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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ung Feb 28. 2018

[여행] 뉴욕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뉴욕 유학생이 뉴욕 관광객으로 변했을 때

학부를 졸업한지도 일 년 육 개월이 지났으니 뉴욕을 떠난지도 일 년 오 개월이 되었다. 열아홉에 가까워질 무렵에 뉴욕에 왔으니까 참 오래도 있었다. 유학생으로 있으면서 불편한 점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나의 기준에서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것들이었기에 그것조차도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이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만나 곳이며 (이 글을 읽는 다면 카톡 좀), 그 대부분이 아직까지 머무는 곳이기도 하며 (그대들도), 내가 나의 기질적 정체성을 찾은 곳, 뉴욕은 이래 저래 나에게 특별한 일이 많이 일어난 곳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향으로 무언가의 분위기와 느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 향들과 비슷한 향이 나를 스쳐가는 순간이면 마치 내가 그 시간 그 자리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했는데 전학을 가게 된 학교를 급식실 입구를 통해서 처음 들어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급식실 입구의 향이나 그 비슷한 향을 맡을 때마다 전학 첫날의 기분을 그대로 느끼곤 했다. 그렇기에 JFK, 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나는 미국에 처음 온 날과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 아무것도 아니다'이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 시간 안에 내가 들어 있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뉴욕에 도착했다. JFK는 여전하다. 그 향도 여전하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내가 느끼는 것은 다르다. 나는 반가움을 느끼고 기감으로 가득 차있다. 


뉴욕은 더 이상 나에게 일상이 아니라 여행지였다.


Fika (824 10th Ave, New York, NY 10019, USA)

비행기에서 저녁에 내렸기에 숙소에서 다음날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가 10th ave에 있는 Fika에 갔다. 내가 졸업한 John Jay (대학교)랑 제일 가까웠기에 매일같이 가던 곳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라즈베리 요거트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홈메이드라지만 건포도가 왜 이렇게 많이 들어있냐며 조용히 구시렁구시렁거리면서 건포도를 다 골라냈다. 이곳은 여전했고, 요거트의 맛도 여전했다. 


내가 뉴욕에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친구들은 5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냥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라게 하여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장난에 큰 재미를 느끼는 사람인가 보다. 자리에 앉아 요거트를 먹으며 오는 길에 찍었던 CVS (편의점)의 사진을 John Jay에서 만난 아끼는 친구 은석이에게 보냈다. 은석이는 내가 4학년 때 1학년으로 입학해 한인회를 통하여 만났는데 (너의 첫 이메일을 공개할까 하다가 참았다 김은석), 김은석 포함 이 시기 신입생으로 들어온 친구들과 난 겹치는 시간이 1년밖에 되진 않았지만 재미난 추억들이 많다. 은석이는 격하게 놀람을 표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카로 왔다. 원래 내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또 다른 John Jay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다솜이도 피카로 왔다. 다솜이는 John Jay 첫날, 첫 수업부터 함께 했던 동갑내기 친구이다.


Starbucks (475 W 57th St, New York, NY 10019, USA)

학교 앞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유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우리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365일은 치폴레가 그립고 겨울이 되면 스타벅스 펌킨 스파이스 라테, 페퍼민트 모카, 에그녹 라테가 그리워진다. 난 펌킨 스파이스를 주문하였다. 시나몬과 호박은 언제나 참 조화롭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간 이 친구들도 나도 많은 성장을 하였음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우리의 사이는 여전하였다.

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 (524 W 59th St, New York, NY 10019, USA)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을 듣고 오겠다며 일어서는 다솜이를 따라, 나도 학교에 졸업생 ID를 만들러 가야 한다며 함께 일어섰다. John Jay는 출입구에서 ID를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원래 가지고 있었던 학생증을 찍어봤는데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능했지만 마음으로는 어색함을 느끼며 은석이와 졸업생 ID를 만들러 갔다. 역시 미국, 미리 신청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찾고 확인하고 물어보고 확인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ID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지극히 미국적인 시스템조차도 참 여전했다. 나의 인내심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탑재되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ID를 받고 자리를 옮겨 John Jay 한국 친구들과 자주 모이던 지하 3층에 있는 학교 카페로 갔다. 다솜이는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합류하기로 하였고, 은석이와 나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과 같은 친구들을 하나 둘 씩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희가 왔고 그다음으로는 승환이가 왔다. 이 친구들도 내가 4학년 때 1학년으로 만난 아끼는 친구들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깍듯한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져 거슬렸지만, 그 친구들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그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린 그 것. 건희는 안 그래도 과하게 초롱초롱한 눈을 더 크게 뜨고 '누나 왜 여기 계세요' 라며 한 열 번쯤 물어봤고, 승환이는 비교적 태연해 보여 실망스러웠지만 이 친구 답지 않게 말을 심각하게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며 나와 은석이는 장난의 성공으로 인한 뿌듯함을 공유했다. 후에 다솜이가 합류하였고 지금은 참 소중한 인연이 된 가람이를 이때 처음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심각하게 아끼는 친구 진희가 왔다. 항상 진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딱히 없는데도 항상 안쓰럽기도 하고 듬직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이 친구들이 그리웠었나보다. 다시 만나니 매우 반가웠고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또 아쉽기도 하였다.


공항, 자주가던 카페, 음식들, 학교, 시스템, 분위기 등 정말 뉴욕의 속성들은 객관적으로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유학생 신분에서 방문자 신분으로 변한 나의 속성의 변화 때문일까, 그것들은 나에게 참 달랐고 굉장히 달랐으며 매우 달랐다. 좀 더 소중하고 좀 더 재미있었으며 좀 더 설레고 좀 더 애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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