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등어

by 정희



"저녁에 고등어 구워 먹자."


엄마의 목소리에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하늘로 올라간다.



유년시절에 우리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일을 하셨지만 그중에 소방관으로도 근무하셨다. 어린 시절, 가끔 빨간 차를 타고 출동하시는 아버지가 엄청 멋져보였기에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였다. 소방서를 그만두시고 나서 목수 오야지(책임자)를 하셨던 아버지는 그 일을 하시다가 돈이 조금 모이니 친구와 사업을 벌였다가 부도가 났다고 한다. 나중에 들리는 말에는 동업하던 친구에게 이용당했다고 하는데 난 그때 어려서 잘 모르지만 언니는 그 동업자 집 식구들을 많이 미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우리 집이 시장 안에 있어서 엄마는 닥치는 대로 장사를 했다. 언젠가 추석 대목에 고구마를 아홉 가마니를 팔았다고 좋아하시던 모습도 생각난다. 요즘은 고구마 박스가 5킬로 10킬로이지만 그 시절엔 큰 쌀자루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해도 수십 가지의 장사로 고생하시던 부모님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육남매인 우리는 방도 여러 개에 마당도 쾌 넓은 집으로 이사했으니 신이 났었다. 부모님의 고민을 언니와 오빠는 알고 있었겠지만 동생들과 나는 마냥 좋았다.


집짓는 일로 한 달에 한번 인부들 월급날이 되면 우리 집 안방에는 짚으로 짠 커다랗고 둥근 초석(자리)이 깔리고 그 안에 하얀 쌀이 산처럼 쌓였다. 아저씨들은 쌀자루를 하나씩 들고 서서 자신이 일한만큼의 쌀을 받아 가곤했다. 그런 날 우리 집 쌀독엔 여기저기 쌀이 가득 채워졌고 쌀독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엄마는 쌀밥을 한 그릇씩 담아 자식들 앞에 놓아주셨는데 그런 날은 엄마 음성에도 손에도 힘이 있었던 기억을 나중에 커서 알았다.


그랬다.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마음껏 먹게 공급해 주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힘나는 일이었다. 하얀 쌀밥은 씹기도 전에 그냥 목구멍으로 스키 타듯이 미끄러지고, 나는 엄마 눈치를 살피며 되새김하는 소처럼 계속 씹었다. 엄마는 얼마나 좋으셨을까. 자식들 잘 먹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부모에게는 최고의 기쁨인데.


하루 한 끼는 죽이나 칼국수 그리고 감자로 때우던 시절도 지금은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은 그때 너무 질려선지 지금도 감자를 먹지 않는다. 삼양라면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가 국민(초등)학교 4학년쯤인 것 같다. 엄마는 칼국수 한 솥을 끓이다가 라면 한 봉지를 넣었는데 꼬불꼬불한 라면을 먼저 골라 먹으려고 다투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만 보셨다. 언니 오빠를 제외한 사남매에게는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그건 철이 없는 거였다. 라면 스프 하나가 칼국수의 맛을 좌우하고 어른, 아이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니 그때부터 가공식품 시대가 시작되지 않았나, 가늠해본다. 수십 년을 무작정으로 사랑받던 라면.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유기농이니 무공해니 건강에 관심을 가져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집에서 무공해 채소를 길러먹을 수 있는 책들도 많이 나와서 누구나 안심하고 먹거리에 대한 진실을 알게도 되었으리라.



어느 햇살 따뜻한 날 마루에 앉아계시던 엄마는 나를 무릎에 눕히고 머리를 만져주시더니,

"오늘은 간고등어 구워 먹자."

"엄마, 그거 정말이야?"

정말로 나는 좋았다 우리 가족이 변두리로 이사 온 뒤로는 생선 맛을 보기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이미 먹기도 전에 입속에서 맴도는 보리밥 한 숟가락과 짭짤한 간고등어 쬐끔 뜯어 입에 넣고 씹기도 전에 넘어가는 그 맛을 즐기고 있었다. 말 안 듣고 밉상 부리던 동생들도 예쁘기만 하고 엄마 심부름도 아주아주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엄마는 고등어를 사오시지 않았다. 기대했던 마음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원망이 온몸에 꿈틀거려 저녁은 먹지도 않았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 지금도 모른다.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어린것들이 어찌 알까.

세월이 흘러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식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고, 날고 싶어할 때 더 큰 날개를 달아 높이 날도록 도와주고픈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간고등어 못 먹어서 울고 있는 딸을 보고만 있었을 엄마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금도 그때 엄마의 마음을 더듬어 볼 때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난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엄마 나이만큼 되었어도 울고. 울고 싶어서 또 울고.

시장에 가면 간고등어가 많이 있고 언제든 살 수 있는데 왜 그때는 그랬을까?


저녁에는 간고등어 구워먹으면서 엄마를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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