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경 책 속에 푹 빠져 있는데 동생이 전화를 했다.
“언니 이마트에서 참조기를 50%나 세일한대, 10마리에 5.900원.”
“그래? 사이즈가 작겠지.”
“그건 몰라.”
"망원시장에 한 바구니 1만원인데 작년보다 마리수가 적던데.”
“그럼 일단 가보고 손으로 크기를 재서 사진 보낼게. 흠. 그러면 판매하는 직원이 뭐 저런 인간이 있나 할 거야 흐흐흐.”
“아예 줄자를 가져가라.”
“큭큭큭, 언니 우리 정말 웃긴다.”
동생은 차가 있다는 핑계도 있고 이마트도 가까이 있는 터라 종종 세일하는 물건을 사서는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우리 집에 온다. 숨차게 달려 달려 낑낑 이층까지 들고 올라와 발로 문을 툭툭. 현관에 짐을 내려놓고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서서 “언니 나 갈래.” 한다.
보통 일반 회사는 6시 퇴근이지만 동생이 근무하는 곳은 신축성 있는 근무제로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이다.
“무슨 소리, 들어와~ 저녁 먹고 가.”
“좀 있음 퇴근 시간인데 차 밀려.”
“그렇기도 하겠다. 밀리면 짜증나니까.”
사온 물건이 무엇이든 계산할라치면
“내가 사온 건데 됐시유.”
“야~ 이러면 나는 뭐가 되니?”
아무리 동생이지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영부영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미안하고 감사하다.
“언니, 조기가 먹을 만한 사이즈면 얼마나 살까?”
“한 50마리는 사야 여기저기 나눠 먹지.”
“알았슈~”
한 박스는 사야 나눠 먹을 만한데 생각하면서, 이번엔 내가 사오라 했으니 돈을 꼭 주리라.
생활이 어려워서 도움을 받는다면 존심 상할 테지만 동생은 사주고 싶어서, 나는 기쁘게 받아 반찬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으니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이젠 저도 나도 당연하게 여긴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으니까.
지금은 시니어클럽 공예부에서 카네이션을 만든다.
5월 어버이날을 위해 일 년 동안 열심히 손과 뇌를 움직여야 한다.
그곳은 노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근로계약도 하고 월 40시간 근무제로, 일주일에 이틀만 근무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보람까지 느낀다. 집에만 있으면 무료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소일거리로도 좋고 많지는 않아도 용돈도 벌고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정신건강에도 또한 좋다. 가끔 구청장이 오고 타 복지관에서 견학도 자주 온다. 공예팀이 모델이 된 기분이다.
늙은 여자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지만 얼마나 열심히들 하는지 점심식사가 끝나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열정이 넘친다. 행동들은 조금 느려도 입을 통해 나오는 말마다 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일터.
제일 씩씩해 보이고, 고기를 좋아하고, 언제나 당당해 보이는 노친네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꽃잎을 좀 펴라 펴.”라고 장난기 웃음을 보내더니 “ㅇㅇ씨는 꽃을 왜 오므려, 자꾸.” 그래도 상대가 아무 반응이 없자,
“더 펴야 해. 불량 만들지 마.”
“아이고 형님, 나는 남편이 없어서 벌리는 거 몰라.”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하하 호호호 흐흐흐 아이고 우습다.
여덟 명이 한 공간에서 일하다보면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온다.
아무 말이 없는 사람, 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사람, 까탈스러운 사람, 대화를 듣고 그저 웃기만 하는 사람, 남의 일에 간섭이 많은 사람, 싸움을 거는 사람, 짜증 날 정도로 말 많은 사람. 이 다양한 사람들 중에 난 어떤 부류에 들까? 상대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는 근무 날짜를 피하게 되는 경우도 대화 속에 툭 튀어 나온다. 늙으면 부끄러운 걸 모른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거는 행동도 서슴치 않으니 늙음은 참 엉뚱하다.
정 많은 사람들. 얼마 전 내가 팔 골절로 힘들어할 때 과일 사먹으라며 봉투를 주고, 고기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사양하고 사양해도 소용이 없다. 전화를 걸어서 걱정도 해주는 고마운 동료들이다.
누가 도움을 주면 잘 받는 것도 사랑하는 방법 이라했던가. 내가 뭐라고, 너무 감사하다. 친한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주었던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웠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누군가 아프면 내가 관심받은 것처럼 하리라.
아침부터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목이 건조한지 계속 물이 당기고, 뉴스에서는 가뭄으로 겨울 채소들이 아우성이란다. 온 대지가 목말라 갈증을 호소하고 피부도 버석버석 갈라지는 느낌이다. 여름에는 잦은 비와 뜨거운 열기에 아무 곳에 심어도 잘 자란다는 옥수수까지 알알이 영글지 못해 농민들이 울상이었다는데. 이대로 가뭄이 계속되면 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걱정이다.
청년 시절 다른 지방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 친구는 병원 가까이에 집이 있었는데 늘 부모님 연세가 많아서 걱정이라 했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숙식을 했어도 업무가 끝나면 그 친구는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집에 꿀단지가 있어?”
“응.”
“간 김에 엄마 젖도 많이 먹고 오나?”
“응, 호호.”
그 친구와 둘이 한 방을 쓰고 있었는데 다들 잠든 늦은 밤에야 살금살금 들어온다.
“옥수수 가져왔어”
어설피 잠든 내 코앞에 달콤한 옥수수를 내밀었다.
옥수수 귀신인거 알았나보다 나는 옥수수를 받아들고 눈을 감은 채로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물끄러미 쳐다보던 친구,
“그렇게 맛있어?”
“응, 너무너무.”
젊을 때라 가능한 일이었지 지금 같아서는 어림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이틀에 한 번씩 집에 갈 때마다 옥수수를 내밀던 친구. 부모님께 옥수수 귀신인 친구와 한 방을 쓰고 있다 말했더니 옥수수를 쪄놓고 기다리신단다. “객지에서 얼마나 힘들것냐” 걱정 하시며. 그 후에 한번 뵈었는데 친구가 막내딸이라 그런지 부모님이 생각보다 늙으신 것 같았다. 그분들이 텃밭에 심은 옥수수를 내가 축내고 있었다는 걸 뵙기 전에는 몰랐다.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방에 불도 안 켜고서 창밖의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비치는 친구를 보며 더 맛있게 감동의 옥수수를 먹었다.
“요즘도 옥수수 좋아해?”
“그럼 좋아하지”
“그때 잠자면서도 잘 먹더라, 흐흐.”
“네 부모님 사랑 덕분이지 뭐.”
결혼하고 가끔 한번씩 만날 때마다 하는 우리의 대화였다. 호호호호.
키가 작은 것만큼 손발도 작아 신발 사이즈 225mm, 얼굴은 통통하고 웃으면 아말감으로 씌운 어금니가 살짝 보이던 귀여운 친구, 팔다리에는 웬 털이 그렇게 많은지.
지나고 보니 감사한 친구들이 많다.
젊을 땐 젊은 대로, 늙어서는 또 다른 감사로 이웃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