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담론의 해체 (2021.04)
<서두>
며칠전 대선토론에서 역시나 '재정건전성'이 또 화두가 되었다. 오랜 주제이다. 나랏빚 타령들.. 몇 달 간격으로 화제가 되는 것 같다. 작년 추경을 앞두고도 이런 얘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작년 4월달 즈음에 이와 관련한 기사를 썼던 적이 있다. 이 문단 아래의 글은 작년에 작성한 글의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다. 언론이 문제 삼는 '나랏빚'의 기준은 전혀 상관없는 요소들을 뭉뚱그려서 표현한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재정확대'와 '증세'에 반대하는 보수적 관점에 근거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지 않은 준칙이라거나 '안심하고 국채를 마구 찍어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적정한 수준'에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어떤 정책적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앞으로 다가올 고령화-양극화-산업정책 등 이슈에 있어서 '재정의 확대'는 불가피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그를 위해서 조세개혁과 증세를 통한 <어떤 지속가능한 합의>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이슈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1) http://m.s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4343
오래 전부터 정부에서 예산안을 편성하고 국회가 이를 통과하려 할 때마다 나오는 보도가 있다. ‘나랏빚 000원 돌파하나?’, ‘국가채무 증가 폭 거세.. 미래세대에 부담’.. 특히 근래 코로나로 전례 없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이 확대 집행되자 이런 보도가 더욱 자주 나오고 있다. 여기서‘도대체 나랏빚이 뭔데?’,‘정말로 국가채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어?’등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불경기와 양극화에 대처하는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조금 다르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재정건전성이란 무엇인가
‘국가채무’는 정부가 국내외에서 빌린 돈의 원금 또는 원리금으로 직접적으로 상환할 의무가 있는 부채를 의미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친 것으로, 정부 차관을 포함한 차입금, 국채, 국고채무부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국가채무는 주로 정부가 불경기 대응 등을 목적으로 국가 재정을 기존보다 많이 지출하는 과정에서 국채 발행 등으로 인해 확대된다.
‘재정건전성’은 이러한 국가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며 재정수지의 균형/흑자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재정법>은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86조)”는 규범적인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건전재정(재정건전성)은 정부지출의 증가를 억제하여 구축효과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지출의 비효율성을 완화시킨다. 또한 정부 지출의 증가로 총수요가 증대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억제하여 물가안정에 도움을 준다. 건전재정이 유지되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의 하락을 통해 외국인 투자 감소와 경기 침체가 야기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주류 경제학적(신고전학파) 이론을 반영한 것이다. 근래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행하는 와중에 일각에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경제학적 관점이 항상 들어맞으며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케인스학파 등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확장 재정정책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가져온 적은 없고 적당한 인플레이션은 시장에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시장의 효율성은 양립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양호하다
근래 언론에서 “국가부채 1,986조.. 국가부채, GDP 첫 추월”과 같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이 언급하는 ‘나랏빚 2,000조’는 공무원과 군인 등에게 지급해야할 연금충당부채 등을 모두 더한 개념인데, 그런데 이는 우리가 앞서 정의한 국가채무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이하 IMF)이 규정한 국가채무의 정의에 따르면 정부보증부채와 같은 우발채무나 공기업 부채, IMF 차입과 같은 통화당국의 채무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공기업의 부채는 독립된 법인으로 책임경영제가 보장되고, 중앙은행의 부채는 자신의 신용으로 통화를 자유로이 창출하기 때문이다. 4대연금의 잠재부채(책임준비금 부족분) 또한 연금개혁 등 정책환경 변화에 따라 가변적인 미확정채무이기 때문에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공무원 군인 연금의 연금충당부채’가 부채인 이유는 공무원이나 군인이 돈을 납입하면 연금공사가 이를 후에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계상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은행에 저축한 예금을 자산으로 인식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이러한 예금을 언젠가는 돌려줘야 할 ‘부채’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은행인 국민은행의 경우 우리나라 연간 GDP의 30% 정도에 달하는 약 570조 원의 총부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다고 하여 국민은행이 망할 기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당 총부채에는 시민들이 예금한 340조 원 또한 부채로 포함되며, 그 이외의 것들을 고려하더라도 은행은 부채에 대응할 수 있는 자산과 수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직접적인 상환 의무를 갖는 국가채무에서도 그 절반은 달러라는 대응자산을 갖추고 있는 금융성 채무로 구성된다. 이러한 이유로 스탠더드앤푸어스(이하 S&P) 같은 신용평가회사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45%가 아닌 GDP 대비 10%로 축소하여 보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회계상 명확한 구분과 정의도 없이 단순한 수치만을 두고 국가부채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과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의 지출이 늘어나고 국가채무의 액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거기다 한국은 올해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주요국보다 재정지출에 인색해 도리어 재정건전성 순위가 올랐다. 작년 12월 2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작년 일반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GDP의 4.2%로 42개 주요국 중 4번째로 작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코로나19에 대응한 선진국의 재정부양책 규모를 GDP의 9.3% 정도로 추정했는데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재정부양책 규모는 GDP의 3.5%로 20개 선진국 중 3번째로 작았고, OECD가 추산한 올해 한국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3.9%로 32개 선진국 중 8번째로 작았다.
