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전집에서의 플러팅(?)

우린 와인이 아니라 전으로 플러팅 당했다

by 프로불평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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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thㅓ(?)운 언니들과의 결의

한동안 직장생활의 dark한 이야기들을 풀어냈으니, 오늘은 조금 가볍게 가보려 한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생긴 작은 에피소드들.

한때 광장시장의 ‘마약김밥’, ‘전’이 한창 인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서 친했던 ‘무thㅓ운(?) 언니들’과 퇴근 후 전을 먹으러 가기로 결의한 어느 날.


칼퇴를 위한 고군분투

회사와 시장은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업무 시간 내내 정신 바짝 차리고 일을 해내야만 했다. 칼퇴가 성공의 열쇠였으니까.

우리 중 맏언니인 꽉 언니는 칼로리 총량을 조절하겠다면서 점심을 샐러드 도시락으로 대체했다.
비록 양은 풍성했지만, 저녁을 위해 아껴둔 ‘공간’이었다.


비 내리는 저녁, 시장으로

오후 6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득달같이 일어나 회사 1층에서 모였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광장시장으로 향하는 길.
때마침 부슬비가 내려 전과 막걸리를 핑계 삼기 딱 좋은 날씨였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기름 내음이 진동했다.
사람들로 가득했고, 마약김밥 집은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반으로 나눠 전략을 세웠다.
일부는 김밥 줄, 나머지는 전집 줄.
성공적이었다. 김밥을 들고 전집에 도착하니 네 자리가 딱 비어 있었으니까.

작고 허름한 공간, 플라스틱 테이블, 왁자지껄한 소리. 비와 냄새, 웃음이 한데 뒤섞인 그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정겨웠다.


전투적인 먹방

전과 막걸리가 나오자마자 우리는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아마 초반에는 말소리조차 없었을 거다.
1차, 2차… 김밥과 전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그때 직원이 푸짐한 전 한 판을 더 내왔다.

“저희 주문 안 했는데요?”
“아, 저쪽에서 주문해주셨어요.”


와인 대신, 전 플러팅

순간 우리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차마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도 못한 채,
‘우리가 얼마나 복스럽게 먹어댔으면 이런 걸 받나’ 싶어 서로 얼굴만 보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보통은 와인바에서 옆 테이블로 와인이나 안주가 오는데... 그게 흔히 말하는 플러팅이라는데…
이 과년한 아가씨 넷은 광장시장 전집에서, 푸짐한 전 한 판으로 플러팅을 당했다.

낭만은커녕, 그저 배불러 숨 막히던 와중에 날아든 전.

웃기면서도, 이상하게 몹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샐러드 도시락의 반전

문제는 이미 배가 한계라는 것.
남길 수도 없고, 억지로 먹을 수도 없었다.

결국 진지한 논의(?) 끝에, 꽉 언니의 샐러드 도시락 통에 전을 담기로 했다.
점심에는 다이어트의 상징이었지만, 저녁에는 ‘남은 전’을 구출하는 데 쓰였다.

우리는 도시락을 챙겨 계산을 하고, 차마 전을 보내준 테이블을 정면으로 보지도 못한 채 살짝 고개만 돌려 감사 인사를 건네고 허둥지둥 빠져나왔다.


지금에서야 드는 궁금증

그땐 괜히 민망하고 자존심도 긁혀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지금은 문득 궁금하다.

혹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술 한잔 하러 오셨다가 복스럽게 먹는 우리 모습이 흐뭇해 전을 보내주신 걸까?
아니면 진짜 작은 플러팅이었을까?

정체는 끝내 알 수 없지만, 그날 네 명의 여자들은 전도, 막걸리도, 그리고 뜻밖의 ‘전 플러팅’까지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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