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로니에 Mar 12. 2021

프랑스에서 과연 손님이 왕일까?

한 3주 전에 아파트 문 앞에 환풍기 컨트롤 공고가 붙었다. 며칠 오후에 방문할 테니 알고 있으라는 소리다. 왜? 하도 건물에 들락거리며 사기 치는 사람들이 늘어서 사람들이 벨이 울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것은 이렇게 아파트 문 앞에 공고를 붙인다.


이곳은 공무원 주택단지이다. 한마디로 경찰도 소방관도 시청 직원도 군인들도 다 거주하는 곳인데 사기꾼들은 늘 벨을 울려대며 어떻게라도 한 건 하려고 아침부터 저녁 6시가 넘도록 단지를 돌아다닌다. 왜 경찰가족은 저런 사기꾼들 신고 안 할까도 궁금했다. 인권이 중요한 나라니까 사기도 하나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건지 저들의 인생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개인주의 성향 때문인 건지는 알 수 없다.

작년부터 전기 영수증을 보여주면 할인을 해준다거나 환불을 받게 도와준다거나 우리를 위해서 좋은 전기세 요금을 제안해 주겠다는 식이다. 그렇게 손에 넣은 영수증 상의 개인 정보로 은행 인출을 하거나 큰 액수의 영수증이 갑자기 날아오는 일들이 뉴스에 종종 소개가 되곤 했다. 지난달도 지난주에도 이런 사람들이 방문했다. 방문할 때마다 교묘하게 말을 돌린다. 처음에는 "의무"라고 했다. 자기는 전기공사에서 컨트롤 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그 말이 이상하다. 본인들이 사이트에서 다 관리되는 걸 왜 사람들이 직접 방문하냐는 거다. 내가 "우리가 집에 없었으면 어쩔래?" 했더니 그럼 또 방문해야 하니까 지금 보여달라는 식이다. 그냥 가지도 않는다 어떻게 서든 꼬시려고 몇십 분을 매달린다. 결국 사람들은 애초에 문을 안 열어주기로 맘을 먹게 되는 것이다. 집뿐만 아니다. 작년에 회사로도 전기회사에서 전화가 와서는 우리 정보를 알려주면 확인해보고 최대 500유로를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우리 정보는 그들이 더 잘 알 텐데 우리한테 묻는 거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선 알겠으니 다시 연락할 수 있게 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그 번호로 전화하니 역시나 받지 않는다. 예상대로 사기다. 회사 홈페이지마다 사기를 조심하라는 공고가 자주 팝업으로 뜬다. 아프리카 번호로 보이싱피싱 전화가 자주 걸려와 해외번호를 아예 차단했다. 프랑스는 확실히 좀 늦다. 한국에서 십여 년 전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 이곳에서 성행하니 말이다.


오늘 오후 2시20분경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화장실에 있어 문을 열 수 없었고 창문을 통해 아래를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 후 이웃들 집에서 벨소리기 났다. 나는 우리 집 벨이 아니었기에 문을 열어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지도 모르는데 0층까지 내려가서 친절히 문을 열어줄 이유는 더더욱이 없었다. 누군가가 들어왔고 이웃집 벨을 눌러 환풍기를 고치러 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바로 내려갔다. "이따 우리 집에도 좀 와줄래?" 아저씨는 짜증 섞인 말투로 "아까 벨 여러 번 눌렀는데 없었잖아" "아냐 너 딱 한번 벨 눌렀어 창문으로 봤는데 네가 없었고. 이따 우리 집도 좀 와줘"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다고 대답했다. 거이 한 시간을 기다렸다. 창문도 열어보고 복도 소리도 들으려고 몇 번 문도 열어보았다. 아이들 학교에서 찾을 시간인데 나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내가 직접 와달라고 했고 온다고 대답했으니까 기다린 거다. 신발을 신고 나가보았다. 아무도 없고 문 앞에 붙여져 있던 환풍기 검사 안내문도 다 사라졌다.