IMF는 지난 1월 ‘2021년 연례협의 결과 보고서’를 통해 단기적으로 코로나 불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해야한다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IMF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양호한 재정건전성과 고용난, 저출산 고령화 등을 지적하며 재정 집행의 확대를 권고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코로나로 인해 근래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근의 증가 폭이 과거보다 가속화된 것을 평가함에서는‘그간 정부가 재정정책을 집행하는 데 인색해 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2) http://m.s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4345
그렇다면 왜 나랏빚 걱정에 유난인가.
그렇다면 왜 한국 언론과 기재부 관료는 재정건전성에 유난을 떠는 것일까. 우선 기재부 관료의 경우 전통적으로 불경기에 대처함에 있어 재정정책보다는 통화정책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모두 시장의 수요를 관리하는 정책수단이지만, 재정정책은 정부가 SOC투자나 재난지원금 등과 같은 형태로 직접적인 지출을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통화정책은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시중은행의 대출을 늘리는 경우를 의미한다. 만약 전자에 해당하는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조를 이어갈 경우, 장기적으로 정부의 재정규모 확대 및 충족을 위해서 증세는 불가피해진다. 이는 기업에 감세 혜택을 주며 고도성장을 견인해온 한국 기재부 관료의 관행과 다른 궤도에 있으며, 시장의 자율 조정능력을 높게 평가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이 비효율적임을 지적하는 주류경제학(신고전학파 경제학/신자유주의)의 입장과 동일하다.
이를 생각해 보면 한국 언론이 재정건전성에 과도한 우려를 표하는 배경도 짐작할 수 있다. 보수경제지는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며, 국가 역할의 확대에 따른 증세 등에 비판적이다. 물론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있어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지는 사회적 토론을 필요로 하고, 적극적 재정정책이 초래할 수 있는 시장의 역효과에 대한 우려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재정건전성과 관련한 수치를 과장하여 시민들에게 국가재정과 관련한 잘못된 인식을 심는 듯한 보도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왜곡이다.
문제는 재정건전성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랏빚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 IMF 외환위기라는 큰 고통을 겪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채무와 금융위기를 곧바로 연결 짓는 것은 상당한 비약이다. 예컨대 과거 IMF 외환위기는 거센 세계화 금융화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가 달러 빚을 상환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시점 또한 IMF 외환위기 이전이 아니라 IMF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채무비율이 증가하면서부터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가 겪은 재정위기 또한 결정적 시발점은 재정적자가 아니라 유로존 통합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와 유로화 대응의 문제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화폐 주권을 갖고 대응자산과 신용도를 확보한 상황에서 국채를 발행하여 재원을 조달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투자를 추구하는 과정을, 그리스 – 베네수엘라 – IMF외환위기 등과 같은 상이한 사례와 연결 짓는 듯한 방식의 설명은 잘못된 접근이다. 경제위기를 진단하거나 예측함에 있어서는 국가신용등급, 경상수지, 외환보유고 등 측면을 다면적으로 고려해서 평가해야 마땅하다.
종합적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사회가 더욱 우려해야할 것은 ‘가계부채’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가계부채는 이미 GDP 대비 100%를 돌파했으며 전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이러한 가계부채의 문제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소상공인 및 실업자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은 제2·3금융권에서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으로 집행된 통화정책은 시장의 침체를 막는데 기여했으나 지출방향이 신용이 좋은 계층에 한정되면서 자산소득에 따른 양극화(K자형 양극화)가 확대되었으며, 자산시장의 상승세에 힘입어‘영끌빚투(영혼을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가계부채의 문제는 후에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나 금리 인상 여지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삶의 부담이 되고, 민간의 소비(수요)를 줄이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전체 시장경제에 있어서도 가계부채의 증가는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정부는 확장 재정정책을 통해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계층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양극화 불평등 해소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빚을 지지 않으면,
시민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된다.
빚은 분명 지양해야 할 부담이다. 그러나 정부가 시민을 위해 집행되는 재정지출을 통해 발생하는 나랏빚을 그저 빚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조세의 의무를 다하는 시민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며, 국가가 재정을 집행함으로써 시장의 수요를 진작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과정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재정건전성이 양호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많은 시민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정책 수단이다. 전 세계 주요국이 팬데믹 요인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며 경제 활성화와 산업 굴기까지 추구하는 상황에서, 그중에서도 재정건전성이 가장 양호하다 평가받는 국가가 나랏빚 걱정을 하며 긴축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생뚱맞은 일이다. 더불어 저출산과 양극화 현상 등에 따른 복지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재정 규모를 확대하고 그에 따른 증세 논의를 하는 것은 우리가 직면한 불가피한 현실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우리는 ‘빚은 나쁜 거야’, ‘나랏빚이 늘어나니 긴축을 해야 해!’ 정도의 가치판단에서 문제의식을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재정 원칙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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