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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Mar 29. 2024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는 지속가능한가?

양승훈, <울산 디스토피아> 리뷰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울산이 고향이라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다. 그리고 울산 출신들의  대답도 대체로 뻔하다. “노잼도시”라는 자조와 “그래도 우리 GDP가 1등(1인당 GRDP)”이라는 자부심. 오늘날 많은 청년들에게 ’울산은 노잼이지만(+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부자인 산업도시‘ 정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과연 청년들이 떠나는 노잼도시는 미래에도 굳건할 것인가.” , “우리는 2030년, 2050년에도 지역 GDP 1등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인가”.


신간 <울산 디스토피아>의 답변은 단호하다. 울산의 미래는 어둡다. 저자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사회학자이다.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는 도시사, 경제지리, 노동과정론, 산업기술, 면접조사 등의 틀을 통해 산업도시 울산을 정밀하게 조망한다. 구성은 구조적이고 내용은 디테일하다. 문제 진단을 넘어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도 빼놓지 않았다.




산업도시 울산의 위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공간 분업 측면에서 ‘대기업의 구상 기능’이 울산을 떠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현장 노동자가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숙련 과정이 중요했다. 생산직 노동자와 엔지니어 사이의 거리도 가까웠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생산직 노동자들보다 고학력 엔지니어들의 연구개발 및 설계의 비중이 중요해졌다. 기업 연구소들은 고학력 인재가 선호하고 밀접하는 수도권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구상과 실행의 기능‘이 분리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생산기지(실행기능)조차 수도권 남부로 이전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울산은 우수한 공학도들을 배출하고 유치하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그간 안정적 일자리를 배출하던 생산기지마저 축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두 번째는 ‘귀족노조론’으로 대표되는 갈등적 노사관계와 노동 이중구조 문제이다. 현대차 노조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산업화 시절 억압받던 노동권을 쟁취하려 애써왔다.  그러나 1998 정리해고 사태 등을 겪으며 노조는 ‘우리 자리 지키기‘란 목표에 집중한다. 노조를 불신한 기업은 생산직을 배제한 채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둔 생산방식 유형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흔히 이상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노사관계 (생산성 동맹)는 구성되지 못했고, 기존 정규직 노조의 고임금 고복지를 보장하는 대신 비정규직 하청 노동이 확대되었다. ‘고용 창출’은 노조 의제에서 멀어졌고, 기업은 생산직 정규직을 새로 뽑지 않는다. 적대적 노사관계 - 노동 이중구조가 ‘구상-실행 기능의 분리’와 결합된 결과, 울산은 ‘고도화된 산업도시‘에서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중이다.



숙련이 사라진 작업장만 가득한 지역을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런 산업도시는 그저 제품만 찍어 내고 연구개발이나 현장의 혁신이 벌어지지 않는 단순한 ‘생산도시’라 불러야 한다. _p.192



마지막 세 번째는 ‘산업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고용 구조이다.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형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산업도시 울산의 경우 기본적으로 남초 일자리가 많고 맞벌이보다 외벌이로 살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울산 제조업 현장의 여성고용은 5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울산 여성 중 83.3퍼센트가 전국 평균보다도 현저하게 임금이 낮은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울산의 여성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전국 평균보다 12만 원 낮고, 울산의 여성 전문직 임금도 전국 평균 대비 86.9퍼센트로 13퍼센트 이상 낮다.> 울산은 여성의 커리어 확보가 어려우며, 대졸자들이 갈 만한 사무직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 이러한 고용 환경에서 여성•청년층이 탈울산을 선택하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울산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큰‘ 위기감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모두가 ‘울산은 청년들이 떠날 만한 곳이고 언젠가 디트로이트처럼 될 것’이라 얘기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 일뿐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울산의 3대 주력 사업(자동차-조선업-석유화학)은 견고하다. IMF 때도 버텨왔듯, 산업은 사이클이며 좋고 나쁜 시기가 오고 갈 것이라는 경험적 믿음이 더 강하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울산은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서서히 질식하는 중“이다.