가버렸다. 나를 무시하고 그냥 가버렸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찾으려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어이없고 황당해서 경비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환풍기 검사 끝난 거냐고. 내가 우리 집에 와달라고 직접 말했는데 그냥 가버렸다고. 경비 아저씨는 우리 집으로 바로 달려왔다. 내가 황당하다며 상황 설명을 하자 본인도 검사하러 온 사람들을 못 봤다고 나보고 그들이 다녀갔냐고 묻는다. 경비아저씨의 집도 같은 건물에 있다. 자기 아내에게 벨소리가 났냐고 물었더니 벨 누른 사람들이 없었다는 거다. 나는 그들이 근무시간이 고작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엄청 화를 내면서 벨 한번 누구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냐고. 이따위로 일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다시 와서 검사를 하라고 할 거라고 나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환풍기는 교체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2018년에 환풍기 검사를 받았다. 그들은 검사를 하고 종이에 표시를 하더니 한 개를 교체해야 한다고 나에게 연락이 거라고 했다. 그리고 3년 동안 연락이 없었다. 환풍기 하나가 고장 난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없어도 산다. 여기는 프랑스다. 뭐 하나 고치려고 사람 부르면 돈도 많이 내고 며칠씩 걸려 한국 사람들은 숨 넘어가고 혈압 오른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스에서 살면 잦은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걸어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일이 수도 없다. 왜? 고장 났다고 신고하면 며칠 후에 오고, 부품 구입해야 한다고 또 며칠 걸리는 곳이 프랑스다. 프랑스에 오래 살아서 좀 좋게 포장해주고 싶은데 그게 도대체가 안된다.

어쨌든 오늘 환풍기 검사원들을 직접 찾아갔을 때 커다란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많은 환풍기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 2018년도에는 종이에 표시만 했다면 이번엔 직접 그 자리에서 교체를 해준다는 소리다. 그래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처음엔 인종차별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데 내가 아시아인인 게 무슨 문제일까 싶었다. 근데 한참 후에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프랑스인이었어도 그냥 갔을까?


그들은 왜 1시간 만에 귀찮은 듯 후다닥 대충 일을 하고 떠났을까? 왜냐면 그들은 월급을 받는 책임감 없는 프랑스인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이곳이 그렇다. 열심히 하나 슬렁슬렁 하나 월급은 똑같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일만 더하고 월급은 안 오르지만, 슬렁슬렁 일하고 사장과 친하면 월급이 올라가는 곳. 한국도 그런가? 모르겠다.

한국인과 같은 책임감은 애초에 없다. 프랑스에 여행 와서 레스토랑과 옷가게의 불친절한 종업원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종업원이 옷만 팔면 되지 웃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그들. 고객도 옷이 필요해서 온 거니까 갑과 을이 동급이다 라는 말이다. 월급을 받는 종업원은 옷을 더 팔든 덜 팔든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가게 이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명품샵에서 일하는 판매 직원에서 지점장이 판매를 더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면서 회사를 고발했다는 소리를 말이다. 몸보다 입이 앞서는 프랑스인들 대단하다.


판매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다면 사긴 꾼들처럼 열심히 일 할 거다. 아마 오늘 온 검사원들은 월급제일 것이다. 일을 더 하든 덜하든 어차피 같은 월급을 받으니까 대충대충 일 하고 한 시간 만에 철수한 거다. 이 많은 집을 한 시간 안에 모두 끝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프랑스는 갑과 을이 없는 건가? 사장한테는 고객이 갑이 맞다.

그러나 월급 받는 직원들에게는 고객이 갑이 아니다.

회사의 매출은 직원의 월급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본인들이 고객을 선택한다고 한다.

고객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에르메스 제품을 살 수 없고 에스메스가 고객을 선별한다는 것.

그냥 프랑스의 문화로 받아들이자. 그럼 속 편하다.

.

.

.

며칠 후

경비아저씨가 집에 방문했다.

현관 인터폰 교체로 새로운 카드를 주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인터폰은 누군가 우리집 벨을 누르면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했다.

"와우 프랑스와는 어울리지 않다!"

프랑스는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한국에 비해 10년 늦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비 아저씨를 보내며 물었다.

"환풍기 업체에서는 뭐래? 언제 다시 온데?"

아저씨의 동공이 미친듯 흔들리면서 너무 바빠서 전화를 못 해봤다고 정말 정말 바쁘다는 말을 반복한다.

어이가 없었다. 다시 꼭 오게할거라고 걱정말라며 그렇게 흥분을 하더니...그냥 잠시 내 편이 되어준건가 아니면 본인 집 환풍기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건가

환풍기 고장난게 뭐 대수인가. 남미에선 전기 안 들어올 때도 잘 살았는데


"아.. 이 프랑스 것들 일처리하는 꼬라지하곤...."

그냥 웃자






작가의 이전글 내 삶의 배경 인천공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