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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마사띠 Aug 12. 2019

흐르는 날들

짜이네 집에서 함께한 주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최대한 느리게 슬렁슬렁 여유를 만끽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안녕했을 강가를 볼 생각에 설레며 문을 연다.


문을 열면...
내집앞 풍경
아침 눈곱도 안뗀 강가

서로 눈곱도 안 뗀 채로 마주하는 강가

매일 감동을 줄 수 있는게 세상에 몇 가지 없는데 자연이 그러하다고 얼마 전 노석미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렇다, 내게 강가가, 갠지스가 그랬다.


깍두기도 그 강이 좋았는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한참이고 강을 바라보곤 했다. 어른이야 그렇다 치지만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 그건 또 나름 신기한 광경이었다.


강을 바라보며 잘 있길래 엄마 요가 좀 할께했다.


깍두기가 남겨준 몇장의 사진
태양 아래 갠지스를 내려다보며 수리야 나마스카라...애쓴다 ㅋㅋ

사실 아이가 곁에 있을 때는 내 몸과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다. 무의식적으로 온 신경이 아이를 향해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대충 몸을 한차례 풀고 아침을 먹으러 프리덤 카페로 갔다. 인도삼촌 수라지가 우리에게 맡긴 강아지 그래미와 잘 노는 깍두기다.


프리덤카페에서 주문한 밥을 기다리며...깍두기의 절친이 된 그래미
내복바람의 일상. 패션 테러리스트.

짜이네 집에 초대를 받은 주말이었다. 오토바이로 20여분 정도 달려 찾아간 짜이네 집은 한적한 아파트 단지였다. 락쉬만줄라 주변의 혼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조용한 주거단지에 오니 저절로 날숨이 나왔다.


SH씨는 지난 번에 깍두기가 먹고 싶다고 했던 시금치 된장국을 점심으로 차려주었다. 인도에서 시금치 된장국이라니 이 왠 호강인가 싶었다.


짜이네 집에서 함께한 감동의 집밥
인도 가정식과 시금치 된장국이 넘 맛있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SH씨가 요가 석사 공부를 한 리시케시의 한 대학교로 나들이를 갔다. 인도에 와서 요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는 나를 위한 SH씨의 배려이기도 했다.


오토릭샤를 잡아탔다. 흙먼지 휘날리는 길거리에서 어린 짜이의 손을 잡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릭샤를 잡아타는 SH씨가 대단해보였다. 오토릭샤는 우리나라였으면 최대 4명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으나 중간중간 사람들이 내리고 타며 6-8명이 함께 타고 갔다. 엉덩이를 구겨서 비집고 앉아 타는 광경이 놀라웠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새로 탄 누군가가 엉덩이 살을 접은 후 비집고 앉아 심지어 내 엉덩이 살이 조금 깔려도 미간 한 번 찡그리지 않는 인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오 놀라워라 하고 있는 내게 SH씨가 말했다. 인도 사람들은 열 명까지도 타요라고. 허걱.


오토릭샤타고 신난 깍둑. 백루피 주고 길에서 산 내 금빛모자 ㅎㅎ

30여분 릭샤를 타고 달리는데 여기가 지옥이구나 싶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눈도 못뜰 정도로 불어대는 흙먼지,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수없이 올라오는 경계심...누가 나를 해칠 것도 아닌데 경계의 날을 팽팽하게 세우고 혼자 긴장을 하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지 순간 명상 상태에 빠져드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자극에 대한 마음 스스로의 보호작용이지 싶었다.


릭샤에서 내려 초능력을 부리듯 길을 건넌 후 학교 교문을 들어서니 아.....여기가 천국이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 오색찬란 가꾸어진 화단들, 편안한 표정의 사람들. 한국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비주얼에 순식간에 밀려드는 편안함, 익숙함.


고작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동안 여러 차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내 자신을 보며, 아 그렇구나 내 수준은 딱 여기구나 싶었다. 그 짧은 시간에 좋음과 싫음을 수백 번 오가며...감정의 냉탕과 열탕 사이에서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학교 안에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발마사지 전용 공원이 마련되어있었다. 공원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이 날만큼은 깍두기와 짜이의 놀이터가 되었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
양말은 새카매지고...으응?!

한차례 놀다가 옆에 매점같은 곳에서 믹스드푸룻쥬스를 한잔씩 사먹었다. 음 역시 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예술적인 맛이었다.


어디선가 벨이 울리며 잔잔한 음악소리가 나왔다. 명상시간이라고 했다. 4년제 대학에서 하루에 한 번모두를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자연스레 눈을 감고 명상에 드는 SH씨의 힘에 이끌려 나도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뭔지 모를 위로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학교 이곳 저곳을 구경하며 기숙사에 사는 요가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녀들은 여기가 감옥이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ㅎㅎ 아이들과 정원에서 뛰놀고 얼굴보다 더 큰 낙엽도 주워가며 한참을 놀았다.


외국인 여학생 기숙사
우와하고 탄성을 자아냈던 정원
꽃내음에 한번 이국적인 비주얼에 두번 취한....
실제로 얼굴보다 더 큰 왕낙엽 줍기. 낙엽욕심 부리는 깍둑. 응?!
예쁜 광경^^
해질녘, 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 담소나누는 SH씨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릭샤를 타고 SH씨의 집으로 돌아왔다. 깍두기보다 한 살 어린 짜이는 오는 길에 오토릭샤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깍두기 역시 눕자마자 자기 바빴다. 엄마들의 밤. 두런두런 아이 키우는 이야기, 요가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SH씨같은 사람이 되려고 요가하는 것 같아요.


진심이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깊이 이해된 겸손과 사랑이 보였다. 엄마로 사는 삶이 카르마 요가 아니겠냐고 말하며 웃는 그녀였다.


저는 오락가락해요. 제 남편이 부처에요.


그녀의 대답.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그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11시쯤 엄마들도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SH씨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아유르베다 마사지사를 집으로 불러주었다. 아이들을 봐줄테니 한 시간 마사지를 받으라는 그녀, 거절하지 않고 호사를 누렸다. 인도판 육아특공대에 입소한 느낌이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휴식이었다.


당시 나는 깍두기와 리시케시에서 1년 정도 사는 삶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후에는 이웃집에 들려 짜이도 한잔 얻어먹고 학교라던지 집이라던지 SH씨가 여러 가지를 알려주고 소개해주어 열심히 정보들을 얻고 리시케시에서 사는 계획을 현실로 조금씩 당겨오고 있었다. (변경된 계획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점심까지 먹고 졸린 깍두기를 데리고 오는 길.

아쉬람 우리 숙소에 도착해서도 눈뜰 줄 모르는 그녀였다. 이틀 동안 또래 동생과 열심히 놀더니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쿨쿨 낮잠자는 깍두기

푹 자고 일어난 깍두기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수라지 삼촌에게 강아지 그래미도 돌려줄겸 함께 저녁 먹는 시간.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마켓을 가야했다. 수라지에게 부탁하니 선뜻 같이 가주겠다고 한다. 좋다, 내일은 인도 전통시장에 들러 쇼핑을!


붕어빵 모녀
나 많이 사랑해주어 고맙...깍두기야 ^^

이끌리는대로 이 곳에 왔고 매일 눈 앞에 흐르는 강처럼 모든 것이 흐르고 있었다. 인연도 시간도.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지는 인연이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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