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이 소개하는 '진짜' 헬싱키 - 프롤로그
핀란드인 남편을 따라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정착한 지 벌써 6년 차가 되어간다. 2019년 핀란드에 살겠다고 맘을 먹게 된 계기는 그보다 한 해전 남편과 함께 핀란드의 여름을 즐기러 헬싱키에 놀러 왔을 때였다. 핀란드의 한 여름, Eira 지역의 해변가를 달리며 드라이브를 하는데 '아 바로 여기가 천국이지' 싶었다.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그 사이로 반짝이는 해변가와 나무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아이스크림 트럭까지. 꽤 많은 유럽 국가를 여행했지만 그렇게 마음에 폭 와닿는 풍경은 처음이었다. 아, 나도 저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 하는 소망이 바로 생겼달까. 막상 이민을 와보니 Eira는 헬싱키에서도 부유한 지역에 속했고 반짝이며 찬란한 여름의 핀란드는 일 년에 채 두세 달이 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을 좀 뒤늦게 알았지만 말이다.
그전까지 나에게 핀란드란 나라는 그저 자연경관이 좋고, 교육이 유명하고, 자일리톨이 휘바휘바하는 그 정도의 이미지였다. 내가 떠나올 때보다는 한국 미디어 매체에서 핀란드에 관련된 콘텐츠가 훨씬 많아졌지만 (지락실, 곧 방영 예정인 핀란드 셋방살이 등) 아직도 핀란드는 우리에게 단독으로 가는 여행지로는 좀 생소한 면이 있는 나라이다. 보통 북유럽 투어를 갈 때,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와 함께 가거나 또는 서유럽에 가는 길에 경유를 하는 정도가 제일 흔한 것 같다.
러시아 전쟁이 터지기 전, 핀란드의 국적기인 핀에어를 타면 한국에서 핀란드까지 러시아를 가로질러서 8시간 반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나라가 핀란드였다. 이 때문에 참 많은 관광객들이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지로 방문했다. 한국에서 부모님들이 처음에 나를 만나러 혼자 비행기를 타고 오실 때, 내가 꼭 했던 얘기는 '내려서 경유하러 나가는 사람들 따라가면 안 돼! 거기로 사람들이 다 나간다고 같이 가면 안돼!'였다. 실제로 헬싱키에서 내리면 정말 꽉 찬 비행기 승객의 거의 80,90%는 경유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 어머니와 어머니의 지인 분이 약 15일 동안 핀란드를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두 분은 헬싱키에서만 머물렀는데 특히 어머니의 지인이자, 약 13년 전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여름의 헬싱키와 그야말로 사랑에 빠지셨다. 헬싱키 곳곳의 다양한 건축물부터 디자인의 나라답게 모든 건물에 실용적이지만 아름답게 배치된 조명과 의자, 자연과 그대로 공존하는 도시 속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까지. 선생님은 핀란드를 생각하며 그 옛날 핸드폰을 만들었던 노키아 회사 같은 좀 칙칙한 이미지를 떠올리셨다는데, 막상 헬싱키에 와보니 이렇게 헬싱키가 아름다운 도시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두 분은 헬싱키에만 약 14박을 여행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더 여유 있게 둘러보려면 이 정도 시간도 부족한 것 같다는 총평을 남기셨다.
아마 헬싱키에 사는 내가 미리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로컬들만 가는 사우나, 해변가에 자리 잡은 오두막 호텔, 군데군데 숨어있는 헬싱키 맛집 등을 미리 알아보고 공유한 것도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헬싱키에 오는 모든 여행자들이 다 헬싱키에 사는 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헬싱키는 정말 이렇게 숨은 곳곳을 파고들어야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라서 관광으로 와서 겉으로 대충 훑어보면 그 매력을 파악하기 어렵다. 근처에 있는 스웨덴처럼 상업이 엄청나게 발달한 것도 아니고, 덴마크처럼 오랜 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블록마다 옛 왕궁의 볼거리가 넘쳐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헬싱키는 담백한 호밀빵 같은 도시이다. 입에 넣자마자 '아, 맛있다!' 소리가 나오는 화려한 케이크 같은 도시는 아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함이 올라오는 호밀빵 같은 매력이 있다. 그런데 이런 매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여행책자에서는 소개되지 않는 헬싱키의 곳곳을 '로컬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헬싱키의 매력을 호밀빵처럼 씹고 뜯으며 즐길 수 있는 곳들을 테마별로, 지역별로 차근차근 브런치에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바다와 닿아있는 소박한 사우나부터 로컬들만 가는 찐 아이스크림 맛집, 실험적인 재즈를 들을 수 있는 공연장까지 -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로 헬싱키에 도착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소개해보려고 한다.
많은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