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 object
세계 3대 리빙 전시라 불리는 메종 오브제 하반기 전시가 열렸다. Rer B 선을 타고 샤를드골 공항 바로 전 정거장 Parc des Expositions Villpeinte에서 하차했다.
여기 참 오랜만에 온다.
파리 폭뜨 드 베르사이 Porte de Versailles 전시장이나 한국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 같은 건물이 4 동이 있다. 전시 규모가 엄청 커서 그런지 입장료도 80유로다.
나는 A-Hand 대표님께서 초대장을 주셔서 무료 입장했다. 대표님이 계시는 5홀 건물로 갔다. 전시해 놓은 물건이 이미 다 예약 판매되었다며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계셨다. 나는 이날 하루 종일 5홀과 7홀을 몇 번씩 오가며 수많은 부띡을 보았지만 내 눈에는 임 대표님 작품이 가장 눈이 띄었다. 이쪽 부스에서는 광주에서 오신 선생님들의 현대적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보자기 냉장고 자석
액막이 명태 키링. 제품설명은 파리에서 활동하는 강상미 작가님이 해주셨다. 눈이 빨개서 여쭤보니 엄청 피곤하시다고..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국에서 작가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수다 도자기의 이영순 대표님은 한옥 차 세트 한음채를 설명해 주셨다. 아이디어 상품이다.
약과도 몇 개 주셔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
작가님들이 입고 계신 의상들도 한국을 보여주는 이미지였는데 세련되게 잘 입으셔서 나도 따라 입고 싶을 정도였다. 화려한 액세서리 없이 색감으로 승부한 느낌이랄까. 단아하니 너무 예쁘다.
그 옆에는 선명한 색의 귀여운 데코레이션용 도자기가 눈에 띄었다. 액세서리를 수납할 수도 있어 활용도가 높았다. "선물로 하나 사뒀다가 디렉터 선물로 줄까?" 고민하다 얼마 전에 인사동에서 사 온 족자도 선물했는데 일 년에 선물 두 개는 오버인 것 같아 맘을 접었다. 하여튼 너무 예뻤다.
한지로 만든 명함 걸이. 간판으로 활용 가능하다.
역시 예술은 아이디어 싸움이다. 멋있다.
한국 공예 디자인 문화 진흥원 KCDF의 한지 부스가 보였다. 이 전시를 보러 가기 며칠 전, 부랴부랴 프랑스 한국 문화원 사이트에 들어가 한지 세미나를 예약하려 했으나 이미 매진되었다. 어찌나 안타깝던지..
한글학교에서는 한지 부채 키트를 활용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수업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갑자기 K 문화가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프랑스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수많은 전통 장인들이 프랑스에 오셔서 직접 한국 문화를 선보였다. 이건 현지에서 무료봉사처럼 일하는 교민들과 프랑스 문화원 등의 국가기관들의 지원으로 이루어 낸 업적이다.
국가에서 한지 키트를 만들어 해외에 보내주지 않았다면 한글학교에서 어떻게 프랑스 학생들에게 우리 문화를 쉽고 간편하게 소개할 수 있었겠는가. 감사한 일이다.
이번엔 7번 홀에 위치한 한국관 부스로 이동했다. 한국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이곳은 한국 리빙 부스였다. 내가 이번 여름에 한국에서 가져온 손 선풍기도 보였다. 부엌칼에 사무용품, 반지 팔찌까지 품목도 다양했다.
나전칠기로 만든 액세서리를 보고 신기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커다랗고 화려한 검정 머리끈을 착용한 홍드 메이드 대표 홍인숙 작가님이 친절하게 상품을 설명해 주셨다. 국립 중앙 박물관 기념품 샵에서 판매 중이라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머리끈 하나 살 걸 후회가 된다.
이날 동행한 선생님이 갓 머리핀을 구입하셨다.
작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한지공예를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한지 책갈피를 선물해 주셨다.
전시 며칠 후에 우연히 작가님을 마레지구 3구 시청 앞 공원에서 다시 보았다. 점심 식사 후 친구랑 수다를 떨고 있는데 화려한 머리끈을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한국 여자를 보았다.
"어! 어디서 봤는데... 어! 저 머리끈..."
이번엔 화려한 하얀색 머리끈이었다.
친구는 "빨리 가서 인사해"라고 말하는 순간, 선생님은 공원 문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전시가 벌써 끝났나?' 그날이 목요일이었는데 전시는 월요일까지였다. 아마 관광 중이셨던 모양이다.
' 아~~ 내가 이쪽 가이드해 드릴 수 있는데...'
다시 우연히 본 인연을 붙잡지 못해 아쉬웠다.
선물까지 주셨는데...
다시 메종 오브제로 돌아와, 이날 도자기 부스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달항아리가 있었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꽃병, 화분, 컵도 있었다.
데몬 헌터스 덕분에 갓이 어디든 등장한다
내가 표씨라 표고 스튜디오의 '표'가 눈에 띄었다.
