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에 다녀왔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은 깍두기를 위한 깍두기에 의한 깍두기의 날이었다. 파르마뜨니케탄에서의 열흘. 이왕 돈내고 온 거 가급적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서 나에게 아이를 맞췄던 날들이었다. 오늘은 아쉬람 밖으로 나온 첫날이니만큼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고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엄마의 촉으로 그런 필요성이 느껴졌기에.
오리엔트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서 자는 첫날 밤. 새벽 네 시경에 밖에서 들어오는 기도소리 또 이어지는 오토릭샤 소리 등등 각종 소음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여서 그런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화장실에서 풍겨오는 악취도 괴로웠다. 여행하면서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나에게 처음으로 괴로움이란걸 알려준 그 방. 다행히 깍두기는 별생각 없이 잘 자고 일어난 거 같았다.
리시케시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독일빵집(German Bakery)이 있다. 락쉬만쥴라 다리 끝 높은 곳에 위치한 빵집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인 것 같았다. 오늘은 나를 위한 일정이 없다! 깍두기와 놀아주기로 작정했기에 우선 아침을 먹기 위해 그 독일빵집으로 갔다.
빵집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멋졌다. 창을 통해 솔솔 들어오는 바람도 좋고. 들어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려고 했더니 합석 시스템이 있었다. 러시아에서 오셨다는 중년의 여성분께 양해를 구하고 합석. 그녀는 너무 배가 고파서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시켰다며 입도 데지 않은 오렌지주스를 깍두기에게 주셨다. 꼴깍꼴깍 한 컵 잘도 먹는 깍두기. 이 녀석 지난번에 한번 시켜줬더니 또 초코타령었다. 누텔라팬케익을 먹겠다고 하는.....그래.....오늘은 너의 날이니까. 누텔라 팬케익과 내 커피를 한잔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빈자리가 나서 러시아 아주머니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창가 자리로 옮겼다.
그건 그렇고
오늘 깍두기 너를 위한 날인데
뭐하나
뭐하지?
아는데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 현실. 여행할 때 책자 하나 꼼꼼히 안보고 그저 흐르는 대로 정처 없이 다니는 스타일이라...이번에는 아이와 함께라서 난감했다.
짱구를 굴리다가 지난번에 우리를 아쉬람까지 태워줬던 한국식당에 인도 청년이 생각났다. 종종 지역 가이드 노릇을 한다며 미국인 가족을 데리고 폭포에 갔었다고 얘기한게 떠올랐다. 그에게 왓츠앱으로 문자를 넣었다.
Can we go to the waterfall today?
삼십여분 지났을까 그에게 연락이 왔다. 함께 폭포에 놀러 가기로 하고 깍두기 옷가지들을 챙기러 오리엔트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갔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서 기다렸더니 인도 청년 수라지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관광객들이 갈만한 폭포가 있다고 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그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15분쯤 달렸을까 어딘가에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이제는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나란히 산을 타고 오르는데 여기저기 똥들이 많았다. 소똥 개똥 등등.
지치는 기색도 없이 신나서 산을 타는 깍두기를 보고 대단하다 싶었다. 맨날 산으로 산책가는 유치원 보낸 보람을 인도 와서 느끼다니.
30분쯤 올랐을까, 매점이 하나 보였다.
산 중턱에서 아무도 없이 홀로 물을 파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물도 전기도 없는 이곳까지 저 물건들을 혼자 날라가며 장사를 하시겠지? 할아버지는 여기에 하루 종일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실까 궁금했다.
십분쯤 쉬다가 조금 더 올라갔다.
헉헉 숨이 턱끝에 찰 때쯤 도착이라고 했다. 하지만 깍두기는 아직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폭포와 절벽이 장관이었다. 정말 대자연 속에 폭 안긴 기분이었다.
나는 나무 벤치에 앉아 깍두기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아지경 깍둑. 우리의 여행 가이드이자 깍두기의 든든한 인도 삼촌을 자처하는 수라지가 간식과 음료를 가지고 왔다.
물에서 한참을 혼자 놀던 깍두기는 동네 개들이 등장하자 나와서 같이 놀았다. 보아하니 수라지는 타고나기를 아이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 눈길이 가기 전에 이미 깍두기가 원하는 걸 캐치하고 함께 놀아주는 1등 삼촌의 면모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너무 훌륭한 여행 가이드를 만나서 잠시 육아에서 해방되는 호사를 누렸다. 나무 의자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방전된 육아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는데 뭐 주변이 시끌시끌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도 청년 네 명이 놀러 와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크게 팝송을 틀고 그러는게 아닌가. 자연의 소리에 심취해있는 내게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그러고 있는데 귀에 익은 노래가 나왔다. 싸이의 챔피언이었다. 싸이는 정말 크게 성공했구나 싶었다. 내가 인도 산골짜기 폭포에 와서 이 노래를 들을 줄이야. 시끄러워서 짜증이 나면서도 노래를 따라하는 내 자신에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신나긴 신나는 노래 맞다.
그러고 주변을 둘러보니 깍두기는 여전히 수라지 삼촌과 노느라 바빠보였다. 해가 떨어지면 금방 추워지는 리시케시 날씨에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산을 타고 내려왔다. 다리 아프다는 투정 한마디 없이 산행을 마친 깍두기...정말이지 말띠 여성 너...대단하다...
밥을 먹기 위해 수라지가 일 아닌 일을 하는 한국식당으로 갔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인도 사장님과 형님 동생하는 사이로 그냥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본업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이라고 했다.
한국식당에 도착해서 2층으로 올라갔다. 깍두기와 반나절만에 절친이 된 인도 삼촌은 깍두기 심심할까봐 타블라와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 그래미를 데려다주었다.
한국식당 드림카페는 인도인 남편과 한국인 와이프가 함께 운영하고 계셨는데 오늘 밤이 여자분 생일이라며 나와 깍두기를 초대했다. 리시케시에서는 고기 파는 식당이 없고 구하기도 힘든데 치킨 요리를 할테니 깍두기와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한두번 얼굴 본 게 다인데 다정한 초대에 고마웠다.
늦은 점심은 먹은 터라 크게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시타르 연주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다시 한국식당으로 갔다.
조촐한 생일파티. 한국인 여행객들과 리시케시에 사시는 한국교포인 것 같은 분들, 인도 사람들, 외국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옆자리에 내 또래로 보이는 캐나다 여자 친구가 와있어서 잠시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국적과 언어를 떠나 꿍짝이 잘맞는 친구는 늘 따로있다. 이름은 미샤, 페루계 캐나다인으로 현재 캐나다에서 활동 중인 요가 강사라고 했다.
타블라, 피리(?), 그리고 시타르 연주가 울려 퍼지는 밤. 처음 만났지만 서로에게 다정한 사람들과 기분 좋은 밤을 나누어 가졌다.
두어 시간 한국식당에서 파티도 구경하고 음악도 듣다가 낮에 폭포 다녀오느라고 피곤한 깍두기와 방으로 돌아왔다. 창문 밖 소음이 여전히 심했지만 피곤해서 둘 다 곤히 잠들고 만....
엄마 수업만 졸졸졸 따라다니던 깍두기가 오랜만에 신나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아서 뿌듯한 어미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