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왜 탈출이 답’이 되었나?
최근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뜨겁다. 세금에 관한 두 가지 일반론을 생각해 보자. ‘(1) 납세를 좋아할 시민은 없다. (2)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따른다’. 이 두 가지 문장이 결합했을 때 금투세 시행은 ’ 원래 그러한 ‘ 특별히 따질 것도 없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금투세 적용 대상은 전체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권이 조세 저항을 뭉개고 정책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금투세’ 논란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현재 시행되는 금투세법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조세인지에 관한 세법적 이슈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장은 탈출이 답”이라는 분위기에 금투세 논란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듯한 이슈’가 되어 버렸다.
—-
“국장은 탈출이 답". "국내주식에 투자하느니 미국 주식에 투자하자"가 일종의 트렌드가 되었다. 심지어 국민연금조차 국내주식보다 해외주식 포트폴리오에 더 집중하는 추세다. 왜 그럴까? 한국 기업이 여타 선진국의 기업에 비해 절대적 열위에 있기 때문일까? 이 질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불리는 'K-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
‘디스카운트’란 “최근 벌어들인 이익이나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순자산(자기 자본) 규모가 비슷한 다른 기업에 비해 특정 기업의 주가가 낮은 현상”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의 주식이 비슷한 규모의 외국 기업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디스카운트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는 PER, PBR, ROE가 있다.
PER 은 ‘수익대비 주가’를 의미한다. 한국 상장사의 PER은 14.16인데, 이는 최근 시가총액이 지난 1년간 벌어들인 순이익의 14배가량 된다는 얘기다. 신흥국 평균(14.32)과 큰 차이가 없다. 중국(13.09) 보다 살짝 높고, 경제 규모가 대만(15.95)보다는 다소 낮다. 한국의 PER은 국제 평균 수준이다.
문제는 PBR (장부대비 주가)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분석 이슈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상장기업 PBR은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로 분석대상 45개국 중 41위로 나타났다. 2023년 말 한국의 PBR은 1.05로 10년 평균값과 거의 같다. 한국 상장기업의 66%는 PBR이 1.0 미만이다. 이는 당장 청산해도 남는 게 없다는 의미이며, 코스피가 수년간 ‘박스권’에 갇혀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일명 ‘박스피’).
PER은 평균인데 PBR은 턱없이 낮은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업이 버는 돈(순이익)에 비해서는 주가가 괜찮은 편이지만, 기업의 규모에 비하면 주가가 턱없이 낮다는 이야기와 같다. 이렇게 PBR이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ROE가 낮기 때문이다.
ROE는 ‘자기 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을 가리킨다. 기업의 자기 자본 규모에 비해 최근 1년간 벌어들인 돈(순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본 것이다. ROE가 낮다는 것은 몸집만 크고 버는 이익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지난 10년 평균 ROE는 정확히 8.0%로 간신히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다.
*그래프 출처)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53
--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의 ROE가 유독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이 자본을 쌓아두기만 하기 때문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에 쓰거나 신규 투자에 써야 할 돈을 유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 <배당 성향이 낮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하는 리스크 대비 얻어가는 이익의 크기가 작다. 투자할 매력이 없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엔비디아의 경우, 엔비디아는 2004년부터 꾸준히 자사주 매입을 지속하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온 회사다. 최근 생성형 AI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자 신속하게 유상증자를 단행하여 투자금을 확보했다. 주주들과 시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애플, 테슬라 등 미국 테크기업들은 매년 배당을 늘려가며 투자금을 확보하고 회사 이익과 주주 이익의 윈윈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근본적 이유는 <기업 지배구조>에 있다. 재벌•지배주주에겐 자신의 몫을자녀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성장과 주가 상승은 함께 가는 방향이 모두에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상속을 생각하면 주가가 높을수록 세부담이 가중되므로 ‘주가가 높아지면 손해 보는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배당을 많이 할수록 종합과세와 세율로 인한 세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대주주는 배당을 꺼리게 된다. 지배주주 입장에선 지분율이 줄어드는 유상증자 방식도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감 몰아주기'나 '지주회사 물적분할'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상상할 수 없는 편법’이 한국에선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편법 경영이나 금융 범죄에 관한 처벌만큼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합병, 분할, 상장 폐지와 같은 굵직한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일반 주주의 의사는 무시되며, 이사회는 사실상 대주주에게 종속되어 있다.
