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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로니에 Feb 03. 2021

브라질 포르탈레자 - 제리코아코아라

재외동포 재단 코리안넷 랜선여행 우수상 선정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카이엔 Cayenne에서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 포르탈레자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6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밤 10시는 된 것처럼 어두웠고 이곳 사람들은 새벽 3시 반에 운동을 할 만큼 해가 빨리 뜬다는 것도 도착해서 알았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동네 작은 식당이라 그런지 불어 영어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에 어학사전을 뒤져야 했고 주변 사람들의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을 했습니다. 당연히 100유로는 넘게 나올 줄 알았는데 50유로도 안 나온 것에 브라질 물가를 다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브라질 북부의 한 달 월급은 300유로 정도로, 물가를 감안해 본다면 한 끼 50유로의 외식비는 엄청 비싼 금액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온 우리들에게는 놀란만큼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아 숙소 담당자가 알려주는 우버택시 앱과 통역 앱을 다운로드하였습니다.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바닷가로 나가는 길. 건물들이 알록달록 특이해서 사진을 찍는데 한국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이라고 하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소년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블랙핑크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어느 여자분에게 사진을 부탁하자 흔쾌히 가족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내 핸드폰을 돌려주며 하는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브라질 언어인 포르투갈어를 알아들을 수 없자 간단한 영어단어로 설명해주길 "절대 니 핸드폰을 다른 사람한테 주지 마, 니 핸드폰을 훔쳐갈 거야. 그리고 부탁하면 돈을 줘야 해 총을 너에게 겨눌 수 있어. 여행 동안 조심해" 이 말에 우리 가족들은 굳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십여 명씩 무리 지어 다니고 다리 아래에서는 마리화나를 피어대고 있었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들었던 포르탈레자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우리는 우신 이 위험한 지역을 벗어나고자 20여분쯤 바닷가의 중앙 쪽 고급 호텔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어느 지역부터는 경찰들이 관광객들을 보호해주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안전구역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에 있다는 한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2년 만에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었기에 전혀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우리가 처음 간 지역은 위험지역이니 절대 가지 말라는 정보와 함께 앞으로 여행할 2주간의 정보도 주셨습니다. 포르탈레자는 부산 온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관광지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시작해야 할 결혼 10주년 여행이 슬렘가부터 만나면서 패닉 상태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부디 2주 후에 집에 무사히 도착해 있길 기도했습니다.


포르탈레자에서 모로 브랑코 Morro branco 해변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숙소 지배인의 전화로 고맙게도 숙소 앞까지 데리러 와 주었습니다. 그 큰 단체버스가 말이죠.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모로 브랑코는 포르탈레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기카를 타고 해변을 달렸습니다. 자연이 만든 모래사막도 걷고 이동거리 중간에 위치함 바닷에서 쉬기도 했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부기카에서 내린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물침대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저 멀리 보이는 딱 하나 남은 그물을 차지하기 위해 저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열심히 뛰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그 그물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불렀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은 오지 않고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아이가 혼자 내려오다 부기카 뒤 머플러에 허벅지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또 패닉에 빠지고 말았고 아이를 바로 흐르는 바닷물에 담가 다리 소독을 했습니다. 아이가 울자 어느 미국인이 와서 화상 크림을 발라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단체버스를 타고 왔던 가이드의 도움으로 약국에서 화상 약과 소독약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갈까 생각했지만 남편이 응급처치 자격증이 있었기에 매일 소독하며 상처를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이 다리를 소독할 때마다 상처가 남으면 커서 성형 수술시켜줘야겠다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제 고작 여행 며칠 짼데 앞으로 남은 일정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아파하지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밤에 아파서 잠을 못 잘까봐 내가 아이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바닷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슬퍼하지 않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에 바빴습니다. 잘 되던 핸드폰은 갑자기 고장이 나고 아이폰이 제일 비싼 나라라는 브라질에서 새로 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핸드폰이 없으면 택시를 부를 수도 통역을 할 수도 없으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급한대로 남편이 내 핸드폰을 사용하기로 했다. 여행 일주일이 되던 날 앞집 이웃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습니다. 저희 집 앞에 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고 아마도 수도관이 땅 속에서 터진 것 같다고요. 집으로 돌아가려면 일주일이 남았고 여행 중이라는 건 안 이웃이 자기가 우선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와서 긴급 조치를 취해놨다고 여행 후에 다시 그 사람과 연락을 해보라고 친구는 연락을 주었습니다. 여행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포르탈레자에서 차를 타고 5시간을 이동하여 제리코아코아라 Jericoacoara 라는 관광지에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진짜 휴가를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자연이 만든 하얀 산, 물 웅덩이까지 아름다웠습니다. 포르탈레자에 사는 한인들의 말로는 우리가 방문한 그 해가 비가 많이 내려서 볼 것이 가장 많은 해라고 본인들도 여행하러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관광지다운 물가와 전 세계 음식이 골고루 있는 레스토랑들. 여행 2주 동안 단 한 끼도 내가 준비한 것이 없었다는 것에 "남편이 결혼 10주년이라고 작정하고 나에게 휴식을 주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위한 목적이 다양하지만 우리 가족을 여행을 다닐 때마다 더 신뢰하게 되고 더 단단해지는 걸 느낍니다. 3년의 남미 파견 생활 중 브라질 제리코아코아라의 여행은 정말 꿀 같은 휴식이었습니다.

우리가 포르탈레자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날 한식당 K-bab 사장 부부는 우리에게 아이들 옷을 바리바리 싸주셨습니다. 마치 우리가 오래 알았던 사람처럼 말이죠. 그 후로도 우리는 남미 파견을 마치고 파리에서 이사 후에도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로 남았습니다.

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K-bab 언니는 한국에 잠시 들어간 친언니에게 연락해 브라질로 책을 한 권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친언니도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데 때마침 한국에 휴가를 갔다고 해요. 친언니는 본인도 프랑스 남부에서 근무 중인 외인부대 가족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책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에 있는 제 사진을 보고 놀랐다고 해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거든요. 우리 딸이 태어나 얼마 안 됐을 때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아들들 프랑스 유학을 알아보고자 잠깐 몽펠리에에 한달 휴가를 오셨던 가족이 있었어요. 그때 그 언니가 우리딸을 너무 예뻐하셔서 늘 안아주셔고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어요. 세상이 쫍아도 너무 쫍은거 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답니다. 브라질과 프랑스 그리고 아프리카라니 말이죠.


남미 여행을 하시는 분들에게 제리코아코아라 꼭 추천합니다.


- 출처 :    http://www.kore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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