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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May 18. 2022

공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2022.03.08 건대신문 청심대

몇 달 전 지방에서 용접일을 하는 지인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간 화두가 되었던 공정에 관한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답변은 차갑고 건조했다. “공장 바닥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그런 문제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얘기일 뿐이야. 언론이 얘기하는 무슨 청년의 공정? 거기에 우리들의 생각이 있나?”


얼마 전 KBS 시사기획 ‘창’은 ‘공부방 계급론’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18~34세 청년들에게 학창 시절 본인 공부방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물어 상중하 층을 구분하고, 삶의 인식에 관한 질문들을 던졌다. 질문들에 대한 상층과 하층의 답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러한 통계와 앞선 이야기를 고려했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르게 된다. 오늘날 청년세대의 공정 담론에는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반영되고 있는 걸까?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에 대해 얘기했다. 동일한 현재 속에서도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인식 속에 살아간다는 개념이다. 한 시대에도 다른 경험을 거친 여러 세대들이 병존한다는 설명인데 이는 동일한 세대 내부에도 적용된다. 성별, 지역, 소득 등에 따라 개별 청년들이 마주하는 세계는 그 머릿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물론 공통된 의제에 대해 다수가 비슷한 지향을 띨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을 두고 집단 내부의 다양성을 뭉뚱그려 ‘MZ세대 어쩌고’나 ‘보수화된 이대남’ 같은 일반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세대론적 일반화는 특정 여론의 과대대표나 사회적 편견을 빚을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와 공정의 문제를 다루는 데는 두 가지 층위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구조적 접근이다. 한국 사회가 어떤 발전 경로를 거쳤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조건을 빚어내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다. 두 번째로 이런 구조적인 조건 하에서 개별 시민이 직면하는 당사자성을 고려해야 한다. 2년 전 인국공 사태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논란이 불거진 근본적 이유는 원청과 하청으로 분절된 한국 사회 특유의 ‘노동 이중시장’이라는 구조적 조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취준생 등이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며 어떻게 문제를 해소할지에 대한 타협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인국공 사태에 있어서 핵심이 ‘노동 이중구조’라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는게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안은 연공급제를 직무급제로 전환하고 고용 안전망을 학충하는 등 노사정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타협해갈 문제이지, 형식적 평등주의나 능력주의라는 정해진 답으로 풀어지는 도덕 시험지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공정 이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갈등 전선을 초래하는 방향으로 소비되고 있다.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를 사회적 타협과 연대로 풀어 나가겠다는 시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만난 용접공과 같은 청년들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세대론이 실재하고 공정에 관한 명확한 답을 애써 제시해야만 한다면, 나는 그런 청년들까지 포함하는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대화’가 우리 세대의 공정론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 건대신문(http://popkon.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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