세라믹 화분 매장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프랑스 여자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순간 '이날코 INALCO 대학 출신'이냐고 물을 뻔했다. 파리에 있는 외국어 전문 대학교로 한국어학과가 있으며 친구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며칠 전에 친구를 만났을 때 라디오 France Culture 토론 생방송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약속 장소로 왔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프랑스인이 엄청 많고 워킹 홀리 데이나 여행으로 한국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 나와 언어 교환했던 친구는 이날코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프랑스인으로 서울의 어느 여행사에서 근무도 했지만 결국 현재는 한국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전공했지만 전공을 살려 파리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힘들고 한국 회사의 급여가 너무 적으며, 빨리 일해야 하는 한국 직장 문화를 적응하기 힘들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 채용 공고를 보고 그녀에게 전달해 줬을 땐 이미 전에 이력서를 내봤다며 실망했다.
한국어에 유창한 프랑스인들이 채용과 연결이 안 된다는 게 안타깝다. 프랑스 한국 교육원이나 코트라 등 국가 기관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이동 중에 누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한국분이세요?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
우선 붙잡아서 잠깐 멈춰 서긴 했지만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기보다 전시를 빨리보고 이 복잡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서 나온 지 이미 6시간이 지나고 있었고 다시 말해 6시간 동안 서 있었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였다.
근데 이 바리스타 분을 보니 나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아직 한국이랑 프랑스 시간 차 적응이 안 되셨겠어요"라는 내 말에 "아니요 적응 됐어요. 안 피곤해요"라고 대답하신다.
아닌데...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것 같은데... ㅋㅋㅋ
"근데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스페인 어린이 자전거 매장 앞에서?"
Rather good의 마틴 님이(위 사진 속 대표님) 한국관에서 커피를 내리는데 여기 직원분이 자기 매장에서도 해달라고 부탁해서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얼마 전 파리에서 입상로랑과 콜라보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특별히 제작해 소량으로 가져오셨다는 핸드 드립용 커피를 선물로 주셨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어로 말을 하길래 불어는 어떻게 하냐 물었더니 이 행사를 위해 급하게 배웠다고 한다.
선물 받은 커피 뒷면에도 작품 설명이 불어로 적혀있었다.
"아! 열정적인 사람이구나 "
커피를 한잔 얻어 마시고 또다시 이동했다.
걷다 보니 태극기가 보인다. 이번엔 안성시에서 온 한국팀이다.
향초가 다 타면 저 나무판 위로 재가 떨어진다.
또 돌아다니다 보니 나전칠기가 보인다. 프랑스도 나전칠기를 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 부띡인지 모르고 갔다가 나중에 태극기를 발견했다.
"이 큰걸 대체 어떻게 가져오셨어요?"
"배로 가져왔죠"
물건이 대부분 팔렸고 몇 개 남은 작은 소품들은 현금가로 할인한다며 지금 구입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3개를 샀다.
데몬 헌터스 인기로 급하게 제작하셨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갓을 발견했다.
간판을 보니 태극기가 있다.
친절한 직원분이 잠옷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캐리어 가방 브랜드도 있었다.
"우와 한국에서 많이들 오시는구나.."
이렇게 이곳에서 7시간 전시를 보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가지 않은 6번 홀에서 샤워기를 파는 Water Lab 영업팀장이라고 소개하셨다.
우리에게 " 다음날 다시 와서 샤워기 사가라"라고 하시길래 "출근해야 한다"라고 답변드렸다. ㅋㅋㅋ
명함을 주셔서 회사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전시를 보고 집에 돌아와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을 했다.
이날 친구가 만든 매듭 공예 귀걸이를 했기 때문이다.
"메종 오브제 다녀왔는데 네 생각이 났어. 너도 여기서 전시했었잖아. 여전히 바쁘지?"
매듭공방 '너나들이'를 운영하는 친구는 데몬 헌터스 덕분에 너무 바쁘다고 한다. 매듭 팔찌가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뮷즈로 판매되는데 매주 몇 백개씩 솔드아웃돼서 그거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고, 또 개인 공방 상품들까지 동이 난데다 출강도 꽉 차서 몸이 100개라도 부족하다고 한다. 바쁘다니 공예가들에겐 희소식이다.
애니메이션 한편이 한국 전통 공예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대단하다.
친구가 "나 이번에 협업한 작품도 메종 오브제로 전시됐는데 네가 봤는지 모르겠다"
"엉? 전시했어? 사진 보내줘 봐"
표고 스튜디오 전시물 중 왼편 검정 매듭 공예품이 친구 작품이었다. 말 안 했으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언젠가, 친구의 제자 분이 수업 중에 재밌는 책을 읽었다며 내 책을 소개했다고 한다. 친구가 "어머, 그 책 내 친구가 쓴 거예요" 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나에게 카톡을 보내 왔던 적이 있다.
세상은 참 좁다.
친구의 공방에 가면 기분이 참 좋다.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또 내가 이루지 못한 걸 친구가 잘하고 있어서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는 창작 작업을 좋아하지만 이익 창출이 되지 않아 늘 취미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이 전시가 나에게 창작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불씨가 되길 바래본다.
최근에 만든 조명등 사진을 올리며 긴 글을 마무리한다.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포스터와 맞춘 조명.
쌀풀을 먹여 종이의 강도를 높였고 한지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