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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Mar 18. 2020

프랑스는 전쟁 중

전 세계는 CORONA VIRUS 와 전쟁 중

한국은 1월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프랑스는 평온했다.

2월 중순부터 시작된 2주 동안의 스키 방학 이후 프랑스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2월 말부터 학교 앞에 공지가 붙기 시작했고 바이러스 얘기로 요란하기 시작했다.

문구는 한국, 싱가폴, 중국, 이태리 북부에서 사람들은 학교에 나오지 말고 2주 동안 집에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왜 일본은 언급이 안 되었는지 기분 나쁜 문구였다. 이 공고가 붙은 이 후로 아들반 친구들이 아들에게 너는 괜찮냐고 묻더란다. 한국에 다녀오진 않았지만 한국이 거론됐다는 거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이후부터 이탈리아의 확진자 수가 세계 2위가 되었다. 그리고 옆 나라 이태리의 사망자 수에 프랑스가 겁을 먹기 시작했다. 옆 나라 스페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3월 초에 노동부에서 공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누구는 걸리면 죽는 병처럼 무서워했고 누구는 감기보다도 못한 거 가지고 호들갑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3월 말에 있을 니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번의 아뜰리에를 참여하면서도 이 행사가 취소되진 않을까.. 마스크를 만들면서도 의심스러웠다.


3월 초에 몽펠리에에서 아는 언니가 여권 때문에 대사관 갈 일이 있어 파리에 올라왔다. 이야기를 하다가 4월 부활절 방학 2주 동안에 남부에나 다녀올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이 들으면 바이러스 때문에 얌전히 있으라 하셨을 텐데 여행도 가고 싶고 하루 휴가만 내면 며칠 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 고민이 되었다. 환불이 안 되는 저렴한 표를 구매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기차표를 구입하지 않았다.

그때 몽펠리에 언니가 하는 말이 코로나는 파리가 위험하지 남부가 위험하냐고 걱정하지 말고 내려오라고 했다. 생각해보겠노라고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파리 15구 어느 초등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그 학교에 휴교 명령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봤다. 이미 어느 특정 지역은 휴교가 된 상태였다. 곧 우리 동네도 시작되겠다 싶었다. 내 주변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아이들이 학교에서 옮아오지는 않을까 불안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누군가가 기침을 하면 괜찮은 거지?라고 묻곤 했다.

그동안은 지하철에서 기침을 해도 독감인가부다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3월부터는 누군가가 기침을 하면 다들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내가 기침을 하면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렸다. 왜? 나는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3월에 샹젤리제 거리에서 한국인이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3월 12일 목요일 저녁 프랑스 대통령이 모든 학교 휴교를 선언했다. 새로운 지시가 있을 때까지 휴교라고 했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최소 2주 최대 한 달, 4월 방학 전에는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요일 출근해서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현재 외국 분쟁지역에 파병 나가 있어서 혼자 아이 둘을 봐야 하는 상황이므로 나는 출근할 수 없었다. 16일부터 나는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 물론 급한 일만 메일로 처리하기로..


재밌는 건 대통령이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휴교를 한다면서도 지방선거를 위한 투표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국가차원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행사라 갑자기 취소할 수 없었겠지만 국민들은 이걸 가지고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3월 14일 토요일 국무총리가 밤 12시부터 모든 레스토랑, 페, 디스코텍, 극장은 모두 문을 닫고 100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했다. 사람들은 몇 시간 후부터 모두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밤을 즐기자"라는 것이다. 레스토랑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재료들을 다 사놨는데 갑자기 문을 닫으라니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다음날 주말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공원으로 쏟아져 나왔다. 바이러스는 1도 관심이 없다. 이렇게 요란하게 구는 이유도 모를 것이고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날 기사에는 한심한 파리지앙들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방선거 1차 투표를 끝내고 나온 대통령은 프랑스 국민들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나고 비난했다. 이것이 불씨가 되었을까??

3월 16일 월요일 저녁 대통령은 다시 공표를 하였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바이러스 전파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집에서 최대한 나오지 말아라. 공원도 문을 닫아라. 2020년 3월 17일 낮 12시부터 이 명령이 시행될 것이면 특수한 이유로 이동 시에는 사이트에서 프린트한 혹은 수기로 적은 "확인서"를 소지해야 한다.

프랑스 대한민국대사관 페북에 올라온 자료. 요즘 대사관에서 쉬지도 않고 열심히 힘쓰고 있다.

 이태리처럼 말이다. 핸드폰 속에 저장된 서류는 인정되지 않고 꼭 종이로 들고다녀야지만 인정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300유로의 벌금과 추가 벌금이 더 부가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재정적인 부분들은 국가에서 보상해줄 것을 약속했다.

나와 같이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보험 공단에서 급여를 보상해준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국가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환급을 해주는 것이다. 원래는 100프로가 아닌 84프로를 지원해 주는 걸로 아는데 이번의 경우는 100프로로 알고 있다. 회계사에게 내가 집에서 애를 본다는 증명서류와 의료보험 증명서를 메일과 우편으로 보냈다. 회계사는 이 자료를 의료보험 공단에 접수할 것이다. 프랑스는 체류증이 없어도 일을 할 수 있다. 체류증이 없는 사람을 고용해서 그만큼의 위험이나 세금을 부과해 줄 좋은 고용주를 만났을 경우에는 가능한 일이다. 일을 한 것을 증빙으로 나중에 체류증을 신청할 수 있다. 학생들 중에는 돈이 아까워서 의료보험을 안 만드는 사람도 있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는 체류증이 없거나 의료보험 번호가 없을 경우 국가에서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은 계속 나에게 마스크를 쓰고 다녀라 사재기 해 놔라 곧 집에서 못 나가는 때가 올 거다. 지금 한국이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도 쉴 새 없이 말씀하셨다. 나도 한국 뉴스를 봐서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오히러 이상하게 쳐다본다. 의사 소견서 없이 살 수도 없을뿐더러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한국인 동료도 눈치가 보여서 벗었다고 할 정도였다.