2019년에 글로벌 연기금의 아시아 대표를 맡고 있는 CIO를 만난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안정적 고수익을 거두어 성공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한국인 앞에서 하기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기는 아시아 주식 중 한국 주식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대주주가 배당도 하지 않고, 일감 몰아주기를 하다가 회사를 떼었다 붙였다 몇 번 하면 일반 주주는 거지가 되는 시장인데 뭐 하러 투자하겠습니까? 제게 한국 주식을 사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알려주시면 저도 한번 생각을 바꿔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내가 저렴한 가격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인한 지배구조 개선, 그리고 한국인의 우수성에 대해 강조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순진하시군요. 저는 그런 말에 속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였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_ 강성부,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주주> p. 38
여기서는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가로막는 핵심적인 문제들을 선별하여 앞글자를 따 '합.의.물.자.자.수.집.중'으로 정리하여 표현했다. '합'은 상장사 합병 시 합병 비율을 시가로 정해 일반주주들이 피해를 입는 나쁜 관행을 의미힌다. '의'는 기업 인수합병 시 지배주주 지분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일반주주 지분은 헐값으로 넘어가는 행태를 비판하며 이를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을 뜻한다. '물'은 물적분할 후 동시상장으로 기존 기업의 가치와 주주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말하며, '자'는 자진 상폐 시 공개매수 가격을 임의로 정해 공정성을 해치고 일반주주를 농락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다음 '자'는 자사주 매입 후 소각하지 않고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 방어에 쓰는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을 일컬으며, '수'는 이사회가 경영진이나 지배주주 편에 서서 일반주주에 대한 수탁자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문제시한다. '집'은 '즉시항고' 등 한국에만 있는 절차와 제한적인 요건으로 인해 증권 집단소송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현실을 의미하며, '증'은 주주가 소를 제기해도 입증 책임이 주주에게 다시 돌아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_ 박영옥, 김규식 <주주권리가 없는 나라> p.121-122
이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징벌적 세제>는 합리적으로 완화하고, <부정한 경영>에 관해선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와 경쟁하는 금융 선진국들은 금융소득에 대해 분리 과세를 하거나 아예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배당소득세나 상속세에 대한 무리한 과세를 합리화하여 배당의 유인을 늘리고 편법을 추구할 여지를 줄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감세론'에는 '부자감세'라는 비판이 붙는다. 그러나 상속세율만 높으면 뭐 하나. 그만큼 걷히지가 않는데. 세율을 낮추어 탈세 동기를 줄이고 포괄적 규제로 구멍을 막는 것이 오히려 일반 주주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다.
대신 물적분할-쪼개기 상장 같은 각종 편법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처벌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주주는 실질적으로 이사회뿐만 아니라 감사위원회도 장악하고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이사회 거버넌스를 만들어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장할 장치가 필요하다. 상법을 개정하여 우리도 이사의 신의성실 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전체주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주주 자본주의/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시민 입장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선 주식 투자를 하지 않은 국민들도 ‘국민연금’이란 공적 연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주식시장의 문제는 전 국민의 이익과 연동되어 있다. 자본시장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으면 기업 활동에도 - 국가 경제에 - 제동이 걸린다.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고 기업이 성장해야,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부의 재분배도 가능해진다. 자꾸만 돈이 부동산으로 흐르는 '부동산 공화국'에선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자산은 부동산으로 축적하고 주식은 단타매매하는 식의 ’K-투자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코로나 이후 ESG가 주요 시사 이슈로 부상했다. 우리는 G(거버넌스)에 대해 더 질문해야 한다. 과연 우리 경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 하에 있는가. 아무리 국가와 사회가 친환경, 인권 등 좋은 가치를 추구해도, 이를 구현하는 시스템이 엉망이라면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필요한 밸류업 패키지를 통해 자본시장을 개혁해야 한다. 주먹구구식 입법을 반복하고 반쪽짜리 계급논리로 자본시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구조개혁의 중요한 축으로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논의해야 한다.
그간 한국 사회는 때때로 이윤 추구에 관해서는 징벌적으로 규제하면서, 각종 불공정과 편법은 느슨하게 양해해 주는 우를 범해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불공정한 시스템을 용인하지 않되, 건강한 이윤 추구를 인정하며 혁신을 장려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의 과실이 재벌이나 지배주주 같은 소수가 아닌, 일반 주주와 중소기업도 함께 공유하여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그렇게 좋은 기업이 국민과 함께 성장하며 윈윈하는 그림을 그려보자. 동학개미운동의 진짜 전선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