정리 안 된 기획서에 난색을 표했다.
볼륨은 컸고, 오픈은 40일 남짓 남아 있었다.

차라리 일주일의 기획서를 정리할 시간이라도 주어졌으면 기획자들이랑 붙어서 다시 조율해보겠는데, 당장 '오늘내일' 전달해야 하는 일정이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부사장은 내게 말했었다.
“이 프로젝트는 오픈까지 일단 진행되게 건드리지 말고, 당신은 전체적인 구조를 정리하면서 문제점을 리스트업 해줘요.”

그래서 나는 조용히, 조금씩, 기획서를 분석하고 맥락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월요일 아침

입사 2주가 막 지난 월요일 아침, 그가 나를 불렀다.

“2주가 지났는데, 아직 이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못 잡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어이가 없었다.
지금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일단 건드리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그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그런 말을 하더니 다음 날까지 ‘당장 오픈할 이 프로젝트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발표해달라했다.


그때서야 퍼즐이 맞춰졌다.
지난주, 그가 대표와 술자리를 가진 이야기를 들었다.
볼륨을 줄이고 일정을 늘리는 형태로 대표와 얘기를 해본다고 했지만 그는 불같은 대표의 성질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는지 다른 청사진으로 대표와 술을 마시고 끝냈던 것이었다. 당장 오전 주간보고에서 그 보고를 받아야할 대표의 '화'를 대비하고 회피하기 위해 그는 나를 '이유'로 들고 싶었던 것.
대표가 난리치면 내가 문제점과 개선점, 대안 등을 다음날 발표 보고할 것이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볼륨과 일정은 절대 변경 불가하며, 기획안은 수정할 수 없는 일정...

내 능력의 한계인지 나는 방법을 몰랐다.

막상 주간회의가 되었을 때 업체와 어느정도 조율되었다는 보고가 있었고 대표는 생각보다 화를 내지 않고 회의가 마무리되었는데, 회의 끝에 대표가 나가고 나자 부사장은 팀원들에게 선포했다.


"○○○가 내일, 우리 이 서비스의 향후 방향성과 전략에 대해 발표를 합니다"

한번 더 어이가 없었다.

당장 오픈할 프로젝트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얘기하라더니, 그 이슈가 해결되니 나와는 어떤 얘기도 없이 주제를 바꿔버린 것.



그만두기로 했다, 이번엔 더 빨리

그날, 나는 확신했다.
이건 잘못 들어온 거라고.

‘제안을 들을 사람’도 없고, ‘권한을 줄 사람’도 없고, ‘말을 지킬 사람’도 없는 곳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을 거라고.


면담을 요청했고, 정중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두겠습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안그래도 ○○○가 AI 기술 트렌드에 느린것 같아 고민이었어요.”

그 말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실망감까지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일 발표하기로 한 것은 하고 그만두면 안될까?"라는 말까지...


웃겼다.

그만두는 사람에게 그것까지 발표하고 가라니...

이의를 제기하는 내게 그는 "그럼 2주동안 그것도 안하고 뭐하셨어요? 그래도 우리가 2주동안의 돈을 줘야하는데 뭘 했는지는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한다.

나는 "그럼 2주동안 제가 이 서비스를 분석하고, 해왔던 일들, 문제점 등을 정리해서 문서로 제출하고 가겠습니다."하고 2주간 끄적여두었던 내용들을 한데 묶어 정리한 뒤 전달하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그냥 딱 '양아치'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서 또 같은 말이 맴돌았다

회사라는 공간이 나랑 맞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내가 또 이상한 조직에 들어간 건지.

내가 기대했던 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 말이 바뀌지 않는 리더 혹은 바뀌더라도 과오라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리더, 작은 책임이라도 다같이 지는 사람들.

그것뿐이었는데.
왜 그조차 찾기 어려운 걸까.


직장이라는 것은...

남의 돈을 받고 일한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일까?

나는 왜 이제서 이것들이 더 크게 와닿고, 참아지지 않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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