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나
감정은 그대로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만큼 예민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과 감정의 분리가 확실한 사이코패스적 기질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이코패스의 이미지 중에는 '분노나 화, 그리고 불만이 가득 차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이미지'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분노'나 '화'는 감정적인 부분들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느낀다 라고 간접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굉장히 모순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미지는 일관적이게 일관성이 없을까? 아무래도 사이코패스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가는데 이렇다 할 기준이 없는데다가 해외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범죄자에게 사이코패스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기에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사실은 어떠할까? 여러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의 (행동이 아닌) 기질적 측면에 전부 해당이 되는, 나의 삶을 살펴보면 사이코패스는 복잡한 감정이 아닌 단순한 감정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감정이든 단순한 감정이든 그 감정들에 예속될것인가 예속되지 않을 것인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기에, 예속되지 않음을 선택할 경우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라는 오해가 생길수 있다.
요즘 들어 계속 신기하다고 느끼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내 삶을 두 명의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삶을 느끼고 살아가는 나와 그렇게 살아가는 나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나, 이렇게 둘.
예민하고 감성적이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건 감정을 느끼는 내가 있다. 나는 불의를 보았을 때 분노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경우 화가 나며, 나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졌음을 인지할 경우 짜증이 난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면 좋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만족감을 느끼며, 자기 전 혼자 책을 읽으면서 평안함을 느낀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기도 나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그냥 온전히 그 감정을 즐길 수 있고 또 즐기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그 감정이 불필요하고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에는 그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분석해 적절하게 그 감정을 가지고 갈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고자 하는데 그것을 나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가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감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끊어는것은 나의 아이폰의 잠금을 푸는 것처럼 쉽다.
보통 이 감정은 사람에 대한 감정과는 다른 상황에 대한 감정들이다. 예를 들어 나는 교회에서나 학교 한인회에서 임원을 종종 맡았는데, 다른 임원들과 함께 행사를 기획하게 되면 맡은 것을 깜빡하고 잊어 차질을 빚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이럴 때 사람이라면 당연히 짜증이 나기 마련이고 나 역시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때 나에게 생기는 짜증이 실수한 사람에 대한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번거롭게 된 상황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 짜증이란 감정은 표출해 봤자 일처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감정이기에 곧 사라지고 만다. 짜증이나 화 같은 나쁜 감정이 아니라 좋은 감정도 그렇지만, 보통 좋은 감정들이 불필요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딱 한 가지 사람에 대한 감정중 이성에 대한 로맨틱한 감정은 예외가 있다. 이것은 팟캐스트 '사이코패틱 내셔널리티'에서도 자주 언급하였는데 보통 친구나 가족에 대한 좋은 감정은 그것이 평생에 걸쳐 가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먼저, 친구나 가족에 대한 좋은 감정은 그 수가 제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을 친구로, 인간으로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해가 될 것은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방적이라 할지라도 스스로가 고통스럽거나 문제 될 것은 없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을 내가 인간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보통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나에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갖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힘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인 통념과 기준에 대한 학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녀의 사랑에는 딱 한자리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어떤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감정, 연, 그리고 시간 등 그 모든 것들이 들어맞을 때 그 두 사람은 그들의 사랑의 자리를 서로로 채운다고 생각을 한다. 여기서 감정의 수는 제한적이고 그것은 일방적이면 안된다. 그리고 다른 상황들도 고려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감정은 다른 인간에 대한 감정과는 다르게 불필요하다 판단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판단되는 경우에는 더 이상 그 감정을 갖지 않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에서 쉽게 오해받을 수 있는 것은 사이코패스는 매몰차고 매정한 인간이라는 것인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그러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지 감정을 상대적으로 가벼이 여겨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끊어낸다는 것은 아니다. 연인과 헤어졌을 경우 누구라도 이 상황에서는 그 연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지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고 그것을 지속시키지 않는 게 가능하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쪽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러한 문제를 떠나 개인의 선택과 그 선택의 기준에 달린 문제이다. 어떤 이에게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이 불필요하고 피곤하게 느껴져 없애는 것을 택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러한 감정들 하나하나가 중요하기에 포기하는 상황까지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에 대한 좋은 감정을 느꼈을 경우는 그것을 내가 끊어 버리는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한다.
가진 것을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시험 전날에 내가 밤 새울 수 있었으면 밤을 새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커피나 레드불을 마셔도 밤을 새울 수 없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내 친구들 중에는 3일 밤을 새도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가 있는데, 만약 친구 A가 시험 전날 밤 새워서 공부를 했다면, 내가 그 친구를 독한사람이라고 판단하는게 옳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