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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Aug 14. 2023

바스키야 ×앤디워홀 전시

파리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

2번째로 진행된 전시는 4월을 시작으로 이제 곧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나는 8월 말 종료 전에 전시를 다녀올까 말까 고민이 됐다.


사실 4월 전시가 시작되었을 때 너무너무 이 전시가 보고 싶었다. 그땐 내가 너무 바빠서 미술관에 갈 여유가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SNS에는 수많은 자료들이 올라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전시를 보고 싶은 마음도 누그러졌다.


딸아이가 파자마 파티에 초대받아 친구들과 1박 2일 함께 하게 되었다. 친구 집으로 자러 가는 딸아이는 마냥 신나 "엄마 내일 만나~" 인사 후 쿨하게 떠났다.


딸아이가 없는 자유시간.

오랜만에 수영장에 가서 제대로 수영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접영을 하며 신나게 수영한 게 몇 년 전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영장에 가려면 당연히 딸아이를 데려가야 하고 그럼 난 아이 보느라 수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네 수영장 운영시간을 보러 사이트에 들아가니 알주일 간 내부 공사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맞아. 지금 바캉스 기간이 공사하기 딱 좋지'


사실 수영장뿐 아니라 파리의 지하철들도 여러 노선이 공사 중이다. 8월 둘째 셋째 주가 휴가를 가장 많이 가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도 이 기간에 70% 정도가 휴가를  떠난다고 할 정도로 회사가 비어있고 구매부서는 전멸했다.


미술관에 가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너는 지금 지하철 공사해서 교통도 불편한데 거길 가고 싶냐?"


 그렇다. 40분이면 갈 곳을 1시간 20분에 걸쳐서 가야 하지만... 사람들이 휴가 간 지금 가야 조용히 여유롭게 볼 것 같았다. 더욱이 사이트에서 티켓 예매 할 때 보니 사람이 없을 거라 예상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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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그랬으나

파리는 7,8월에 파리지앙들은 바캉스를 떠나고 외국 관광객들로 채워진다는 말이 있다.

루이뷔통 재단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있고 전 세계 언어들이 공존했다.


1979년 두 사람은 뉴욕 소호거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된다. 바스키야가 레스토랑에 있는 워홀에게 자신이 그린 2장의 엽서를 팔았다.


다음 해 1980년 바스키야는 친구에서 팩토리에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워홀과 두 번째 만나게 된다. 이때 워홀이 바스키야에게서 스웨터를 구입하게 된다.


1982년 사진작가 브루노는 바스키야를 워홀에게 정식으로 소개하기 위해 팩토리에 데려가게 된다.

워홀은 바스키야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갖게 된다.


이날 워홀은 바스키야의 초상화를 실크 스크린 기법sérigraphier 으로 작업하기 시작한다. 이후 바스키야는 자주 워홀의 팩토리에 방문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을 소개해 준 브루노는 그 해 가을에 워홀, 바스키야, 프란체스코에게 콜라보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15개의 작품을 요청했다.


1983년부터 1985년 동안 두 사람은 약 160개의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1985년 9월 뉴욕에서 이 두 사람의 16개의 작품을 처음 소개했다.


이번 루이뷔통 전시에서는 총 11개의 전시실에서 70개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그중 15개 작품이 프란체스코와 함께한 작품들이다.


첫번째 전시실
사람 너무 많다
도슨트가 작품 설명 중이다
바스키야가 그린 워홀
신체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던 바스키야
제목 : 비앙코에서
제목: 야구

작품 사이즈가 다 크다. 왜 워홀의 작업실을 팩토리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제목:넘버 5
제목:순수
제목 : 랍스터
제목: 의자
제목:아프리카 마스크

두 사람이 제일 처음 그린 작품이 아프리카 마스크이다.

음식들 시리즈
제목:개
제목:중국
제목:에펠
제목:올림픽링

스트릿 아티스트 바스키야의 작을 단순히 낙서고 하기 너무 무거운 느낌이 많다.

수많은 기호들, 사회적 메시지, 인간 해부, 해골과 왕관 등

이해가 안 되면서도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무언가 끌리는 오묘한 느낌이 있다.

수많은 숫자와 문구는 무슨 뜻일까
실크 인쇄기법과 페인팅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바스키야처럼 길거리 낙서로 유명해진 키스 해링. 그래피스트들이 가장 큰 성공과 돈벌이는 <브랜드와 협업>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뱅크시를 비롯해 이들이 인정받는 이유는 미술관이 아닌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그림을 그렸고 누구가 쉽게 접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소속사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좋은 예이기도 하다.

사회 비판, 세상 풍자, 시민들을 생각하게 하는 힘.

그것이 그들이 가진 힘이다.


특히 바스키야는 콧대 높은 뉴욕 백인 미술 시장에 입성한 첫 흑인이다.

악보에 등장한 해링의 트레이드 마크
제목: 퀄리티
제목:테니스 치지마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바스키야
제목: 집 눈
제목 : 오븐
제목:택시
제목: 파란 꽃병
키스 해링의 그림이 그려진 스쿠터
제목: 10개의 펀칭백
제목:펠릭스 고양이

스타가 되고 싶었던 바스키야.

워홀을 만나며 큰 명성을 얻는다. 워홀과의 공동 전시가 실패하며 둘의 사이는 멀어진다. 워홀이 58세 나이에 담낭 수술에 의한 합병증으뉴욕에서 사망한 후 다음 해에 바스키야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이번 전시는 11개의 전시실에서 다양한 주제로 채워졌다. 몇 년 후에 또 같은 전시를 할 것이라 예상된다. 나는 작품들을 기억하고자 기념품샵에서 책을 구입했다.

에코백 52유로 보다 더 비싼 70유로 머그컵

전시를 보고 늘 그렇듯 옥상에 올라갔다.

깨끗한 하늘 사이로 라데팡스가 보였다.

카푸치노 한잔과 찬 공기를 마셨다.

회사 밀집지역 라데팡스
한불 수교 100주년 기념 '한국 정원'

루이뷔통 파운데이션 티켓을 구매하면 공원에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공원 산책을 고 있는데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공원에서 뭐 해?"


아이 쉐어링으로 내 위치를 추적했다.

"엄마? 남들 드래곤 열차 타는 거 구경해"

혼자 다녀서 외롭지 않냐고?

전혀~ 혼자여서 자유롭다.


다음날부터 바스키야 후유증이 생겼다.

파리 지하철의 낙서가 예술로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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