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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Feb 27. 2023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행진

<건대교지> 123호 (2022 가을)

* 러우 전쟁 개전 1년을 맞아, 끌어 올리는 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다. 전쟁 가능성을 점친 사람들은 많았지만, 러시아가 ‘그날’ 우크라이나 국경선을 넘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전쟁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거라고는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국제질서의 격변 속에서, 뚜렷이 볼 수 있었던 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아픔이었다. 그래서 나는 예단할 수 없는 국제정치에 대한 논평 이전에 그곳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따스한 봄날집회

 5월 1일 일요일 낮 12시, 덕수궁 돌담길. 푸른 나뭇잎이 따스한 햇살을 반사하며 바람에 실랑였다. 그늘진 길을 따라가자 우크라이나 노래가 울려 펴졌다. 노래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그렇게 집회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다.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지 허락을 구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많은 분이 흔쾌히 사진 촬영에 협조해주셨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발언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집회에 동화될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우크라이나의 국가(國家)를 부르고 러시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자유발언을 들으며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문제의식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러시아군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규탄, 전쟁을 둘러싼 어느 우크라이나 집안의 연대기, 핵 위기에 대한 우려...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가 한층 더 가깝고 무겁게 다가왔다. 그들의 아픔은 우리에게서 먼 동구권 유럽의 분쟁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경험한 바 있는 전쟁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자유발언을 들은 후 세종대로 거리를 행진했다. 매번 길가에서만 바라보던 차도 위를 직접 걷다니! 신선한 경험이었다. 날씨 좋은 봄날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진중한 집회를 이렇게 즐기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반사적 성찰. 굳이 해명해보자면 집회가 그저 슬프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행진은 ‘우크라이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시민의 희망들로 가득했다.



 함께한 시민들의 이야기

류다 씨는 15년 전 대학원 석사 과정 유학을 오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그녀는 러시아가 전쟁을 개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얘기했다. 본인은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지 않은 편이었지만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Q.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친지분의 사정은 어떤가요?

: 가족 친척 모두 키이우 국제공항 근처에 사는데 별문제는 없다. 다른 지역보다는 안전해서 다행이다. 부차에 사는 친구도 있는데 그 친구는 재산상 손해만 입고 폴란드로 나갔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전쟁이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봐야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Q: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 우크라이나 제재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현실도 있기에 부분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이해한다. 또 한국 사람들 중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사람들을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정보들을 확인하고 함께 수정하면 좋을 것 같다.


Q: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 우크라이나는 한국과 비슷한 나라다.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를 사랑한다. 지금 우크라이나에는 문제밖에 없다. 이것도 해결해야 하고 저것도 해결해야 할 게 천지다. 그런데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는 하나로 뭉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독립 직후에 이랬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렇게 연대하는 마음이 우크라이나 재건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류다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주변 시민들과의 인터뷰를 모색했다. 쉽지 않았다. 한국어나 영어가 서툰 우크라이나 시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우크라이나 친선회(한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등학생이었다. 이렇게 평화 집회에는 우크라이나 시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심 많은 한국인들도 함께했다.


Q: 어떤 동기로 한우회 활동을 하게 되셨나요?

: 평소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어떻게 하면 우크라이나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을까요?

: 전쟁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은 분들은 인스타그램 ‘우크라이나 뉴스 ’ 채널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또 주변 지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일요일 집회 관련 소식을 공유하고, 우크라이나 대사관 후원계좌로 만 원이라도 후원해 주시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다음 인터뷰에 응해준 니콜라이 씨는 거리 행진을 할 때 우렁차게 구호를 선창하던 시민이었다. 그는 앞서 인터뷰한 류다 씨처럼 대학원 유학을 왔다가 한국에 정착했다.


Q. 혹시 집회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 집회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모여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집회에 리더 같은 직위 체계는 없다. 모두가 같은 포지션에서 협력하며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있다.


Q. 혹시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분 사정은 어떤가요?

: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키이우에 있다. 키이우가 위험했을 때 폴란드로 갔다가 현재는 키이우로 돌아왔다.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 철수했지만 언제 다시 반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러시아군이 다시 키이우를 점령하지 않게끔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Q.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우리나라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민주주의 국가들이 한편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대 러시아 경제제재가 필요하다. 현재 러시아는 자국민에 대한 생각 없이 모든 비용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사람들을 죽이는데 쓰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한다.


