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굿하트, 마노즈 프라단 <인구 대역전> 요약 및 각주.
인플레이션으로 온 세상이 난리다. 그렇다면 현재 인플레이션은 길어도 2-3년 안에 해결될 일시적 충격일까? 혹은 앞으로 최소 20년간 세계 경제를 이끌고 나갈 추세인 것일까? 2019년에 출간된 <인구 대역전>에서 찰스 굿하트, 마노즈 프라단은 "앞으로 인플레이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해당 책은 인플레이션을 2~3년 정도의 단기적인 타임라인에서 해석하지 않고, 약 30년간 세계 경제 흐름을 복기하고 예측한다. '화폐적 현상'으로 설명되는 인플레이션을 화폐-금융적 관점이 아닌 '세계화'와 '인구 변동'이라는 변수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90년대 이후부터 진행된 <세계화> 측면에서 '전 세계적 노동 공급 증가'를 고려할 수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세계 무역 체제에 동유럽이 복귀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면서 투입 가능한 노동력이 급증했다. 노동이 대규모로 공급되면 그에 따른 노동의 협상력은 줄어들게 된다. 노동 협상력의 감소는 실질임금 상승률 감소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인구 변동> 측면이다. 지난 30년간 세계적으로 부양 인구비는 낮은 편이었다. 여기서 '부양 인구비(부양비)'는 생산가능 인구(노동자 및 취업자) 대비 부양인구(어르신, 어린이)를 의미한다. 일하는 연령 인구가 많을 때에 부양 인구비는 낮고, 고령화가 심해질 때 부양비는 상승한다. 그렇다면 '부양비가 인플레이션과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는 디플레이션적이고, 피부양자는 인플레이션적'이라는 설명을 붙이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 집단은 생산-공급을 담당한다. 반면 피부양자 집단은 수요-소비를 담당한다. 소비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하락한다(디플레이션), 반면 공급보다 소비가 많으면 가격은 상승한다(인플레이션).
그렇기 때문에 피부양자 집단보다 노동자 집단이 수적으로 많았던 90년대~10년대는 디플레이션 압박이 더 컸던 것이다.
또 생애주기 사이클상 보통 노동자 세대는 저축하고, 고령자 세대는 소비하는 특징이 있다. 지난 30년간은 소비하는 은퇴세대보다 저축하는 노동자 세대가 수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저축량이 소비량보다 더 컸다. 이러한 이유로 '금리(돈의 수요)'는 '소비보다 저축이 더 많은 상황(상대적으로 돈에 대한 수요가 적다)'에서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지난 30년간 상황이 뒤바뀌고 있다. 우선 <세계화> 측면에서 중국 경제의 내외부적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의 생산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고령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농촌에 남아 있는 노동력이 도시로 이주함으로써 경제적 순이득을 얻을 수 있는 단계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즉 '루이스 전환점'에 이르렀다. 또한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 연결하여 급속하게 집행된 자본 축적 또한 종국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양 인구비'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부양 인구비는 증가하고 있고, 이는 앞서 언급한 도식에 근거하여 인플레이션을 추동하는 요인이 되며, 소비가 저축을 추월함으로써 고금리를 견인하게 될 것이다. ( 부양 인구비 증가 : 피부양자 > 노동자 ; 인플레이션 압박 , 고령자 세대 > 노동자 세대 ; 소비 > 저축 (=돈에 대한 수요 증가); 금리 상승 )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우선 <세계화>에 관한 문제이다. 90년대 세계화 이후 전 세계 경제 상황을 표현한 현상은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1988-2008)'으로 설명 가능하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 간 불평등은 축소된 반면 국가 내 불평등은 확대되었다. 중국, 인도를 비롯한 신진 개발도상국은 세계화의 수혜를 입은 반면, 선진국 제조업 노동계층의 몰락이 (국가 내) 불평등 확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구 사회에서 나타난 트럼프 현상 등 극우 포퓰리즘의 대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08년 이후로 업데이트된 코끼리 곡선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데, 이는 현재 저소득 국가 소득을 더욱 증가시킨 반면 고소득 국가의 소득이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세계화는 국가 간 불평등을 더욱 좁혔고 동시에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한 트럼프 현상은 보다 거세질 여지가 있다.
'중국 경제 향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후반 국제 경제에 있어서 ‘중국의 부상’은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다. 9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 무역 질서에 편입되어 그에 따른 경제적 역할을 도맡게 된 것이 현재 국제 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알다시피 미중 패권경쟁으로 과거 세계화와는 전혀 다른 '글로벌 공급망 재조정'에 근거한 '탈 세계화'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큰 덩어리인 중국과 나머지 사회가 온전히 분리될 수 있을지, 그리고 중국이 과연 경제적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앞으로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인구 부양비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부양인구 부담이 증가하는 현상은 피할 수 없는 위기이고, 이가 각종 사회 분야에 미칠 영향은 중대하다.
‘은퇴 연령(정년 연장)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연금 지급액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이며 연금은 지속 가능한가', '복지 부담 증가에 따른 증세 압박은 어떻게 해소해 갈 것인가'.
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전반적인 생애주기 사이클이 달라진 가운데, 우리는 새로운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재고와 재정부담 그리고 세대 간 합의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세 번째 <부채 함정>이다. 지난 수년간 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채비율 증가는 어느 정도 용인 가능했다. 그러나 고금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부채의 이자 비용은 늘고 부채 축소 압박은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부채 리스크를 고려하여 금리 인상은 점진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는데, 이로 인해 부채를 연장하고 늘리고자 하는 유인은 지속된다. 즉 전 세계 경제는 ‘부채 함정’ 루프에 빠져 있다. 불가피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순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나? 가장 좋은 방도는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인구 변동, 중국 경제 등 모든 요인은 과거와 같은 안정적 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구 대변동>에 관한 저자들의 설명에 불충분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세계화'-‘인구 변동'과 인플레이션을 연관하여 설명하는 저자들의 시각은 여러 통계적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데이터 자체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팩트라는 점이다. 매크로한 틀에서 '인플레이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저자들의 우려는 설득력이 높으며, '실제 글로벌 경제가 그렇게 전개되지 않을지라도' 책이 서술한 변화에 대한 대비는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지난 30년과는 다른' 통화/재정정책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중앙은행은 재무부와 밀접한 관계였다. 금리를 낮춘 덕분에 재정 압력이 완화되었고 DSR이 안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압박이 높아지면 중앙은행은 이를 방어하려고 금리를 인상하는 반면 정치인들은 더 빠른 성장과 낮은 DSR을 요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정책 판단에 관한 문제는 다양한 논쟁을 부른다.
요즘 인플레를 두고도 이런저런 논쟁이 오가고 있다. 과연 그렇게 금리를 올리기만 하면 인플레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면 어느 정도 상황은 괜찮아 질까? 예컨대 전기료 부담을 지금 올려 버리는 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조치인가, 혹은 무리하게 인상하는 건 인플레 부담만 증폭시키는 길인가? 사안마다 명확한 답을 콕 집어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는 앞으로 지난 몇 년과는 다른 정책적 의사결정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따른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