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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 Nov 07. 2024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듣기의 미학 - 조성모의 '가시나무'는 명곡이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 '가시나무' 조성모


어렸을 적, 조성모(a.k.a. 성모 오빠)는 국민 가수였고 '가시나무'는 특유의 그 애절한 보이스가 매력인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렸었고 그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멋진 가사와 멜로디가 좋아서 열심히 따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이 노래가 종종 입에서 맴돌 때가 있다. 노래의 가사들이 이전과는 굉장히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데, 바로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를 많이 빨리고 예민한 나는 겉으로는 그걸 잘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많이 애쓰는 편이다. 그리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하는 걸 그렇게 편해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새 관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지션이 될 때가 많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역할에 내가 편한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들어주다주다보면 정말 이건 좀 너무한가 싶을 만큼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음 또 그런가 보다, 하거나 중간에 나에 대한 안부를 한, 두 번 정도 물어보면 그래 뭐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하면서 넘긴다. 그런데 그게 진짜 안 넘겨지고 목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나를 괴롭힐 만큼 거슬릴 때가 있다. 


아니, 진짜 자기 얘기만 하네. 하루종일 카톡 하면서 어떻게 내 안부인사 한 번을 안 묻지?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내 속에 내가 가득 차있는 건 상대방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내 속에는 나로 가득 차있던 것이었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나, 이 모습에 집중을 하며 왜 이런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지? 왜 이런 나를 더 칭찬하지 않지? 나도 그 순간에 나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보다 더 나로 가득 찬 건 나일수도 있다. 그렇게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은 속에 쌓이지라도 않지, 나는 제대로 표출도 못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아마 더 억눌린 욕구들이 쌓이고 쌓여서 한 번씩 참을 수 없을 만큼 터지는 게 아닐까 한다. 


누군가 말했다. 잘 '듣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 당시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왜? 듣기만 하면 되는 건데. 뭐가 어려운 거지? 이런 건방진 생각이었달까... 그런데 지금은 그 의견에 누구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앞으로 무슨 얘기할지에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지금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하지 않고, 오늘 내가 집에 가서 뭐 먹을지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상대방에게만 집중해서 얘기를 들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정말 꽤나 어려운 일이다. 수행이 필요한 일이다. 잘 돌이켜보면 겉으로는 듣고 있지만 듣고 있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잘 듣는다는 것은 나를 잘 내려놓고 그 순간 오로지 온전히 나에 대한 아집, 나에 대한 이상 없이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명상 같은 행위이다. 


이런 일련의 생각을 통해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좀 명확해졌다. 너무 나로 내 안이 가득 차있는 사람 말고, 나를 비우고 내려놓고 남을 그 안에 초대할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고 억지로 그렇게 하는 건 분명 부작용이 날 테니 나만의 템포로 조금씩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거짓으로 가 아니라 진짜로 상대방이 흥미롭고, 이 상황에 집중해서 대화를 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나나나나 형식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기가 빨리는 건 당연할 테다... 어떻게 앞으로의 인간관계에서 이런 밸런스를 잘 찾아나갈 수 있을지 작은 고민거리가 생긴 밤이다. 


P.S.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중에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좋은 팁이나 경험담이 있으신 분들은 함께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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