결국 울산은 역사적으로 형성해 온 궤적을 고려하면서도 새로운 ‘평범한 노동자 중산층’을 다시금 구축하는 작업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산업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생산직 중심주의를 깨고, 정규직 중심주의도 깨면서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_ p.290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제대로 된 대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8전 9기 끝에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에 동참하며 그린뉴딜 같은 의제를 꺼내 들었으나, 별 다른 공론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김두겸 시장을 비롯한 울산 주류 정치권은 ‘그린벨트를 해체하여 산업단지를 더 유치하겠다’식의 현상유지적이고 비효율적인 개발 공약에만 골몰하고 있다. “울산을 변방서 중심으로 올리겠다”는 김기현 집권당 대표는 엉뚱하게도 ‘메가서울’에 열심이다. 윤석열 정부의 구조개혁은 ‘서울시 김포구‘식 공수표 남발과 ‘하청노조-전공의 때리기’ 같은 수사정국으로 귀결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정치권만 탓할 순 없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와 정책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돌파할 만한 해법을 찾는 데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현재 추세를 바꿀 수 없다.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울산 문제가 한 도시만의 위기가 아닌 산업화 이래 대한민국이 걸어온 제도적 경로의 위기임을 알 수 있다. ‘저성장 - 제조업 위기- 지방소멸 - 노동 이중구조 - 초저출산’ 등으로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위기는 울산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제1 산업도시인 울산조차 무너진다는 것은 지방/비수도권 권역의 몰락을 상징한다. ‘성실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노동계급 중산층의 약속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울산을 필두로 한 중화학공업을 양위하는 한국의 산업도시는 그렇게 시험 경쟁을 통과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고도 성실하게 일하면 집을 사고 살림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며 제 나름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며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했던 장소다. 그 때문에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 _ p.285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공론장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목소리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서울을 바라보고 좋은 일자리를 위한 좁은 경로에 뛰어들 때, 자연스레 논의되지 못하고 소외되는 삶들 말이다.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 지방에도 여성이, 청년이 있다. 소위 원청에 소속된 노동자들보다 그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들이 훨씬 많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목소리와 이해관계는 얼마나 제대로 대표되고 있는가?


앞으로 이러한 소외와 소멸의 추세는 더 커질 것이다. 지방도시의 소멸은 '알빠노'의 대상이 되고, 울타리 바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능력주의적 대안’ 아래 묻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대한민국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곳은 그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이웃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땀방울 흘려가며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삶들이기 때문이다.


‘울산 디스토피아‘는 ’코리아 디스토피아‘의 첫 번째 에피소드다. 지금의 한국정치와 초저출산 논쟁 그리고 K문화의 영광은 ‘디스토피아 시리즈의 프리퀄’ 격이다. 성장 동력은 약해지고 격차는 벌어지며 각자도생과 포퓰리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나라의 미래는 어디로 흐를 것인가? ‘어차피 망할 거다‘는 푸념을 넘어, ‘생존’을 위한 구조개혁과 사회적 합의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 해볼 만하다. (저자는 산업도시의 하이로드 전략과 부울경 메가시티에 대한 견해도 밝히고 있다.) 미증유의 전환기 속에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며,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소 협력업체의 업스케일링, 노동 이중구조 해소와 상생형 일자리, 부울경 메가시티와 지방대학 개혁 같은 어젠다는 울산의 힘만으로는 끌고 갈 수 없다.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중앙 정치권은 동탄에 몇 조를 쏟아부을지를 두고 다투지, 동남권에 그만한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의미 자체를 못 느끼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지역에서부터 설득력 있는 공론과 해법을 만들어 돌파해 나가야 한다. <울산 디스토피아>가 지역사회에서 널리 읽혀져야 하는 이유다.


 ‘어차피 제조업은 망할 것이고 지방 소멸은 기정사실화‘라는 암울한 경로의존으로 이 글을 마치진 않겠다. (고향이 망해간다는 얘길 하는데 마음 좋을 사람 어딨겠나.) 대신 맨 땅 위에 일구어 낸 산업화와 수출 신화, 민주화와 노동운동, 그리고 광역시 승격과 태화강 되살리기의 ‘경로’를 다시 생각한다. ‘태화강의 기적’ 그리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던 대한민국의 드라마틱한 발전사 말이다.


<우잘나잘 나잘우잘*> . 현대조선소 벽면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구호를 생각한다. 물론 사람 갈아 넣고 울타리 치기 바빴던 구시대의 ’우리‘ 관습과는 결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분투했던 공직자, 기업인, 엔지니어, 노동자의 꿈은 이어갈 만한 무언가가 아닐까. 이제 전환 시대의 ‘우잘나잘 나잘우잘’을 고민할 때다. <울산 디스토피아>가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풍성한 논쟁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_ 정주영 어록.


울산의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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