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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Mar 04. 2021

내 삶의 배경 인천공항

“엄마! 한국 냄새가 나”

“한국 냄새?”

“응. 공항에 내리면 나는 그 냄새 있잖아 한국 냄새”

"그게 어떤 냄새인데?"

"좋은 냄새"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한국 타령을 하더니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동영상을 재생시킨다. 인천공항 안에서 찍은 사물놀이패와 피아노 연주 공연이다. 벌써 3년 전이다.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3년 파견을 마치고 휴가차 한국에  다녀 온지도. 동영상을 찍어 바로 SNS에 올렸다. 정글이 우거진 아마존에 위치한 남미 기아나에 살던 이웃들은 아시아의 작은 공항에 크게 놀라며 요란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이정도의 일상을 누리고 살 수 있었을 텐데 5번째 국제 이사를 위해 프랑스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 안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내 삶의 기쁨과 슬픔의 배경이 되었던 인천공항이 어느덧 개항한지 20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닌 2001년, IMF 위기 때문에 취업이 안 될 거라는 걱정이 앞서던 그 시절, 공항 설립도 4년이나 늦어지게 되었다. 내가 공항에 처음 방문한 것은 2003년 여행을 위해서였다. 나는 관광지처럼 공항 구석구석 구경하며 지하 푸드 코트에서 식사도 했다. 그 시대에 공항은 지금의 문화 예술 공간과는 사뭇 다른 그저 입출국을 위한 공간일 뿐이었다. 유럽 배낭여행을 떠날 땐 엄마와 처음으로 장기간 떨어져야 한다는 불안감에 오랫동안 엄마와 데이트를 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유럽여행에서 만난 남자 친구와 2년간 국제 연예를 할 때,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버스 타고 공항을 향하던 기억과 몇 시간 연착되는 비행기를 한없이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렸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사람과 결혼해 프랑스로 이민을 가던 날엔 공항에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마중을 나와 눈물로 이별을 했다. 첫 아이를 프랑스에서 출산하고 한 달된 아기를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던 날 시부모님은 첫 손주를 보고 무척 기뻐하셨다. 해외 파견을 떠났던 남편을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곳도 공항이다. 한국이 그리워 이민 생활을 포기하고 돌아왔을 때, 몇 년 후에 다시 이민을 선택했을 때도 늘 배경은 공항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조 베터리를 수화물에 실었다가 전화를 받고서 부랴부랴 수화물검사실로 뛰어갔을 때도 잊지 못한다. 한 손에 첫째를 꼭 붙잡고 다른  손으론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미친 듯이 뛰어갔다. 면세점이 그렇게 큰지 공항이 원래 이렇게 컸었던가 새삼스럽게 놀라운 날이었다. 땀 범벅이 되어 힘없이 아이들을 공항 키즈 카페에 두고 의자에 앉아 쉬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 유모차에 짐까지 들고 있던 나를 보며 할머니들은 혀를 차며 “엄마들은 대단해! 엄마니까 그런 힘이 나오는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애써 웃으며 입을 꼭 다물고 속으로 대답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공항에 있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입국할 땐 보고픈 부모님 집에, 출국할 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내가 사는 집으로.           

주변에서 한국 사람을 본 적 없는 우리 아이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긴장을 하곤 했다. 온통 검은 머리 사람들과 갑자기 들려오는 한국말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이젠 공항을 좋아한다. 공항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한국의 첫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공항이 나오는 드라마, 공항에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콘서트를 꼭 찾아본다. 며칠 전에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관제탑과 한국 항공사 기장들의 교신 파일을 듣게 되었다. 순간 내가 비행기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공항에 있을 때의 그 설렘이 그대로 전해졌다. 코로나로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이 목적지 없이 비행기를 타는 체험이 유행이라더니 아마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민 14년 동안 그리운 가족 곁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을 주는 곳, 내 삶의 의미가 있는 특별한 장소가 바로 이곳 인천공항이다.      

“엄마 한국가고 싶어 빨리 가면 안 돼? 작년에도 못 갔잖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어려워. 나중에 좋아지면 그때 가자”     

프랑스는 2021년 2월 유럽 비연합 국가들의 출입국을 특별사유를 제외하고 금지시켰다. 한해동안 2번의 이동금지와 야간통행금지가 진행 중이다. 현재는 한국으로 들어가기도 프랑스로 돌아오기도 힘들어졌다.

그립고 설레는 한국의 도착을 알리는 인천공항. 비행기에 내려 한국에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이곳. 한국의 문화와 수준을 알리는 첫 번째 공간이 바로 인천공항이다. 아름다운 건축과 인테리어. 여행객들을 위해 관리되는 신선한 공기와 차가운 습도 그리고 빛이 나는 깨끗함. 분주히 움직이는 로봇. 깔끔한 복장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보여주는 공항 직원들. 버스 탑승을 위해 사람이 아닌 캐리어가 줄을 선다는 것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세계 공항 4위라는 자리가 20년 동안 꾸준히 노력해온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노력을 말해준다.

공항이 삶의 배경인 공항 관련 근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되길. 또 누구든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평범한 날들이 돌아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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