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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Nov 08. 2024

대한민국 구조개혁; 한은의 도발적 제안들

건빵레터 53. 한국은행 <이대로 가면 나라 망한다?>


건국대 자치언론 <건대> 교지편집위원회 _ 편집위원 정호익. 

https://m.blog.naver.com/kukyogi1984/223647091825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70861


 한국은행(BOK, Bank Of Korea)는 물가안정을 목표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관련이 없는 사회 현안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아 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견을 피력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은 총재가 통화 정책에 관심 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는데, 다 관련이 있다. 이런 것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결국 재정, '돈 풀어서 해결하라', '금리 낮춰서 해결하라' 하면서 통화정책까지 부담이 온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재정·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잘 되느냐는 구조개혁, 이해당사자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타협해 나갈지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거기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재정·통화정책 보고 해결하라고 하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다.”

_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l 2023-05-25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 중.


#1.

인력난 해법은 “외국인 노동자에 최저임금 차등 적용하기?”


 2024년 3월에 발표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는 현재 돌봄 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다루고 있다. 2024년 한국인 가구의 월평균 간병비(370만 원)는 고령가구(65세 이상) 중위소득*의 1.7배 수준이며, 육아 도우미 비용(264만 원)도 30대 가구 중위소득의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렇게 돌봄 비용이 가구 소득보다 높은 상황에서, 돌봄 인력의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 명에서 2042년 61~155만 명으로 크게 확대될 것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인력난 해결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고용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나라는 ILO(국제노동기구) 가입국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수준의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국내 최저임금 수준을 유지할 경우 가계 부담은 여전할 것이며, ‘외국인에 대한 임금이 내국인보다 낮게 적용돼야 고용이 실질적으로 늘어난다’는 해외 사례를 인용하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1)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2) 고용 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 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동 업종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 지난 9월 말,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으로 국내에 들어온 필리핀 가사노동자 2명이 숙소에서 이탈한 뒤 연락이 두절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노동부는 ‘사라진 가사노동자 2명이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사업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최저임금 차등제를 어설프게 적용할 경우, 외국인 노동자의 이탈을 초래하여 지속적인 고용 가능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


#2.

과일값이 금값인 이유는? “사실 OECD 대비 우리나라 물가는 말이죠..”


2024년 6월 발표된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는 한국의 물가 수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국내 물가수준을 국가별-시기별 비교를 통해 살펴본 결과, 우리나라의 전체 물가수준은 주요 선진국 중 평균 정도이다. 그러나 품목별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여타 국가보다 가격수준이 현저히 높거나 낮은 품목이 많다. 식료품, 의류, 주거 등 의식주 비용은 OECD 평균보다 크게 높은 반면, 전기-도시가스-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은 크게 낮은 편이다.

한국의 식료품 가격이 높은 이유로는 ‘좁은 국토 면적으로 인한 농경지 부족’, ‘영농 규모의 영세성‘, ’높은 유통 비용‘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의 농업은 주로 고령층이 종사하며, 영농 규모가 작아 생산성이 낮은 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자국 농민 보호를 목적으로 여타 국가에 비해 과일·채소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편이다. 높은 식료품 가격과 반대로, 전기요금 및 수도세를 비롯한 한국의 공공요금이 낮은 이유는 정부가 요금 인상 폭을 동결시키고 제한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낮은 요금은 공공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킬 여지가 있다.

 

 한국은행은 높은 필수소비재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업 생산성 제고‘, ’공급 채널 다양화‘, ’유통구조 개선‘을 제안했다. 농수산물의 경우, ’농업의 고급화 전략‘, ’농수산물 수입 확대‘ 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요금의 경우, 지금처럼 낮은 부담률을 유지한다면 향후 공공서비스 질 저하와 적자로 인한 미래세대 부담 증가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정한 요금 인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을 담은 보고서가 발표되자, 농림식품부 송미령 장관은 “한은이 농업계 현장을 모르고 있다”며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송 장관은 “GDP 교역량 비중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개방도가 높아서 문제”라며, ”한국 시장은 세분화돼 있어 수입이 많다고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3.

다 빨아 당기는 수도권 블랙홀..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뭉쳐야 산다“


 2024년 6월 발표된 <지역경제 성장요인 분석과 거점도시 중심 균형발전>은 한국 사회의 지역 간 격차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역 간 성장률을 분해하여 분석한 결과, 2011~2022년 중 수도권-비수도권 간 성장 격차는 절반 이상 생산성 격차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이 비수도권에 비해 생산성이 높은 이유는, 각종 산업 및 경제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당 보고서는 그간 지역균형발전이 저개발 지역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집적 효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보고서는 모든 도시에 고르게 투자하기보다는 지방 대도시에 집중 투자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지방 대도시에 집중 투자를 하여 생산성을 제고할 경우 지역으로 효과가 파급되면서(전국 GDP +1.3%), ‘수도권 위주의 생산성 개선 시(GDP +1.1%)’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인구가 감소하는 현재 추세를 고려했을 때, 과거와 같이 전 국토에 빠짐없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보다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집중 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성을 지적했다.

 

** 문재인 정부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중심으로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에 대한 추진이 있었으나, 정치적 갈등과 소지역주의로 인해 좌초된 바 있다. 최근에는 대구시-경상북도가 행정 통합을 추진 중에 있다.



#4.

사는 동네가 대입 결정한다? 다들 학군, 학군.. 하는 이유가...


 24년 8월 발표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는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는 학생 잠재력보다는 사회 경제적 배경에 의해 설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소득 상위 20%와 하위 80% 간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75%는 ‘부모 경제력 효과’의 결과로 추정되었다. 또한 2018년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92%는 부모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을 포괄하는 ‘거주지역 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러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의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안했다. <지역별 비례 선발제>는 “상위권대가 자발적으로 입학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하여 선발하되, 선발기준과 전형 방법 등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할당제(쿼터제)”를 의미한다. 보고서는 시뮬레이션 결과 지역 할당제를 적용하면 지역별 서울대 진학률이 학생 잠재력으로부터 괴리된 정도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 보고서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에 지역 인재를 유치하는 방안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간 교육 불평등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선,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할 것이다.  



대한민국 구조개혁, 적극적 논쟁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보고서가 제시하는 해법은 논쟁적이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정책은 숫자 논리에 맞다고 해서 실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노동권 침해, 외국인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으로 인한 구인난 등 문제가 따를 수 있다. 실제 해당 보고서가 발표되자, 민주노총-외국인 노동단체가 이례적으로 한국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이 던지는 문제의식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지방소멸, 저성장과 같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어차피 내일은 망하겠지만 오늘은 괜찮다’식의 비관주의에 빠져 있다. 정치권은 시급한 과제를 차일피일 미루며 미래세대에 폭탄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폭탄은 언젠가 터진다’는 사실이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논쟁을 유발하고 때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회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사회 경제적 쟁점을 둘러싼 여러 갈등을 ‘선악 이분법’이나 ‘진영 논리’로 재단하여 다루는 방법도 지양해야 한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갈등’을 공론장에서 중요하게 다룰 것인지에 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갈등을 쟁점화하고,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주의의 과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

 




[ 참고자료 ]

BOK 이슈노트 페이지

- 채민석, 이수민, 이하민. (2024).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한국은행

- 임웅지, 이동재, 박창현, 이윤수. (2024).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 정민수, 이영호, 유재성, 김의정. (2024). 지역경제 성장요인 분석과 거점도시 중심 균형발전. 한국은행.

- 정종우, 이동원, 김혜진. (2024).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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