지난주에도 엄마는 쉴 새 없이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데 나도 느낌이 있었는지 지난주 초부터 슈퍼에 가서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에 걸쳐 장을 보았고 그렇게 모은 쌀만 10 KG이 되었다. 무겁게 장을 본 것 같은데도 집에 오면 더 사야 할 것 같고 허전했다. 휴교 명령이 떨어지면서 언론에서는 사람들이 사재기하는 장면들이 소개되었다. 그러면서도 방송에서는 "패닉에 빠질 필요 없다. 우리는 식료품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방송을 보고 나는 또 슈퍼에 갔다.

신문기사에는 이런 사진들이 도배가 되었다.

물건이 바닥이 난 대형마트에 비해 다행히 우리 동네 작은 슈퍼에는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직은 평온해 보였다. 16일 밤 20시에 이동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낮 12시가 되기 전까지 자유시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약국이 문 여는 9시에 맞춰 밖에 나갔다. 슈퍼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약국도 마찬가지 내 앞에 6명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앞에 서계신 할머니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시고 공포에 떠시길래 내가 일부러 멀찍이 서 있었다.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재래시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약국 앞에는 마스크가 없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대통령이 이동금지 명령을 발표하면서 17일 저녁부터 약국에 마스크를 가져다 놓을 거라고 했다. 약국에서 감기약과 기침약도 2병 샀다. 기침감기약 3개에 6유로짜리 림 하나 샀는데 35유로가 나왔다. 원래는 5유로인 약이 지금은 거이 두배의 가격이었다. 예상은 했다. 지금 가격 따질 때가 아니다. 지난번에 닥터 앱에서 내과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았는데 처방받은 약을 먹고 더 심해져서 다음날 다른 의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 의사는 예약을 안 받아서 3시간을 기다려 약 처방전을 받은 이 있다. 25유로를 내고 17유론가를 환불받았으니 내가 내는 돈은 적다마는 3시간 지치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그냥 돈 내고 약을 사는 게 다. 나는 바로 슈퍼이동했다. 우유가 하나도 없다. 집에 고작 3통 밖에 없는데 6개 세트를 사놨어야 했는데 이렇게 후회스러울 때가... 사실 아예 밖에 못 나오는건도 아닌데 괜히 걱정이 된다. 안 사도 될 걸 막 사고 손비누 샤워젤 샴프 치약 트리오 쓰레기봉투까지 우선 다 다. 빵집으로 이동했다. 빵집 마저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바게트 빵 5개를 샀다. 냉동실에 얼려놓고 필요할때 오븐에 구워먹으면 된다. 낮 12시 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했다. 은행에 가서 현금도 몇백 유로 찾아놨다. 이것도 엄마의 잔소리 덕에...


SNS에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늘자 뉴스를 보니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아침 7-8시에 주민등록증의 나이를 확인 후 노인은 60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게 하는 슈퍼들이 소개되었다. 또 루이비통 재단에서는 향수 만들던 공장에서  젤 타입의 손비누 12톤을 만들어 39개의 병원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을 닫아야 하는 레스토랑들이 남은 음식과 재료를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꽃가게는 어차피 버릴 꽃들을 꽃다발로 만들어 동네 주민들이 자유롭게 가져가도록 했다는 뉴스도 보았다. 

파리 국립 오페라단은 집에 갇힌 시민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오페라공연을 무료관람 할 수 있게 했다. 


내가 약국과 슈퍼, 빵집에서 시간을 보낸 17일 오전에 다른 사람들은 파리를 떠나기 위해 기차역이 붐볐고 고속도로에는 파리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차들이 넘쳐났다는 기사를 봤다

만약 부모님이 지방에 계셨다면 나도 파리를 떠나 시골에서 조용히 이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프랑스 한국 대사관에서는 공지가 계속 뜬다. 프랑스 정부가 국제 기숙사촌의 학생들에게 자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한국은 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진 반면 이곳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교환학생들이나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학생들은 굳이 프랑스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왜냐면 학교도 언제 개학할지 모든 일정이 취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한인들이 비행기 일정을 문의해서 대사관에서 대한항공과 협의 중이라는 공지가 계속 뜨고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317006300081

한국 문화원에서 예정되어 있다 82년생 김지영 작가와의 만남도 취소되었다.  

모든 게 올스톱 됐다. 아이들 학원도 모든 행사도, 15일 동안 집에만 있어야 한다.


낮 12시가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요하다.. 그래도 차 몇 대는 다니고 사람들도 걸어 다닌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애들이 나와 놀고 있다.

이제 지켜봐야겠다. 이동 금지령 휴교 공공기관 폐쇄 등 모든 걸 중지시켰으니 로나 바이러스 전파가 우선 차단되리라 본다.


남미 기아나에서 살 때 2017년 국가 파업을 겪어봤다. 남미로 이사 가기 전 2015년 한국 휴가 땐 메르스가 터져 한국에 있는 2달 내내 불안에 떨었었다.

이번 일도 몇 달만 참으면 지나가리라..

주 프랑스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발표한 현재 상황정보. 파리가 있는 수도권 지역 일드 프랑스가 가장 높다.


여유를 갖자. 

모두 우리 집 안에 있다 생각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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