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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May 17. 2019

Humans of Seoul, 휴먼스 오브 서울

나의 이야기

저는 노희경 작가를 좋아하는 평범한 드라마 덕후입니다. 그녀가 쓴 작품 대부분을 좋아하지만 특히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과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작품을 특히 좋아해요. 그녀의 드라마를 볼 때면 왠지 위로를 받는 것 같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곤 했지요. 특히 ‘지금 당신이 무슨 인생을 살고 있든 간에, 그게 남들이 보기에 멋있는 인생이든, 지질한 인생이든 상관없다고. 누구나 자기가 살아내고 있는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주인공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볼 당시의 저는 좌절과 우울으로 가득한 고3 수험생이었답니다. 그저 그런 수능 점수로 수도권 대학이라도 가려고 아등바등하던 저는 그녀의 드라마 속의 주연보다 조연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화려하거나 성공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인생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요. 아마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에게 동질의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대학생이 돼서 본 <괜찮아, 사랑이야>는 남들이 생각하는 '정상인'의 인생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남들과 같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됐죠. 드라마로 위로받고, 대사 한 줄에 가슴 찡한 감동을 받으면서부터였을 거예요. 저에게 '사람'이라는 키워드가 무척 중요해진 시점이.


학부생 때는 사람을 많이 만나, 만나서 그들 각자가 가진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저는 성격상 소위 '인싸' 타입은 아니었어요. 그럼 어떻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Meet You All 이란 네이밍이 눈에 띄는 학보사에 들어갔죠. 미추홀. 밋-유-올. 신문사의 기자라는 타이틀도 근사해 보였지만 무엇보다 사람도 만나고, 글도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 보였어요. 저의 글쓰기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운이 좋았어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들어간 학보사에서는 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며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인턴 기자를 거쳐 수습기자, 정기자가 되기까지 수십 개의 보도 기사, 기획 기사, 코너 속 코너를 맡았고 운 좋게도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학교 구성원을 비롯하여 학자, 기업인, 지역 정치인, 그리고 대통령 후보까지. 어떤 인생이든 그 사람이 오롯이 살아낸 그 인생에서 어떨 때는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취재 경험을 꼽자면, 몇 년 전 신문사 경험 덕분에 지역에서 내는 인터뷰 책자의 메인 인터뷰어로 참여할 때의 기억입니다. 인천 십정동은 오래된 달동네 지역으로 곧 재개발이 될 지역이었어요. 제 역할은 십정동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할머니·할아버지 약 20명을 한 명씩 인터뷰하는 것이었고요. 그중 방앗간을 하시는 할머니 한 분과 유독 친해졌는데 몇 시에 가더라도 늘 “밥은 먹었냐?”로 구수하게 인사를 건네던 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처음 십정동에 이사 오게 된 이야기, 방앗간을 시작한 이야기, 난리통이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인터뷰를 하고 나올 때엔 어둑한 길거리에 노란색 가로등이 떠오르는 그곳, 할머니를 떠올리면 방앗간에 은은하게 퍼지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인터뷰의 기록은 소책자로 엮어 펴내 지역 주민들과 공유되었어요. 하지만 재개발 지역의 어르신들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어르신들이 기억에 남아 종종 그때의 책을 들여다보기도 하지만요. 인터뷰어로 참여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무엇인가가 치유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지금은 맛집 검색 및 추천 서비스를 하고 있는 M사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 특성상 매달 적게는 20명부터 많게는 80명의 유저를 오프라인 이벤트에서 만난답니다.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유저를 직접 면대면으로 만나며, 제 직업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번 ‘사람’이란 키워드가 주가 되는 직업이라니. 다양한 사람을 '맛집' 이란 키워드로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벤트에서만 유저를 만날 테지만 그들이 가진 스토리가 무궁무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출처: Humans of New York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어요. Humans of New York, Humans of Seoul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Humans Of Mango를 만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답니다. 유저들을 인터뷰하여 내부 채널에 연재를 해보기도 했고요. 유저들 대상으로 한 인터뷰인 데다 내부 비공개 채널에서만 공유가 되었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꽤 뜨거웠어요. 평소 만나기 힘든 유저를 휴먼스 오브 망고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서로를 가깝게 느끼게 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나 봐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이 가진 독립된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던 저에게는 제 업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답니다. 지금은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지만, 곧 다시 시작할 예정이에요.






이외에도 저를 수식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프로일벌이기꾼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을 벌이더라도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거나 인간 근본에 대한 것들이 있었어요.


한 때 사람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살까 궁금해서, 고민 상담을 자처하는 팟캐스트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게도 고민이 도통 들어오지 않는 데다 누군갈 상담할 깜냥이 부족해 12화 만에 막을 내려야 했지만요. 아픈 새끼손가락 같은 경험이네요.

한 번은 민족 대이동의 시기인 추석, 인천 공항으로 갔어요. 해외로 떠나거나 해외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보러 가거나 보러 오거나, 그 속에 많은 가장 많은 사람들의 스토리, 그들이 가진 짠내 나는 이야기가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팀명은 '인처네셔널(Incheonational) 인터뷰단'. 나름 인터뷰할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질문지도 만들었습니다. 마이크 모양의 볼펜을 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에게 전해줄 소소한 미니 약과까지 야심 차게 준비했지요. 다만 목표 인원을 채우기도 전에 인천공항으로부터 제지받아 큰 소득은 없었던 기억도 납니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말 주변은 없지만 사람들과 만나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휴먼스 오브 뉴욕, 휴먼스 오브 서울을 챙겨보는 것이기도 하고 또 휴먼스 오브 망고를 만든 것이기도 하죠.


다음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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