Q. 현재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전에도 크림반도 등 러시아와 갈등이나 정치적 문제 있었지만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부에는 러시아 편이 거의 안 남았다. 어떻게 보면 이 전쟁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통합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

집회에서 들은 전쟁의 참상은 끔찍했다. 러시아군은 진퇴 과정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 행위를 일삼고 아동 납치 및 성폭력을 행했다. 또 러시아군이 몇 주 동안 점령한 부차 등 북부 지역에서 물러나면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들의 사체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에서는 폭격이 감행되는 가운데 최소 민간인 1만 명이 희생된 걸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및 서방(유럽연합, 미국)은 이를 ‘제노사이드(조직적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집회는 전쟁이 핵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체르노빌 사태가 발생했기에 핵 문제에 민감하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에 따라 핵무기를 폐기하는 대신 타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약속을 체결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군은 자포리자 등 원전 인근 지역에 폭격을 감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규정짓는 집회의 관점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언론이 이번 전쟁을 ‘푸틴의 전쟁’으로 규정지으며 ‘지도자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고는 했다. 그런데 집회 참여자들은 ‘202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푸틴의 전쟁’이 아닌 ‘러시아의 전쟁’으로 규정 지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푸틴이 전쟁을 결단한 최고 책임자라 하여도 우크라이나에서 잘못된 행위를 일삼는 군인들은 러시아 일반 시민들이며 개전 이후 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푸틴과 전쟁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이번 전쟁의 참상에 관해 러시아 시민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착한 전쟁은 없다

 전쟁은 그 자체로 잔혹하다. 상대가 적이기에 죽여야 하는 살육전 속에서 인간성의 공간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타협 없는 전쟁 속에서 ‘승전’은 적진을 최대한 많이 죽이거나 죽이는 경우의 수를 획책함으로써 달성되기 때문이다.


 마리우폴 학살이 그렇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점령하는 키이우 함락전에서 후퇴한 대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하고 마리우폴을 비롯한 남부 해안을 봉쇄하는 전략을 밀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마리우폴에 주둔하고 있는 반러시아 성향의 아조프 대대를 ‘나치’로 규정하여 이들을 청산하는 것을 전쟁 명분 중 하나로 삼았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침공 전략상 마리우폴을 반드시 점령해야만 하고, 여기서 민간인을 가려 싸울 방법을 고민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형태의 비극은 인류 역사상 거의 모든 전쟁에서 반복되어왔다. 전쟁은 언제나 인간성의 바닥을 자극하며, 국가권력의 옹호 하에 평범한 사람들이 어디까지 타락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맥락은 있지만, 서로를 죽고 죽이며 인간성의 끝을 달린다는 점에서는 모든 전쟁이 같은 본질을 갖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정치는 언제나 갈등하기에 전쟁의 동력은 필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 스스로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항상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찰의 전선만큼은 결코 뒤로 물려선 안 된다.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과거 전쟁들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비판받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가 합의해온 국제규범과 인권 의식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따뜻한 국제연대를 바라며,

 ‘대한민국 감사합니다’. 구호의 끝마다 붙었던 인사말이다.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고마운 구호였지만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우리가 뭘 했다고...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룬 역사는 충분한 의미를 주는 것 같다.


 대한민국도 우크라이나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식민 통치, 분단, 전쟁, 독재 등 아픈 역사적 생채기를 거쳐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났다. 이런 이유로 홍콩, 미얀마, 벨라루스 등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국제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동경하며 ‘우리나라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한민국의 입지를 무겁게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으로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대가 왔다. 우리도 한때 처절한 아픔과 원조를 받았던 나라였기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냉혈한 국제질서 속에서도 세계시민들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슬픔과 고통을 나누는 길을 모색하면 좋겠다. 그렇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더 평화롭고 따뜻한 지구촌이 가능해지길 희망한다.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길 바란다. 우크라이나에 평화와 자유가 정착하길 기원한다.



(*해당 글은 2022년 5월 초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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