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하고 있나요?
한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시작해 마케터라는 직함을 달기까지 5개월의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0일이었다. 인턴이 아닌 마케터로 출근을 하던 날,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을 받아들던 날 기분이 묘했다.
지난 5개월 간, 8명의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그 중에는 같은 팀 팀장과 인턴도 포함되어 있었다. 셋이었던 팀은 다른 인턴의 기간 만료와 함께 팀장과 나, 둘이 됐고 안그래도 작았던 팀은 더 축소됐다. 그럼에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팀장이 있어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팀장의 이직 소식. 아직 인턴 기간이 꽤 남아있던터라 팀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긴 했다. 나 혼자 팀을 한다고? 그게 말이 돼? 나도 떠나야 하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회사에서 다른 팀으로 이동을 해줄 것이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므로 나도 곧 적응하겠지만, 그래도 5개월도 안된 사이에 발생한 꽤 굵직한 변화들에 놀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회사 생활의 듬직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팀장의 이직 소식을 접했던터라, 팀의 해체가 곧 자아의 붕괴라도 되는 것처럼 뜨악- 하고 당혹감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직하는 팀장의 입장이 십분 이해되고, 그의 앞날에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도 이후 혼자 남겨질 나를 지울 순 없었다. 나도 어지간히 이기적인 인간이구나 싶었다.
5월에는 새로운 팀에 편입되었다. 봄을 미처 즐길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났다. 남겨진 이들은 떠나간 자리에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새로운 일을 맡느라 부지런히 일했다. 아니, 일해야만 했다. '이렇게 일해도 되는 걸까?', '워크앤라이프밸런스는 어디에?' 라는 생각이 둥둥 떠올랐다. 고민이 깊어지려던 차에, 새로운 팀에서 친하게 지냈던 다른 팀원도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며, 싱숭생숭한 마음은 더해졌다. 그들의 퇴사를 바라보며, 워라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 자체가 사치인 것 같았다.
정신없이 두 달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슬그머니 떠오른 의문.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에 '나'는 없고 '회사'만 있는 것은 아닐까? 워라밸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신입이니까 배울 수 있을 때 많이 배우자 라는 두 개의 다른 마음이 늘 공존했다. 언제 또 이렇게 일해볼까 싶어 야근을 선택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하는 고민이 해결되지 못한 채 마음 한 켠에 점점 깊숙히 자리잡아갔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나는 답을 구하지 못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에 대한 스스로의 답.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케터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무언가의 리프레시는 필수라는 점이다. 그게 꼭 어디를 떠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거대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일상의 사소함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한 고군분투는 늘 필요하고, 새로운 시각 - 이제는 새롭고 창의적인 시각이라는 말이 너무 진부해져버렸지만 -이 정말 필요하단 것.
나, 신입 마케터는 오늘도 여전히 고민한다.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지. 주말에 일을 줄이고, 퇴근 시간이 되면 나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을지. 가능은 할지.
참고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참 매력이 있어 I love my job이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참 축복이다 싶긴 하다. 게다가 재미도 있으니 Hooray!를 외쳐야 할까. 어떤 지점에서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는 날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일의 이면에 늘 존재하는 스트레스와 중압감, 책임감을 느낄 때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 야속하기도 하다는 점ㅎㅎㅎ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하고 싶은 일을 하나 둘씩 실험(실현보다는 실험이라 표현하고 싶다)해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현재를 즐기고 감사하려 노력하는 중.
2018.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