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와 화해할 수 있다면
닥터프로스트 웹툰을 연재한 이종범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내 최애 유튜브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 격하게 추천드립니다. 인터뷰 질문이 주옥같아요)
많은 순간, 우리를 막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이종범 작가는 인터뷰에서 나의 첫 엉성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자아가 비대해졌을 때,
사람들은 시작을 못한다고 한다.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을 해야 뭐가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데 그 접근을 막는 것이 자신의 거대한 자아인 것이다.
이 얘기에 따르면 나의 자아는 지난 32년간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비대했다.
내가 뭔데,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인간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물론 모든 사람들의 세상의 중심은 본인이다.
그러나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며 더 웅장해지는 뮤지컬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 1인 20역을 해내며 힘겨운 모놀로그 연극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둘 중 어느 방식이 맞다, 틀리다의 얘기라기보다는
삶의 무게를 따졌을 때 나는 뮤지컬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내향인으로써 너무 규모가 큰 뮤지컬 말고 소극장에서 하는 작은 뮤지컬 정도?)
내 안에 문제를 혼자 꽁꽁 끓어 안고 깊이 침잠했을 때, 나는 그 문제가 너무나도 버거워서
동서남북 어디로도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내가 좀 가볍게 여길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하고 나눌 수도 있었고,
그리고 나면 나의 문제는 사실은 인간이라면 다 겪는 그런 아주 보편적인 문제 중에
하나였구나를 깨닫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전에는 나를 수면 아래 저 깊은 곳까지 끌고 내려 가던 납덩이같은 문제가
순식간에 나를 바다에 동동 띄워주는 부표처럼 가벼워진다면 어떨까?
그 가벼워진 부표를 친구 삼아 예쁜 하늘도 보고, 숨도 쉬고, 바깥공기도 마시며 인생을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
그동안 나는 너무 무거웠다. 나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무거웠고, 삶이 무거웠고, 내 감정들이 무거웠다.
그렇게 세상 모든 짐을 진 것처럼 무거웠던 나와 이제는 조금씩 작별하고 싶다.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제는 나만 보지 말고
내 주변 경치도 보면서 즐기듯이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점점 더 지금의 나와 화해해 나갈 것이다.
거울 속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니 좀 더 가볍게 실수하고, 멍청해지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봐도 된다고.
각박한 세상 속, 직장인, 학생들의 심금을 달래준다는 재쓰비의 노래 <너와의 모든 지금>이 생각난다.
내게 언제의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면 바로 지금!
날 알아보고 날 믿어주는 너와의 모든 지금!