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by 정희




여름 방학이 되면 아버지는 배낭을 메고 자식들을 번갈아 데리고 길을 떠나셨다.

일 년에 한 번 씩 꼭 가는 곳. 어느 때는 한 명 어느 때는 두 명씩 앞세우고 다니셨다.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가자 하시니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서는 길은 작은 시냇물을 건너고 들을 지나 산을 하나 넘어야 했으므로 아득한 길이었다. 가다가 다리가 아프고 심심하면 말라죽은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들고 장난감 삼아 풀숲을 툭툭 치기도 하며 투덜투덜거렸다.

“아버지, 아직 멀었어요?”

“10리쯤 왔으니 20리 길을 더 가야 돼.”

30십 리 길이 어느 정도인지 알았더라면 따라나서지 않았을 텐데... 후회하면서도 신나게 가다가 다래랑 머루랑 따먹고, 다람쥐를 따라 뛰기도 하니 즐거운 여행길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평소 말도 없고 잘 웃지도 않으셔서 우리 남매들 사이에서는 좀 두려운 존재였다. 힘들다고 말해도 듣고 계시는지 안 들으시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투정은 하나마나.

12킬로미터. 지금 생각하면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동생과 나는 어렸으니까.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은 '신리'. 그곳에는 작은할아버지가 살고 계셨기에 조카인 우리 아버지는 해마다 조상들 묘에 벌초를 하러 가신 거였다. 아침 먹고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서 바람도 어설피 헤매는 해 질 녘에야 도착했다. 산골엔 해가 금방 져버려서 오후 4시쯤이면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저녁 짓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시골집에서 풍기는 구수하고 촌스러운 냄새는 싫지 않게 내 코를 자극했다. 당시 그곳엔 전기도 없어 부엌과 방 사이 벽에 구멍을 뚫어 그 위에 호롱불을 올려놓고 지냈지만 못 하는 일이란 없었다.


숙모는 우리가 왔다고 가마솥에 옥수수를 가득 삶고, 분이 뽀얗게 나는 감자도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 멍석이 깔려 있는 마당에 갖다 놓는다. 모기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장작으로 불을 피워 놓으니 우리들 천국이다. 작은할아버지 집에는 내 또래 오촌들이 있으니 얼마나 시끌시끌 깔깔 웃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아 나온다. 맛있게 먹는 우리를 바라보며 함박 웃던 숙모는 치아가 많이 상하고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그러나 숙모의 함박웃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벌초 가는 날은 음식 냄새로 온 집안이 분주하고 아이들은 덩달아 뛰어다녔다. 화로에 숯을 담아 간고등어를 석쇠에 올려 구웠다. 할머니와 숙모는 술도 빚고 두부도 만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고등어가 익었나 보라는 어른들의 말에 남동생은 석쇠를 뒤집지 않고 밑에서 들여다보다가 고등어 기름이 눈 주위에 똑 떨어졌다. 얼마나 놀라고 뜨거웠는지 동생은 펄쩍펄쩍 뛰면서 울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을 하면 미안하게도 웃음이 나오지만 그 어릴 때는 그 방법밖에 없었겠지. 눈에 들어간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어른들의 걱정도 아랑곳없이 쓰리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동생은 응석받아 줄 엄마도 없어 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서럽게 울었다.

말없이 울고만 있는 남동생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눈물이 났다. 나는 신작로에 서서 가로막혀 있는 산을 바라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었다. 겨우 하룻밤 잤을 뿐인데 “엄마 엄마” 하고 울었던 기억은 아련하다.


시골 오촌들은 방귀를 뀌고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동생과 나는 “누가 방귀를 뀌었냐?”며 우스워 죽겠다고 뒹굴었지만 “그게 뭐 어떵” 하면서 능청을 떠는 모습이란.


그 집에는 황소 두 마리가 있었는데 부엌에 들어가면 황소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푸르르" 소리를 내며 입을 계속 움직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인지라 할머니 치맛자락을 꼭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과 소가 여물통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니. 농사일을 할 때는 함께 일했고 밥 먹을 때는 먼저 먹였다. 지금은 사료를 먹이지만 그때는 장작불에 펄펄 끓인 옥수숫대를 여물통에 부어주면 황소가 하얀 김에 마사지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먹었다. 시골에서는 소가 큰 재산이기에 극진히 대접해 주었나 보다.


그곳엔 그나마 또래 오촌들이 두 명 있어 집안에 활기가 있지만 외부 사람도 보기 힘들고 새들의 노랫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전부였던 적막했던 산골집에 사람들이 모이니 숙모는 일하면서도 연신 웃으며 톡톡 톡 톡 톡 신나게 도마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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