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옥희 울산 교육감을 추모하며,
세상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참 많다. 그러나 깊이 있는 따뜻함을 지닌 리더는 드물다. 그래서 노옥희 선생님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리더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꺾을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이 글을 남긴다.
노옥희 키즈,
고등학생 시절 학생회 임원 활동을 했다. 우리의 과제는 케케묵은 교칙을 ‘보다 실용적이고 인권친화적인 약속’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공든 시간 끝에 교칙은 개정되었고, 나는 그 성공이 ”역대 학생회가 잘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노옥희 교육감의 정책이 있었다.
노옥희 교육감은 ‘학생 참여예산제’를 확대하여, 학생들 스스로가 학교 활동을 기획하고 관련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덕분에 학생회는 교칙 개정에 필요한 각종 토론회 등 공론 절차를 준비할 수 있었고, 학교 공동체 내 합의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그 어떤 시험공부보다 많은 배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교훈을 배웠고,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형성하게 되었다.
교육감은 행정가 이전에 ‘교육자’ 여야 한다. 그 지점에서 노옥희 교육감은 이전과 달랐고 탁월했다. 지역의 평균 학력 점수를 올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라 여겼던 여느 교육감들과 달랐다. 그녀에게 중요한 교육은 학력 점수가 아니라, 학생들 각자가 특수한 개인이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울산 최초 진보 교육감이었던 노옥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보수적 관습이 짙었던 학교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었고, 중대비리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의 단호한 조처로 만년 꼴찌였던 울산시교육청 청렴도를 중위권으로 올렸다. 유치원생부터 중고생에 이르는 교육 복지를 획기적으로 늘렸으며, 학생인권 학생자치 등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프로그램의 씨앗들을 심었다.
울산 언제 어디에나,
노옥희는 평범한 수학 교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가 현장실습 중 손이 잘려 나간 산업재해를 당했고, 그녀는 이를 고발하고 해결하고자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노옥희는 울산 노동운동 현장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1986년 교육 민주화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되었고, 전국 교원 노동조합 초대-2대 울산 지부장을 역임했다. 노동문제 상담소로 간사로 일하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는 구속되기도 했다.
그녀는 진보 정치인으로서 보수 성향이 짙은 도시에서 풀뿌리 진보를 심기 위해 애썼다.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울산시장 후보로, 2008년 총선에서는 진보신당 동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다가 2018년 울산 교육감 후보로 출마했고 끝내 당선된 것이다.
노옥희는 울산의 현장 언제 어디에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지우고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라 해도 과장이 아닐 테다. 이런 이유로 나는 노옥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주로 그녀와 함께 해온 진보적 시민들의 증언이었지만, 그녀에 대해 험한 말을 하는 울산사람을 보지 못했다. 보수 성향이 짙은 지역에서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인 시민들에게도 인정받던 교육감이었다. 래디컬한 향기를 품기지만 안정적인 신뢰감을 쌓아온 진보 활동가. 성공적인 사례로서 그녀를 기억해야 할 이유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노옥희는 ‘아프간 난민 학생의 손을 잡고 등교했던 선생님’으로 남을 것이다. 고국을 탈출해 한국에 온 아프간 특별 기여자와 자녀들은 지난 2월 울산에 정착했다. 초등학생 28명이 서부초등학교에 배치되자, 지역 여론은 학생 과밀과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노옥희 교육감은 설득하고 설득했다. 오히려 이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그래도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곳이며 학교는 그런 세상을 가르치고 만드는 곳이라고. 그렇게 아프간 학생들은 울산에 정착했다.
교육감은 아프간 학생들의 손을 꼭 잡고 첫 등굣길을 걸었고,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캠페인을 두고 ‘쇼 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런 쇼라면 행하면 행할수록 좋을 것이다. 리더(leader)는 비전을 연출해야 하는 사람이다. 앞장서서 사람들을 향해 어딘가로 나아가자고 설득하며, 그 좋은 어딘가로 손을 맞잡아 나란히 걸어가는 존재. 우리를 끊임없이 흔드는 부조리 속에서도 따뜻함이 살아있음을 부단히 증명해내는 대표자. 그렇게 손을 맞잡고 ‘더불어 숲 (2009년 그녀가 만든 지역의 북카페 이름)’ 세상으로 가자고 설득해온 것이 노옥희 리더십이었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청년 노동자들의 손이 잘리고,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곳이다. 이토록 아이들에게 각박하고 짓궂은 세상이지만, 나는 당신의 마음이 살아있는 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고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노옥희의 슬로건을 생각한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세계조차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밀려오는 허망함 만큼, 우리는 그런 세상을 향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