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리프레임
예전의 나는 위선을 미워했다.
위선은 가식이라고 생각했고,
겉으론 착한 척하면서 속으론 딴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혐오감까지 느꼈다.
그건 ‘진짜’가 아니라고,
사랑도 아닌 척이라고 여겼다.
왜 그렇게까지 위선을 싫어했을까?
아마 나는 그만큼 ‘진짜’를 갈망했던 것 같다.
진심 없는 선행은 무의미하다는 믿음,
그리고 “나는 그렇게 가짜처럼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나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늘 솔직하고 싶었다.
내 마음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해지니, 사람들은 때로 불편해했다.
내 말이 너무 날카롭다거나, 감정을 건드린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마주한 건,
아주 단순한 진심이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던 거다.
그 마음을 인정한 뒤부터,
나는 자연스레 ‘착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내가 가진 진심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불편하고 사랑이 아닌 미움과 비교
가식으로 가득 찬 이유는,
결국 거짓 뒤에 숨겨진 약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벗겨내고 솔직해졌을 때,
사람들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먼저 솔직하게 다가가기로 했다.
착한 사람으로 군다면,
상대도 조금은 따뜻해지고,
나 역시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아주 좋은 결과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일까?
그게 위선이라면, 그건 옳은 일일까?
의도가 온전히 선하지 않았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걸까?
하지만, 내가 그런 마음으로 택한 행동의 결과가
‘선’이라면,
그건 나쁜 게 아니지 않을까?
내 행동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고,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봐 줬으면 해서
착한 말을 하고, 남을 위로하고, 온전하진 않아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택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선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게 위선이라면,
나는 기꺼이 위선적인 사람이고 싶다.
그건 가식과는 분명히 다르다.
가식은 타인을 속이기 위한 연기지만,
위선은 부족한 나라도 선을 택하겠다는 결심이다.
가식은 마음에도 없는 행동이고,
위선은 마음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방향을 향한 선택이다.
이 차이를 알고 나서야,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다.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선을 택한 사람이다.
그 동기가 사랑이었고,
그 결과가 사랑이었다면,
그건 가식이 아니라,
내 방식의 사랑이었다.
그러니 나는,
위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위선조차 품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위선 안에는 분명 사랑이 있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